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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Oct 28. 2020

함께라면 웃을 수 있다(2)

환갑맞이 가족여행

토스카나의 들판. Credit to 아버지.


피엔차에 들어설 때. Credit to 아버지.


핸드폰 사진 갤러리를 보여주시며, "내가 원래 여행을 다녀도 사진을 잘 안 찍는데, 이번에는 300장이 넘게 찍었어." 하신다. 토스카나를 돌아다니며 아버지는, 아름다운 곳에서 차를 세워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진지하게 사진을 찍었다. 위의 두 사진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떠나 피엔차로 갈 때 찍은 사진. 나는 운전을 하느라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담지 못했는데, 아버지가 대신 담아주셨다. 저 멀리서부터 언덕 위에 자리잡은 Pienza를 보고 달리다가, 피엔차를 마주 보고 들어설 때의 기분이란! 멀리서 봐도 아름답고, 가까이서 봐도 아름다웠다.


마을로 들어섰다. 골목마다 "예쁘다."가 터져나왔다. 골목을 따라 자연스럽게 광장에 가니, 올리비아 핫세와 레너드 위팅의 사진이 붙어 있다. 알고보니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을 이곳에서 찍었단다. 중세 도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촬영 장소가 된 것 같다. 두오모 옆 골목으로 그대로 걸어나가면 성곽이 나온다. 피엔차도 산지미냐노처럼 성곽으로 나가면 토스카나 평야를 내려다볼 수 있다. 

피엔차. 2018


피엔차의 골목을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사진으로 많이 담았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토스카나 전통 콩수프'를 먹었는데, 마치 우리나라 우거지 해장국 같은 맛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맛 본 우거지 해장국이라니.  맛있는 점심으로 배를 채우고 피엔차를 더 둘러본 다음, 몬테풀치아노로 향했다.


피엔차. 2018


피엔차. 2018



몬테풀치아노는 와인으로 유명한 마을. 마을을 가로지르는 큰 골목길을 쭉 따라올라가는데 옆으로 다 와인 가게였다. 식구들은 와인에 관심이 없어서 중간 중간 골목길 너머로 보이는 토스카나 평원의 경치, 예쁜 마을의 모습만 구경했다. 몬테풀치아노도 다른 토스카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마을 초입에 종치는 사람 모형이 있는 종탑과 골목을 따라가다보면 나오는 두오모. 생각보다 두오모 앞 광장이 작은데 그 앞 까페에 옹기 종기 앉아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이제는 코로나로 더 이상 볼 수 없는 모습들.


몬테풀치아노. 2018


정해진 시간 전에 차를 돌려주기 위해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렸다. 내일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피렌체 구시가지를 둘러볼 생각이다. 나는 이번이 세 번째 피렌체 여행이라, 구시가지는 너무 친숙한 곳. 언젠가, 한 번은, 짧게라도 살아보고 싶은 곳. 내일 부모님이 어떤 말씀을 하실지, 기대된다.  




NIKON FM2로 찍은 필름 사진. Credit to 아버지.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열 두번째 아이다. 큰외삼촌하고는 스물네살이나 차이가 난다. 젊은 시절 먼 바다로 나가는 배를 탔던 큰외삼촌이 어느날, 결혼선물이라며 던져주고 간 카메라가 NIKON FM2다. 그 카메라로 아버지는 우리의 어린시절을 담았다. 내가 대학교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만져 본 필름카메라도 NIKON FM2다. 흑백필름을 넣고 한 컷 찰칵 찍고, 필름을 돌리고, 찰칵, 찍었던 카메라. 큰외삼촌이 주셨던 카메라는 더 이상 쓰지 않아서 장농에 넣어놨더니 곰팡이가 피어서 버렸다는데, 아니, 그 귀한 걸! 하고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아까워했다. 위 사진은 에버랜드가 '자연농원' 이었던 시절, 아버지 친구분들과 가족 모임을 하러 갔던 날에 찍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것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버지를 닮았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싶은 마음도 닮았다. 이번 여행에서 다른 때보다 사진을 많이 찍었다는 아버지의 말이 지금에서야 머리에서 맴도는 것은, 내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어제 차를 반납하고 오늘은 트램을 타고 움직이는 날. 아버지는 아침부터 "차가 있어서 좋았는데." 타령을 하신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SMN)에 내려서 길을 건너면 바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을 만난다. 전면 파사드가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피렌체는 고만고만해서 조금만 걸으면 두오모와 그 앞에 산 죠반니 세례당, 조토의 탑까지 만날 수 있다. 먼저 산 죠반니 세례당에 들어갔다. 천장을 뒤 덮은 금빛 모자이크화가 아름다운 세례당. 천장 꼭대기의 구멍과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빛나는 모자이크화가 성스러운 기운을 뿜어낸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르네상스 인물들이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 

 

두오모 쿠폴라에 올라가려면 예약을 해야한다. 다리가 쉬 아파지는 막내는 나와 중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고 부모님만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막내와 두오모 앞 젤라또 가게에서 기다린지 20분이나 지났을까? 부모님이 "이게 뭐가 힘드냐?" 하며 내려오셨다. 살짝 땀에 젖은 모습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나보다 부모님 체력이 더 좋은 게 확실하다. 두 분은 쿠폴라 꼭대기에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사진도 찍으시고, 경치도 즐기고 오셨다. 베키오 다리로 아르노 강을 건너서 7년 전에 점심을 먹었던 식당을 찾아갔다. 혼자 불쑥, 들어가서 화이트 와인 반 병을 마시고 얼굴이 새빨개졌는데, 계산대에 섰을 때, 식당 사장님이 내 얼굴을 보고 하하하, 웃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테라스에서 베키오 다리를 건너다보면서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더 이상 파스타는 먹지 않겠다!' 선언한 동생은 그때부터 점심은 언제나 고기를 먹는다. 제일 비싼 요리를 먹는 녀석. 


맛있게 먹고 다시 베키오 다리를 건너서 우피치 궁전 쪽으로 걸어갔다. 베키오 다리에서 우피치까지 이어지는 회랑을 좋아한다. 회랑 너머로 보이는 피렌체의 풍경도 사랑한다. 우피치는 예약을 하지 않았다. 그림에 크게 관심이 없으시기도 하고, 막내도 지루해할 것 같아서다. 베키오 궁을 구경하고, 산타 크로체 성당으로 갔다. 성당 앞 광장이 이렇게 넓었나? 오랜만에 다시 찾은 산타 크로체 성당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서 두오모를 가장 예쁘게 담을 수 있는 장소인 산타 아눈치아타 고아원 앞 광장으로 향했다. 서로 손을 맞잡고 서 보라고 한 뒤, 신혼부부들이 찍는 러브샷을 찍었다. 이날 꽤나 더워서, 피렌체 젤라또 맛집을 찾아가 1일 1젤라또를 실천했다. Gelateria dei Neri. 두 개만 시켜서 나누어 먹었는데, 막내가 마지막까지 젤라또를 득득득 긁어먹는 걸 보고 아버지가 키들키들 웃으셨다.


더위에 지치기도 해서, 숙소로 일찍 들어왔다. 숙소로 들어와 시원하게 씻고 어머니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며 먹구름이 몰려왔다. 우르릉 쾅쾅, 천둥 번개가 치더니 엄청난 소나기가 내렸다. "이야, 날씨 운은 기가 막힌다 우리!" 마주보며 웃었다. 가족여행을 떠나와서, 자주 마주보며 웃었다. 함께라면,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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