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랑 Oct 30. 2020

환타와 젤라또

환갑맞이 가족여행

하도 많이 걸어 다녀서 그런가, 오른쪽 발바닥에 사마귀가 생겼다. 

처음에는 티눈인 줄 알았는데 점점 커져서 피부과에 갔더니 사마귀란다. 피부과에서 레이저 치료를 해도 통 없어지질 않아서 세브란스병원으로 갔다. 세브란스에서는 냉동치료를 해서 사마귀가 잘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2주에 한 번 병원에 가서 발바닥을 보고, 냉동치료를 하는 날.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아버지가 오셨다. 바로 내 뒤 순번. 아버지는 손가락에 사마귀가 나서 같은 교수님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약속도 안했는데, 앞 뒤로 겹쳤다. 교수님을 만나고 치료실로 들어갔다. 치료해주는 의사가 우렁우렁 큰 목소리로 물었다.


"당뇨는 언제부터 앓으셨어요?"

헉! 바깥에 아버지가 앉아계시는데, 이렇게 큰 목소리로 물어보면 곤란하다.

"2016년부터요."

소근소근 대답했지만, 역시나......치료실을 나서자마자 아버지가 도끼눈을 뜨고 묻는다.

"네가 당뇨야?"




2016년 4월에 당뇨병 진단을 받고, 부모님에게 알리기 싫었다. 어머니는 막내의 병만으로도 평생 힘들게 살아오셨다. 큰딸이 아프다고 하면 더 속상하실 것 같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본인을 닮은 딸이라서, 아버지는 언제나 당뇨를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를 했다. 아버지도 삼십대 끝무렵에 당뇨진단을 받으셨다. 결국 당뇨에 걸렸다고 하면 아버지도 무척 속상하실 게 뻔했다.


당뇨 진단을 받으면, 눈과 신장을 검사해야 한다기에 먼저 안과에 갔다. 당뇨망막증을 걱정해서 갔는데 이왕 검사하는 거 다른 질환도 함께 했다. '당뇨망막증은 없네요.' 라는 말 끝에, '그런데' 가 붙었다. 녹내장이 의심된단다. '녹내장? 서서히 눈이 먼다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한 달 뒤에 다시 검사해보자는 말을 듣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닐수도 있잖아. 그리고 진행을 늦추는 안약을 넣으면 평생 보면서 살 수도 있는데.' 무거운 마음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털어놓았더니, 얼른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보란다. 알리기 싫었지만, 알릴 수밖에 없었다. 녹내장은 당뇨와는 다른 문제다. 성모병원 예약을 하고 어머니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어머니의 반응을 무척 걱정했는데, 굉장히 담담하셨다. "당뇨는 관리하면 되니까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 녹내장은......일단 검사해보고, 그것도 안약 넣으면 되긴 하지만, 녹내장이 걱정이긴 하네." 

맞다, 어머니는 내 생각보다 더 단단한 분이지. 어머니의 담담함이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며칠 뒤, 두 시간이 넘는 검사를 마치고 교수님 앞에 앉았을 때, 

"한 마디로 말할게요. 녹내장이 아니에요."

온 몸이 기쁨으로 터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정말 기쁘면 이런 기분이구나. 내가 폭죽이 된 것 처럼, 불꽃놀이처럼 퍼져나가는 기쁨에 압도당했다. 시신경이 타고나길 그렇게 생겼다고, 언뜻보면 녹내장인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가끔 안압 검사만 하면서 살면 된다고,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단다. 함박웃음이 나왔다. 


당뇨병 진단을 받아서 많이 속상했다. 자기연민에 빠지기도 했다. 관리 잘 하면서 살면 되지.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에게는 계속 비밀로 할 생각이었다. 2년이 지나도록 비밀이었다. 목소리가 큰 의사 덕분에 아버지도 알게 되었지만. 일단 진료실로 들어간 아버지는, 진료가 끝나자마자 전화를 했다. 이어지는 잔소리. 

"너는 당뇨가 있는데 여행 가서 탄산이랑 아이스크림이랑 케이크 같은 걸 먹었단 말이야?"

아버지도 같이 드셨잖아요, 라는 말을 했던가, 안 했던가. 그리고 느껴지는 아버지의 속상함. 이래서 말하기 싫었다. 




로마로 떠나는 날 아침.

날마다 맛있는 버터 냄새를 풍겼던 아랫집에서 크로아상을 사왔다. 피스타치오 크림을 넣은 것과 플레인 크로아상이었는데 아버지는 지금도 "그 집 빵이 진짜 맛있었는데." 하신다. 유명하다는 빵집에서 크로아상을 사다 안겨 드려도 "에이, 그 집만 못해." 아마, 피렌체에서 먹어서 더 맛있었겠지. 그 맛을 다시 보려면 피렌체로 가는 수밖에 없다. 


8시쯤 SMN역에서 이딸로를 타고 로마로 향했다. 떼르미니역에서 어머니와 나는 역 근처에 동양 식품을 파는 가게에 가서 쌀과 김치, 두부, 라면 따위를 샀다. 피렌체에서 샀던 쌀이 거의 떨어져갔기 때문이다. 로마 숙소는 바티칸 미술관 길 건너편, 올드브릿지(Old Bridge)젤라또 가게 위층 건물이었다. 자연스럽게 1일 1젤라또를 실천할 수밖에. 로마는 아무래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니까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로마패스가 좋다.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고, 올라가고, 지하철을 타고 오타비아노 역까지 이동했다. 부모님은 패키지 여행만 하셨기에 이렇게 먼 거리를 캐리어를 끌고 움직인게 처음이었다. 너무 힘들었다고 나중에 말씀하셨다. 우버를 이용할 걸, 후회했지만, 부모님이 젊다고 생각해서 무리를 해버렸다. 


숙소 체크인을 하고 우연히 길 건너 중식당에 들어갔는데 정말 맛있었다. 날마다 파스타만 먹다가 오랜만에 익숙한 맛을 보니 막내가 정말 잘 먹었다. 로마에 있는 나흘 동안 세 번이나 갔다. 막내가 잘 먹으니 좋았다. 숙소 근처 뽐삐(POMPI) 가게에서 티라미수를 사 먹고 슬렁슬렁 바티칸으로 걸어갔다. 하늘이 흐려서 우산을 챙겨 나갔는데 역시나 비가 내렸다. 부슬부슬, 제법 내리는 비에도 우리 가족은 내내 웃었다. 나는 세번째, 부모님과 막내에게는 처음, 이자 마지막인 로마. 그리고 가족여행의 마지막 도시. 제법 긴 여행이 마무리 되어 간다는 생각과 익숙한 도시라 안심이 되는 마음에 내 기분도 한결 가벼웠다. 사실, 이번처럼 철처하게 계획을 짜고 예약을 한 여행은 처음이었다. 가족을 다 데리고 가는 여행이라 몇 번이나 다시 확인을 했다. 다른 가족이 숙소에서 쉴 때, 다음날 일정을 확인하고 꼼꼼하게 예약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혼자 하는 여행보다 배는 챙겨야 했지만, 가족이 다 함께 하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바티칸에서 산탄젤로 앞 다리를 건너 조금만 걸으면 나보나 광장이다. 도저히 광장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건물들 사이로 들어가면, 짠! 선물처럼 나타난다. 건물에 빙 둘러쌓인 광장. 이런 곳에 빠지지 않는 비눗방울. 어김없이 아저씨가 열심히 방울을 만들고 아이들은 그 앞을 떠날 줄 모른다. 막내에게 동전을 쥐어주고 아저씨 발치에 놓인 상자에 넣고 오라고 했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다녀왔다. 나보나에서 또 조금만 걸으면 로마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축물인 판테온이 나온다. 몇 번을 봐도, 언제 봐도 놀라운 건물. 두꺼운 기둥을 지나 문으로 들어간다. 저절로 위로 올라가는 고개. 들어가는 사람 모두 위를 올려다본다. 나지막하게 탄성이 나온다. 지은지 2000년이 되어가는 건물이, 거대한 돔 구조물이 그대로 남아있다니. 게다가 돔 가운데에는 구멍이 있는데 비가 와도 바닥으로는 빗방울이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 놀랍다.


판테온에서 나와, 판테온을 바라보며 마신 환타는, 아무리 찾아도 다시는 맛 볼 수 없는 맛이었다. 이탈리아 내 레스토랑이나 까페에만 납품하는 환타였던걸까? 오렌지 과육이 살짝 들어있었는데, 아버지는 피렌체 크로아상과 더불어, '그때 마셨던 환타' 타령을 하신다. 환타 마시러 로마로 다시 가야 하나. 환타와 젤라또. 아버지와 내가 함께 좋아했던 것들. 그런데, 아버지도 나랑 같이 다 드셨으면서, 나한테만 뭐라 하신다. 숙소 근처 까르푸에 들러 장을 봤다. 어머니는 "마트 구경하는 것도 참 재밌다." 하셨다. 오랜만에 만난 김치로 솜씨를 낸 이날 저녁은, 두부를 넣은 김치찌개. 맛있게 먹고, 바티칸 미술관 너머로 저녁 노을을 바라보았다. 이날도 어김없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이전 11화 함께라면 웃을 수 있다(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