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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Nov 01. 2020

Stairway to heaven

환갑맞이 가족여행

로마 둘째날.

아침부터 서둘러서 오르비에토(Orvieto)에 다녀왔다. 7년 전에 혼자 여행할 때는 가지 못했던 곳인데, 무척 아름답다고 해서 이번 가족 여행 일정에 넣었다. 하루 종일 여유롭게 오르비에토를 여행하고 숙소로 일찍 돌아와서 느긋하게 쉬었다. 부모님과 체력이 약한 막내와 함께하는 여행은 모름지기,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다녀야 한다.  


로마 셋째 날은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돌아다닌 날.

하도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녀서, 이젠 너무나 익숙해진 길을 걸어 오타비아노 역으로. 오타비아노 역에서 올드브릿지 젤라또 까지 걸어가는 길은 눈 감고도 훤할 지경이다. 지하철을 타고 콜로세오 역으로.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콜로세움. 세 번째로 보는데도, 볼 때마다 놀랍다. 이렇게 큰 건축물이 2천 년 가까이 무너지지 않고 서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 Colossus, 라틴어로 '거대하다'라는 뜻으로 이 라틴어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정말 이름 그대로다. 사진, 영상으로 많이 본 이미지이지만, 두 눈으로 보면 그 거대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 예전에 어마어마한 넓이의 유럽 땅을 지배했던 국력과 재력으로 지어낸 것이겠지. 아버지는 콜로세움을 보자마자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셨다. 로마에 오면서부터 가족여행에 '탄력이 붙었다.' 여행이 궤도에 올라서 착착착, 경쾌한 속도로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 모양으로, 아버지는 부쩍 로마에서 여행 욕심을 내셨다. 더 보고 싶고, 하고 싶어 했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왜 좀 더 일찍 모시고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환갑'이라는 나이에 얽매이지 말고, 더 일찍 함께 여행을 했다면 어땠을까. 


로마패스가 있다면 입장 줄이 달라서 빨리 들어갈 수 있다.


콜로세움을 둘러보고 나서, 포로로마노로 발길을 돌렸다.  고대 로마의 여러 건물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아버지는 핸드폰 카메라로 열심히 사진을 찍으셨다. 아직 12시가 되기 전인데 어마어마하게 뜨거운 햇볕에 차츰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그늘로만 다녔다. 문제는 포로로마노에는 그늘이 거의 없다. 나무가 없기 때문. 

지하철을 타고 스파냐 역으로 가서 트리나 데이 몬티 성당 바로 앞으로 나왔다. 성당 앞 계단을 내려가면 그곳이 바로 오드리 헵번이 '로마의 휴일'에서 젤라또를 먹었던 곳이다. 트리나 데이 몬티 계단,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름은 '스페인 계단'이다. 계단 옆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단다. 계단 바로 앞, 배 모양 분수대, 폰타나 델라 바르카치아에서 손도 적셔 보았다. 올 때마다 항상 어마어마한 사람이 둘러싸고 있어서 손을 적셔 볼 생각은 못했는데, 일찍 돌아다니니 이런 점이 좋다. 생각보다 엄청 차가운 물이라 놀랐다. 로마 시대부터 한 번도 끊이지 않았다는 로마 시내 곳곳의 분수들. 어디에서부터 끌어오는 물인지, 새삼 대단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 광장에서 점심을 먹고 트레비 분수로 걸어갔다. 로마는 볼거리들이 고만고만하게 흩어져 있어서 걸어 다니기 좋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때라 그런지 정말 어마어마하게 사람이 많았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겨우 가족 사진을 찍고, 부모님에게 소원을 빌면서 동전을 왼쪽 어깨너머로 던지라고 했다.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엊그제 여쭈어 보니,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단다. '그것 밖에 더 있겠냐.' 하신다. 한낮의 더위에 돌아다니기는 힘들 것 같아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시원하게 씻고 한참을 낮잠을 자고 일어나 걸어서 산탄젤로 성으로 향했다. 서서히 해가 지는 시간으로, 사진을 찍기 가장 좋은 골든아워. 


산탄젤로 성 꼭대기에서 바라본 바티칸 성당


세 번이나 여행하면서도 산탄젤로 성에 들어와 본 건 처음이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영묘로 사용한 원통형의 건축물인데, 영묘 위에 건축물을 만들어 요새나 교황의 피신처로 사용하기도 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박물관으로, 그림, 무기, 옷 따위가 전시되어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흥미진진했는데, 문제는 내 배. 더위에 지쳐서 그랬는지 배탈이 나서 꼭대기에서부터 전력으로 달려서 화장실로 가야만 했다. 천천히 구경하고 내려온 가족과 함께 다시 숙소로 걸어가는 길. 산탄젤로 옆에서 버스킹을 하는 두 사람이 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난간에 걸터앉아, 서서히 분홍색에서 보라색으로 물드는 하늘 아래,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이번 로마 여행에서 잊지 못할 순간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이때다.

또 하루가 저문다. 내일은 부모님만 바티칸 투어를 하는 날. 바티칸 성당 뒤로 내려앉는 보라색 하늘을 바라보며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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