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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Nov 01. 2020

'가족'이란 공동체

환갑맞이 가족여행

"나랑 막내랑 10만원씩, 한 달에 20만원 적금 넣기 시작했다."

몇 달 전, 나중에 별이가 여행할 수 있을만큼 크면, 함께 여행 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벌써 여행할 돈을 모은다고 하신다.


'별이'는 여동생의 뱃속에서 자라나는 조카의 태명이다. 자식들의 결혼이 자꾸 늦어지면서 친구분들의 손주를 부러움으로만 보았던 부모님. 동생의 임신으로 부모님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 아버지, 어머니, 사촌동생, 외삼촌까지 모두 신이 났다. 아직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조카에 대한 애정은 나도 마찬가지라서, 별이가 어느 정도 크면 더 넓은 세계를 일찍부터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2018년 가족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적어도 내게는, 달라진 게 있다. 보름이 넘는 시간동안, 하루종일 가족과 붙어서 지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그랬다. 내가 가족을 위해 했던 일이 있다면, 부모님도 불편함과 피곤함을 뒤로 하고, 함께하는 여행에 발 맞추었다. 짜증을 낼 순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참고 지나갔으며, 폭발할 것 같은 딸의 어깨를 가만히 짚어주었다. 엄청난 습기와 더위를 헤치고 마트에서 생수를 사서 무겁게 들고 왔으며,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기도 했다. 새벽부터 이어지는 강행군 같은 여행 말고,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 하고 싶은 대로 돌아다니는 여행을 했다. 패키지 여행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마트, 시장 구경도 실컷 했고, 광장에 털썩 앉아서 젤라또를 먹기도 했다. 밀도 높은 시간 속에서, 삼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함께 하면서도 알지 못했던 서로에 대해 알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이루어진, 혈연으로 만들어진 가족. 여행이 끝나고, 2년이 흐른 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공동체'. 혈연으로 이어졌지만, 이제는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공동체라는 걸.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이만큼의 시간이 들었다는 걸. 앞으로 이어질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이 공동체를 더 단단하게 지켜낼 거라는 걸. 새로운 구성원과 함께 더 많이 웃을 거라는 걸. 한 치 앞도 모르는 삶 속에서, 부모님이 살아내는 인생을 보며, 나도 살아갈 힘을 얻을 거라는 걸. '가족'이라는 공동체. 앞으로도 소중하게 가꾸어 나가야 할 것.



여행 이야기에 덧붙여 가족 이야기를 쓰면서, 괴로웠던 일에 대해 쓸 때는 한참이고 쓰지 못한 채 손만 만지작 거렸다. 다시 한번 그때로 돌아간 듯, 생각과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하루종일, 때로는 며칠동안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바람이 가만히 가라앉기를 기다려야했다. 기다려도 가라앉지 않으면 무작정 손을 움직이기도 했다. 어떤 때는 바로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냥, 정리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왔던 가족에 대해서. 새로운 챕터로 나아가기 위해, 정리하고 싶었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하지 못하면서, 가족 여행에 대해 떠올리는 날이 잦아진 까닭도 있다. 글을 다 쓰고 나니,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든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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