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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Nov 01. 2020

여행의 끝

환갑맞이 가족여행

"우리 정희가 고생하다 왔구나?"

어머니가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친구와 통화하면서 막내가 속이 안 좋아서 토하고, 밥만 먹겠다고 해서 아침, 저녁으로 밥 해 먹이느라 애썼다는 말을 하자, 친구분이 저렇게 말하셨단다. 저 말을 전해들으면서 나는 움찔, 했는데 어머니는 웃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다.

"고생은 무슨 고생. 내 식구, 내 새끼 내가 챙겨 먹이는건데."


하루 세끼를 꼭 챙겨먹어야 하는 사람이 셋인데다, 막내가 '파스타는 더 이상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더 열심히 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아침을 하는 동안 내가 씻고 준비하고, 아침을 먹고 나서 내가 설거지를 할 동안 어머니가 나갈 채비를 했다. 저녁도 마찬가지. 없는 재료로 뚝딱, 된장찌개, 김치찌개, 닭볶음탕, 카레, 비빔국수 따위를 만들어내셨다. 여행을 와서 제일 좋은 건 남이 해주는 밥을 먹는 거라는데, 어머니는 여행을 와서도 식구들 밥 챙기기에 바빴다. 어른이 되어서야, 집을 나와서 내 살림을 하고 나서야, 그동안 내가 얼머나 어머니의 노동에 기대왔는지 깨달았다. 한끼를 요리하더라도, 장을 보는데서부터 시작해서, 멸치 육수 내기, 재료 다듬기, 설거지, 음식물쓰레기 치우기, 행주 삶기, 씽크대 물기 하나 없이 닦기까지,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다. 청소, 빨래는 또 어떤가. 꽤 나이들어서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에, 가사노동의 수고로움을 뒤늦게 알았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기억이 거의 없는데, 또렷이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교실 뒷문이 드드륵, 열리고 머리에 큰 바구니를 인 어머니가 나타났다. 바구니 안에는 집에서 튀긴 찹쌀도너츠가 잔뜩 들어 있었다. 친구들과 손과 입에 고소한 기름을 묻혀 가며 맛있게 먹었다. 왜 만들어 왔는지 몰랐었는데, 며칠 전에 여쭈어보니, 아마 1학년 때일거라고,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간식을 넣어주었다고, 빵이나 과자를 사서 보냈는데, 어머니는 만들어서 갖다 주고 싶었다고 하신다. 번거로움, 수고로움은 아무것도 아닌 우리 엄마. 하고자 하면, 두 팔 척척 걷어부치고 두려움 없이 달려드는 사람. 어쩌면 이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 나도 겁 없이 어떤 일에 달려들 수 있는 것 같다.



로마 마지막 날.

내일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부모님을 바티칸 반일 투어하는 장소까지 모셔다 드리고, 막내와 나는 도로 잤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슬렁슬렁 바티칸 성당 앞에 자리잡은 까페로 갔다. 부모님이 투어를 하는 동안 친구들에게 엽서를 썼다. 2011년에 여행하면서 찍었던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 와서 두 시간 넘게 엽서를 썼다. 바티칸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서 우체통에 집어 넣자, 반일 투어가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부모님과 바티칸 성당 앞에서 만나 포폴로 광장으로 갔다. 아버지는 투어에서 받은 감동으로 무척 들뜨셨다. 두 분 체력이 걱정되서 반일로 신청했는데, 전일투어를 했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핀치오에서 내려다 본 포폴로 광장. 2018


포폴로 광장 위로 올라가면 광장과 저 너머 바티칸의 쿠폴라까지 쭉 내려다보이는 핀치오(pincio) 광장이 나온다. 가족과 함께 천천히 숲을 산책하고 숙소로 들어가기 전, 바티칸 성당에 다 함께 들어갔다.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 쿠폴라 밑을 띠처럼 두른 글씨가 사실은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크기라고 한다. 마침 해가 서서히 지는 시간이라 스테인드 글라스와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래서 더욱 성스러운 분위기가 더해진다. 천천히 바티칸 성당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 날도 1일 1젤라또를 실천했다. 숙소 바로 밑이 젤라또 집인 걸. 

"마지막 젤라또야." 하고 핸드폰 카메라를 들어보이니 자연스럽게 젤라또를 내려다보는 포즈를 하는 어머니. 아버지는 "한 달은 더 여행할 수 있겠다.", "프랑스에 들렀다 가고 싶다." 고 여행이 끝나는 아쉬움을 드러내셨다. 천천히 속도를 붙여온, 이제 막 달리기에 들어간 여행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간다. 


숙소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티칸 박물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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