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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Aug 24. 2020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 사랑하는 일이다

여행하며 책읽기, 뉴질랜드편


엄마가 카톡으로 누리집 주소를 보냈다. ‘국대마스크’라는 누리집인데 아침 9시, 10시 두 번, 싼 값으로 마스크를 살 수 있단다. 집에 마스크가 있는데 코로나-19가 오래갈 것 같아서 더 사고 싶으시단다. 다음날 아침 9시, 10시에 들어가보려 했으나 접속도 못하고 실패했다. 인터넷으로 살펴보니 마스크 스무 장에 몇 십 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이거라도 사야 하나.’ 들어가서 살피니 주문량이 많아서 언제 배송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문구가 보인다. 마스크 하나를 이틀, 사흘씩 쓰면서 버틸 수는 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제서야 덜컥,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집에는 기저질환자가 셋이다. 아버지, 나, 막내. 그 중에 막내가 가장 오래 병을 앓았고 합병증이 조금씩 나타나서 제일 걱정이다. 날마다 늘어나는 확진자를 보며 불안함, 공포, 두려움이 몰려든다. 메르스, 사스, 신종플루 때는 겪어보지 못한 두려움이다. 마스크를 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터져나왔다. 감정이 쌓이고 쌓이면 종종 차 안에서 눈물이 터지곤 하는데, 죽음에 대한 공포,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꽤나 컸던 모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소식을 처음 들은 곳이 뉴질랜드라 한국에 있는 사람들보다 뒤늦게 공포가 찾아왔을 수도 있다. 뉴질랜드에서 TV로 BBC뉴스를 보며 ‘중국에서만 유행하다 그치겠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들려오는 소식이 점점 심각해졌다. 중국 안에서 전파 속도가 어마어마하고, 우리나라에도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 그래도 2월 8일 한국으로 들어오기까지 확진자는 채 서른 명이 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심각하지 않다는, 잘 관리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뉴질랜드에서도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아마도 여행 중이었던 중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 전에 싹쓸이를 해서 그런 것 같았다. 작은 마을에서는 약국마다 마스크가 동이 났고, 오클랜드라는 큰 도시에서나 겨우 한 사람마다 다섯 장을 판다고 했다. 그때는 우리나라에서 마스크를 구하기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도 못하고 달랑 두 장만 사서 들어왔다. 


뉴질랜드 여행을 가기 전에도 잘 떨어지지 않는 감기로 고생을 했다. 여행 가기 바로 전날 병원에 가서 감기약 일주일치를 더 지어 가기도 했다. 계절이 반대라 날이 따뜻해지니 기침이 조금 덜해지는가 싶더니, 들쑥날쑥한 여름 날씨에, 흐리고 바람이 불면 그새 기침을 쿨럭쿨럭 했다. 원래 체력이 약해서 조금만 무리했다 싶으면, 바로 기침이 났다. 한국에서부터 달고 온 감기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소식이 퍼지자 기침을 할 때마다 나를 보는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뉴질랜드는 거의 바로 중국인 입국 금지를 시켰고, 유럽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인종차별적인 기사를 내보내고, 식당에 스프레이로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낙서를 했다. 길 가다가 얻어 맞기도 하고, 버스 안에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험담을 듣는 동양인들의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너무나 쉽게 중국 탓을 하고, 중국인을 피하게 되는 손 쉬운 혐오와 배제. 너무나 어려운 이해와 공감, 연대. 


공포를 관장하는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전두엽의 활성화 정도가 낮아진다고 한다. 판단과 이성체계를 관장하는 부위가 일을 덜하게 된다고. (시사IN 2.25.16쪽) 




“이 회로는 ‘사랑회로’라고 불리는 곳과도 상당히 겹쳐요. 그러니까 우리 뇌는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꼈을 때 무리짓기와 구별짓기로 대응합니다. 이렇게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누고 나면, 내집단을 향해서는 사랑과 결속과 대규모 협력을 만들어내고, 외집단을 향해서는 분노와 공포와 역겨움을 느끼게 되죠. 내집단에 대한 사랑과 애착, 외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척, 이 둘은 정반대로 보이지만 사실은 한 회로에서 처리되는, 붙어있는 감정이라는 겁니다.” (시사IN 2.25.16쪽) 



일단 공포심에 불이 달칵, 켜지면 전두엽이 기능을 덜하므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바깥’으로 받아들인 무리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혐오와 배제를 하게 되는 인간의 속성. ‘사랑회로’와 ‘미움회로’가 겹쳐있다는 사실. 그래서 연대와 공감, 이해가 더 어렵다는 점. 달리 생각하면 두 회로가 겹쳐있으니까 연대와 이해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서른 명 남짓으로 잘 관리되던 코로나-19는 그러나, 2월 18일 31번 확진자를 기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주로 대구, 경북, 신천지 신도가 새로운 확진자였는데 3월 3일 현재 4812명 가운데 89%가 대구·경북이다. 이 글의 얼개를 짤 때까지만 해도 확진자가 한 명도 없던 원주도, 2월 27일 첫 번째 확진자를 시작으로 오늘(3월 3일) 열 명이다. 확진자가 나오기 전부터 모임·공연이 취소되고, 여행에서 돌아와 바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려던 계획도 접었다. 확진자가 점점 늘어나면서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날이 이어졌다. 엘리베이터에 1분 동안 같이 탔던 것만으로 감염이 된 사례가 나왔고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도 이쑤시개가 나타났다. 사람이 타고 있으면 함께 타지 않는 일이 상식이 되어버렸다. 영화는 꿈도 못 꾸고, 집에만 틀어 박혀 종일 뉴스만 본다. 오늘 확진자는 800명, 600명, 500명….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확진자 수에 한숨만 나오는 날들. 그 사이 교육부는 한 차례 개학을 미루었고, 어제(3월 2일) 개학을 2주 더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3월인데 아이들이 없으니 이상하다. 아무렇지 않게 밖으로 나가고, 친구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웃고 떠들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훌쩍 영화관으로 갈 수 있는 날들이 그립다. 원래 내가 누리던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하루 빨리 고립된 일상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뉴질랜드 여행을 하면서 모두 다섯 권의 책을 읽었다. 이번에 이북을 사서 전자책을 여러 권 넣어 뒀는데 여행 막바지에 이 책을 꺼내 읽었다.《아침의 피아노》(김진영, 한겨레출판)의 첫 줄은 이렇다.  

   

‘김진영 선생님은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아침의 피아노>의 글들을 쓰셨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펼쳤다가 가볍게 훅 들어오는 첫 문장에 벌써 눈물이 고였다. 아, 이 분은 돌아가셨구나.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글을 썼구나. 암 투병을 하면서도 끝까지 세상의 아름다움, 사람에 대한 고마움, 삶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구나.      




아침 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린다. 가지 끝 작은 잎들까지 조용하게 기쁘게 흔들린다. 흔들림들 사이로 빛들이 흩어져서 반짝인다. 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혼자서 둘이서 걸어간다. 노란 가방을 멘 아이도 종종걸음으로 걸어간다. 모두들 가로수 잎들처럼 흔들린다. 그들의 어깨 위에서 흩어진 빛들이 강 위의 파동처럼 반짝인다. 고요함과 기쁨으로 가득해서 엄숙한 세상을 바라본다. 그 한가운데 지금 나는 있다. (32쪽)



김진영 선생님은 나빠지는 병세에도 마음을 다잡고 끝까지 삶을 사랑한다. 마지막으로 남긴 글 한 줄. ‘내 마음은 편안하다.’ 죽음을 앞 둔 철학자가 병을 미워하고, 남을 탓하고, 자기 자신을 미워할 수 있을텐데 끝까지 사랑을 붙잡는다.      




사이사이 지나가는 천진하고 충만한 순간들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생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그래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중립의 시간이 있다. 그 어떤 불행의 현실도 이 불연속적 순간들, 무소속의 순간들, 뉘앙스의 순간들을 장악할 수 없고 정복할 수 없다. 그래서 불행의 현실들 속에서도 생은 늘 자유와 기쁨의 빛으로 빛난다. (138쪽)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루하루 소중한 사람을, 일상을, 세상을 껴안으

며, 사랑하며 살아야 이 시기를 잘 지날 수 있지 않을까. 공포와 불안에 떠는 대신, 친구와 sns로 소통하고, 맛있는 밥을 천천히 공을 들여서 해 먹고, 집에서 운동을 하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고, 소리 높여 노래 부르는 하루를, 평범한 일상을 지켜나가기. 그리하여 내 삶을 ‘늘 자유와 기쁨의 빛으로 빛내기.’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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