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검진 전 증후군
사람마다 다르지만 암 수술 후 적게는 3개월에서 6개월 간격으로 정기검진을 받는다. 나의 경우 6개월에 한 번씩 유방촬영과 초음파를 보고, 1년에 한 번씩 전신 검사를 진행한다. 이때 유방 MRI, 복부 CT, 유방촬영, 채혈, 소변 검사 등이 포함된다.
정기검진에 대한 공포 때문에 검진 전 일주일 전부터 PMS(생리전증후군)처럼 심리적, 신체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온다. 나는 그것을 정기검진 전 증후군이라 이름 붙였다. 급격히 우울해져서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거나 무기력증에 빠지기도 한다. 심란한 마음 때문에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밥맛도 없어서 일상이 조금씩 망가지고 마음가짐이 흐트러진다. 무엇보다 무척이나 예민해져 조그만 일에도 화가 나고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이 거슬린다. 정기검진 날이 다가올수록 그 증상은 더해지는데 하루 전날과 당일은 거의 시한폭탄 같다. 혹시 몸에 이상이 생겼으면 어떻게 하나 불안하고 괜히 이곳저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검진 당일에는 금식으로 더 예민해진다. 병원 가는 모습이 딱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 두렵다. 분명 지난 1년간 건강관리를 잘했음에도 생각지 못한 복병이 생길까 무서운 것이다. 이 불안하고 힘든 마음은 암을 경험하고 검진하러 가는 모든 환자들이 거의 비슷하게 느끼는 감정이다. 병원에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아팠던 과거 때문에 트라우마가 떠올라 감정이 땅굴 속 끝까지 내려가 버린다. 그러므로 진료가 끝나고 병원 주변 맛집을 간다든지 쇼핑을 간다든지 검진 후 기분 좋은 일정 하나를 만들어 본인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이 좋다. 병원에 대한 기억을 좋은 쪽으로 조작하는 방법이다.
아무리 준비를 열심히 해도 시험은 언제나 떨리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1년을 보냈지만 검사는 역시나 떨리고 무섭다. 얼마 전 남편과 1년 검진을 가는데 가는 길에 차가 유난히 막혔다. 막히는 것도 짜증 난 데다 막힌다고 혼잣말하는 남편의 행동이 계속 거슬렸다. 남편이 트는 신나는 음악도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지금 내 감정 상태와 맞지 않게 쿵쾅쿵쾅 신나는 비트가 미치도록 거슬렸다. 그렇게 막히는 경부고속도로를 뚫고 힘들게 병원에 도착했는데 또 차는 어찌나 많은지 주차장에 들어가는 것조차 한세월이었다.
나는 먼저 내리고 30분 만에 주차하고 녹초가 된 남편은 앞으로 버스 타고 오는 게 낫겠다고 했다. 그 말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어떻게 버스를 타고 오라고 말할 수 있냐고 화를 냈다. 주차 그까짓 게 얼마나 힘들다고 암 걸린 나보다 힘드냐는 생각에 버럭 화를 냈다. 그냥 주차하느라 힘들었지, 따라와 줘서 고맙다고 말하면 될 것도 그날은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다는 생각이 꽉 찼던 것 같다.
이렇듯 정기 검진 날은 고슴도치가 되어버린다. 가시 돋친 말로 찌르기도 하고 모든 것들을 삐뚤게 받아들인다. 언제나 가슴을 쥐어짜듯 누르는 유방촬영은 아프고, 30분 동안 시끄러운 통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엎드려 있어야 하는 MRI 검사는 힘들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현실 자각의 시간이 오면서 너무나 서럽다. 하지만 일단 수술이라는 큰 산은 넘었고, 수술한 지 벌써 1년이나 지났다는 사실, 정기검진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병원이 있다는 점, 의료보험이 있어서 큰 부담 없이 비싼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또 감사하다.
정말 좋은 환경에 산다. 익숙함에 속아 감사함을 잊어버리는 순간 내가 가진 행운은 쓰레기가 된다. 다음번 검사에는 조금 더 의연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