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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덕후 Oct 31. 2019

편견을 깨야 보이는 트윈세대

[공간 채우기]파일럿 프로그램  6주간의 기록과 주요 인사이트

[공간 채우기]에서는 트윈세대를 위한 제3의 공간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진저티프로젝트가 아이들이 공간에서 만날 경험을 상상하고, 경험을 만드는 콘텐츠와 자원을 채워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트윈세대가 원하는 것은 트윈세대가 가장 잘 안다는 믿음으로 아이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가는 진저티프로젝트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트윈세대를 위한 제3의 공간 프로젝트는 공공 도서관 안에 트윈세대를 위한 전용 공간을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여기서 트윈세대는 10대(Teenager)와 사이(Between)를 결합한 단어로 11~15세 나이의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의 낀 세대를 의미합니다. 프로젝트의 자세한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세요.

2주에 한 번씩 전주를 꼬박꼬박 갔던 초여름이 지나 어느새 쌀쌀한 가을의 날씨로 접어들고 있네요. 이번 글에서는 트윈세대가 관심 갖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직접 경험하도록 하여 트윈세대가 반응하는 경험과 경험을 촉진하는 환경에 대한 정성적 데이터를 ‘파일럿을 파일럿 하다-파일럿 프로그램 진행(기록)-회고-반영’의 과정으로 촘촘하게 수집한 '파일럿 프로그램' 6주 간의 기록과 발견한 것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일단, 영상을 하나 보고 시작할까요?

파일럿 프로그램 현장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스케치 영상


쉼과 자유 - 내가 트윈세대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과 편견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와 마칠 때를 비교해 가장 많이 변한 것은 ‘결과물'과 ‘프린트물'입니다. 기존에 고등학생, 그리고 중학생들과 했던 수업 경험을 기반하여 쉽고 재미있는 프린트물을 준비했고, 프로그램 시간 동안 달성해야 할 적당한 목표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수업 마지막에 결과물을 내도록 했지요.

스토리텔링을 해보는 시간, 아이들은 저의 이야기와 그리고 비록 장범준은 모르지만(-이것도 충격이었습니다) 같은 또래가 만든 '노래방에서' 뮤직비디오는 집중해서 재미있게 듣고 보고 있었는데, 막상 스토리텔링을 하도록 돕는 가이드가 적힌 A4용지를 받아 들자마자 흥미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프린트물 자체가 아이들의 흥미를 떨어뜨리고 있었기 때문에 프린트물이 얼마나 재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정해진 시간 내에 네 컷 만화 마감을 해야 했던 웹툰 수업의 경우 아이들의 긴장도가 높아지고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패드와 아이펜슬 사용법을 익히는 데 시간이 꽤 걸렸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리는 이 아이들에게 디지털 기기를 쥐어주면 아무런 설명 없이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알았는데 막상 스마트기기를 사용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 오면 휴대폰을 선생님께 내야 하고, 오픈 카톡 채팅방에 초대했을 때 데이터가 없어서 핫스팟을 열어주어야 했습니다. 청소년이 사용하는 요금제는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고 늘 와이파이를 찾아다니는 이유가 그래서였구나하고 알게 되었죠. 

솔직히 많이 당황했습니다. 진저티에서 이런 상황을 같이 회고하면서 ‘아이들이 결과보다는 과정을 충분히 즐기도록 하자'라고 이야기했고, 과감하게 설명은 줄이고 직관적으로 최대한 영상과 이미지를 활용하고, 프린트물을 사용하지 않고, 결과물을 제출하지 않고 오로지 과정을 즐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 아이들의 말에서 발견한 인사이트 +

눈치 보고 싶지 않다.

쉬고 싶다.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

데이터(wifi) 주세요!



개성과 취향 - 물어보면 한 가지씩은 갖고 있다.

“저는 촌놈이라 이런 거 잘 몰라요.”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인상 깊은 트윈세대의 말을 꼽는다면 ‘데드풀'이 이야기한 이 말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스토리텔링 시간에 모두의 기억에 남는 강렬한 스토리를 만들었던 데드풀이 웹툰으로는 어떤 만화를 만들어낼지 기대하고 있었는데 처음 잡아보는 아이패드와 아이펜슬을 익히는데 시간이 걸리는, 뭔가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후 해외 자료에서 아래 내용을 읽으며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이해하게 되었죠.


트윈세대는 이전에 경험한 방과 후 프로그램 스태프의 불친절함과 또래의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들이 실제로 경험했든 느낀 것이든 간에 트윈세대의 특별한 관심사였다. 특히 고학년 청소년의 경우 또래나 더 어린아이들 앞에서 바보처럼 보이거나 재능이 없거나 미숙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실제로 트윈세대는 선생님이 심술궂어 프로그램을 그만두었다고 자주 이야기했지만 추가 조사에 따르면 이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한 아이들이 자신의 안전한 공간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 쓰는 연막이기도 했다.  

<Something to Say - Success Principles for Afterschool Arts Programs p.31> 
“내가 촬영할래!” 
 “제대로 해, 건우야! 다시 찍자! 퀄리티가 중요해!” 


하지만 그 후로 아이패드를 몇 번 더 접하면서 데드풀이 의욕 있게 아이패드로 촬영을 본인이 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서 트윈세대에게는 각자만의 속도와 방식이 있고, 하나의 속도와 방식에 모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속도와 방식을 허용할 때 더 많은 것을 해보고 싶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버스 타고 가면서, 학원 가면서 틈틈이 그리고 쓴다

파일럿 프로그램 수업 시간이 끝난 이후에도 아이패드와 아이펜슬을 더 써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시간을 좀 더 주었는데,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던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며 자신은 이런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웹소설을 쓰고 있어요!” “저는 특수분장에 관심이 있어요. 학원에 다닐 거예요.” 라면서 교실에서는 말하지 않았던 각자의 취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 이틀 한 것이 아닌 것 같아 언제 시간이 나서 이렇게 많이 창작을 했냐고 물어보니 버스에서, 학원 가는 길에 짬짬이 그리고 썼다고 말해주었는데요, 무엇이든 나만의 방법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트윈세대의 욕구를 확인할 수 있었죠. 
 

음악도 그랬습니다. 프로그램 초반에는 아이들이 창작활동을 할 때 집중할 수 있도록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었는데 문득 이 아이들은 어떤 음악을 듣고 있을까? 궁금해서 신청곡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보일 줄은 말이죠. 

“저 여러 곡 신청해도 돼요?”
“왜 제 노래는 안 나와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는 건 중요해요. 작업할 때 필요하거든요.” 
“이거 제 거예요? 가지고 가도 돼요?”


나만의 코드네임을 담은 이름표, 나만 갖고 있는 볼펜 등 맞춤 아이템에 감동한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노래와 취향이 어떤 공간에서 울려 퍼진다는 것도 트윈세대의 취향 저격이었죠. (그곳이 설령 과학실이더라도 말입니다.)


신청곡 코너를 만들자마자 무섭게 붙은 신청곡 포스트잇과 랩 가사를 적을 수 있는 노트, 맞춤 볼펜



+ 아이들의 말에서 발견한 인사이트 +

실패하고 싶지 않다.

결과물이나 숙제, 경쟁에 대한 부담이 없어야 몰입한다.

가르침 받고 싶지 않다. (보여주면 스스로 한다)

나의 속도와 방식이 존중받으면 좋겠다.

나만의 개성과 취향을 기르고 싶다.

따로 또 같이하고 싶다, 맞춤 아이템은 감동이다. (코드네임, 나만의 볼펜, 신청곡 등)  




적당히 새로운 자극 


고등인턴과 함께 '덕질'을 주제로 랩 가사를 쓰는 중


파일럿 프로그램에는 많은 어른들이 함께했습니다. 영상을 촬영하는 분들도 계셨고, 파일럿 프로그램이 궁금해 참관을 오신 분도 계셨죠. 이 중에서 트윈세대가 가장 환영했던 사람들은 진저티프로젝트의 ‘고등인턴'이었습니다. 19세 고등인턴이 자기소개를 하자마자 대뜸 “고3인데 수능 준비 안 해요?”라고 묻거나 영국에서 살다온 고등인턴에게는 “영어 한 번 해보세요!”라고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습니다.


한편, ‘선생님'이나 부모님 또래의 분들이 크리에이티브 작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는 팔로 본인의 작품을 가리거나 “왜요?” 하며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제가 “저를 선생님이 아닌 프로덕후라고 불러주세요.”라고 거듭 말해도 아이들이 급할 때 저를 부르는 호칭은 “선생님!”이었어요. 하지만 고등인턴에게는 “홍길동! 도와주세요!” 하고 편안하게 말을 걸고, 아미(BTS 팬클럽)인 고등인턴과 죽이 척척 맞아 랩 가사를 써내려 가는 것을 보며 트윈세대는 언니 오빠와 같은 친근한 사람에게 마음을 쉽게 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트윈세대가 새로운 만남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호기심이었습니다. 실제로 음원을 낸 사람이 진행하는 수업, 영화 전공자가 진행할 때는 수업 끝난 이후에도 남아 궁금한 점을 묻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거든요. 



+ 아이들의 말에서 발견한 인사이트 +

호기심이 생기면 움직인다.

처음 하는 건 부담스럽지만 한 번 해보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만남은 낯설지만 은근히 설렌다.

친근하지만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도움 주는 어른이 좋다. (고등학생 staff, 전문가)



아이패드보다 간식이 더 좋아요!


간식 준비 가내수공업과 '내-일은 크리에이터' 아이템 월드컵


랩 가사 주제를 간식과 매점으로 쓰고, "오늘은 간식 안 줘요?" "매점 가요!"라는 말을 매 시간마다 들으며 트윈세대에게 간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했습니다. 아이패드보다 간식이 더 좋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하니 “정말이에요?” 라며 놀라는 분들을 많이 봤죠. 그래서 이상형 월드컵처럼 스탭 선호도와 (30대 이상 VS 고등인턴) 아이패드와 간식 중에서 우승자를 고르게 했습니다. 놀랍게도 최종 우승은 간식이 압도적이었는데요, 왜 간식을 골랐냐는 말에 아이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냥 먹는 게 좋아요.”
“아이패드는 못 먹잖아요.”


인기 만점, 랄프 매점과 코드네임 '알 수 없음'이 그린 랄프


 “랄프쌤, 오늘도 맛있는 거 사줄 거죠?” 
 “나는 랄프쌤 영상 찍어야지!” 

간식은 단순한 간식이 아닙니다. 트윈세대와의 관계의 양상을 바꾸기도 합니다. 어쩌다 아이들에게 잘못 걸려(?) 같은 조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샀던 코드네임 '랄프'(20세, 진저티 인턴). 그 이후로 간식을 사달라고 쫓아다니는 아이들을 대하느라 피곤해하기도 했지만 파일럿 프로그램 중반부터 나타났음에 불구하고 아이들로부터 인기가 가장 많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영상을 찍을 때도 랄프쌤을 찾고, 정해진 것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라고 했던 시간에도 자발적으로 랄프를 그리는 아이들이 나타났거든요. 마지막 시간에는 '랄프 매점'을 열어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도록 해 아이들이 더 랄프를 조르지 않도록 했는데요, 사진에서 보실 수 있듯이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이 가장 활기찬 시간이었습니다. 


+ 아이들의 말에서 발견한 인사이트 +

간식은 관계의 양상을 바꾼다

"간식이 최고야!"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발견한 주요 인사이트    


그래서 6주 간의 과정을 지나며, 이 글에 다 적지 못한 여러 에피소드와 아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저희가 발견한 주요 인사이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경험은 개별적이면서도 공통적이다


저마다의 배경, 개성, 취향, 관심사, 흥미에 따라 경험을 선택하고 경험에 몰입하는 속도와 방식이 다르다
> 각자의 속도와 방식을 존중한다

트윈세대의 특징과 그들의 맥락이 경험의 선택과 몰입에 반영된다
> 뭘 더하고 싶어 하지 않고, 덜하고 싶어 하는 그들의 경향성을 반영한다 


2. 경험은 상호작용이다


잘 짜인 프로그램, 멋진 결과물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간, 개인과 사물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프로그램을 잘 마치는 것보다 프로그램 진행 간 소통과 대화, 연결의 방식이 중요하다
(세심한 과정 설계 및 환경 세팅, 함께하는 친근한 어른) 


3. 경험은 과정이다


경험은 경험으로 이어진다. 경험을 선택하고, 경험에 몰입하고, 경험을 확장하는 등의 점진적이고 순환적인 ‘과정’이다
> 트윈세대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선택하고 몰입하며 확장할 수 있도록 경험의 주도권을 넘겨준다 




예상을 어긋난 것이 가장 큰 깨달음


파일럿 프로그램 전체 과정을 돌아보며 느낀 것은 '트윈세대는 나의 예상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좋아할 거야.” “이건 별로 안 좋아할 거야.” 했던 가정이 가장 많이 어긋난 것이 가장 큰 깨달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할 것이라 생각한 부분에서는 도움이 필요하기도 했고, 어려워할 거라 예상한 부분은 뜻밖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어른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마지막 시간에는 "프로덕후, 사랑했어요!"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트윈세대로부터 정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이 프로젝트를 마치 블랙박스와 같다고 비유했었는데요, 한 과정을 지나 블랙박스를 열어보니 참 많은 길을 걸었습니다. 돌아가기도 했고 여러 길 중에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것이 정답이다! 할 수 있는 길은 딱히 없었습니다. 길은 트윈세대의 수만큼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6주 동안 즐겁게 우리를 반겨준 근영중학교 1학년 ‘내-일은 크리에이터' 히어로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다음 글에서는 집중 워크숍 ‘사이 워크숍'과 ‘함께 워크숍'의 기록을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저티프로젝트 

CreaTeave Interpreter 
강진향 (프로덕후)








| 진저티프로젝트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gingert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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