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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우 Oct 06. 2019

브라보재즈라이프 (2010)

한국 재즈가 시작한 지점


대한민국 재즈 1세대들에게는 재즈 정신이 있다. 아프리카계 흑인이 미국 남부 항구에서 노예 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내며 재즈를 불렀듯 대한민국 재즈1세대도 1950~60년 가난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미군 부대에서 팁을 받으며 재즈를 불렀다. 어려움 속에서도 재즈만을 쫓은 이들은 그래서 재즈 정신 그 자체다. 대한민국 재즈의 버팀목, 재즈클럽 야누스를 운영해온 박성연은 "(재즈를 하는 게) 외롭고 괴로울 때 마다 생각했어요. 언젠가 블루스를 더 잘 부를 날이 올거야."고 말했다. 재즈를 통해 고단한 삶을 버텨낸 이들이다.


재즈 1세대는 대부분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다. 미8군 앞에서 재즈LP를 싼 가격에 사서 그걸 들으면서 한 음 한 음 재즈를 연주했다고 한다. 피아노를 연주하고 작곡 편곡을 하는 이판근은 서울대학교 음대를 나왔지만 나머지 분들은 정식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이들은 재즈를 사랑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흑인처럼 몸 안에 소울이 담겨있는 게 아닌 한국의 정서로 재즈를 풀어갔다. 김현성 재즈평론가는 "이들이 하는 연주가 세계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연주를 보는 것은 그 자체가 대한민국 재즈 역사를 보는 것이다."고 했다. 재즈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한국 정서가 담긴 재즈를 만들어 온 이들은 그래서 존중받아야 한다.


영화는 대한민국 재즈 1세대가 모두 참여하는 특별 공연을 향해 나아간다. 공연을 위해 원로들이 모이고 이들을 존경하는 재즈신의 후배들이 모인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 원로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담긴다. 드럼을 치는 류복성은 후배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소주를 마시는 자리에서 옛 이야기를 한다. 회사 상사라면 못들어주겠지만 재즈 원로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역사다. 피아노를 치는 이판근은 음악 연구소를 한다. 이판근은 영어로 된 재즈를 한글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재즈가 어려워서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밀양아리랑' '가시리' 등 한국판 재즈 스탠다드를 그가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좋지 않다. 음악연구소는 허름한 피아노 학원 같은 모양이다. 게다가 이곳은 재개발 구역이라 언제 헐릴 지 모른다. 그가 처한 환경이 이판근이라는 재즈 연주자 그리고 재즈 1세대가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 연주 톤은 세월이 녹아 혼이 담겼고 가득 찬 관객들은 호응을 보냈다. 김준이 부른 마이웨이, 박성연이 부른 물안개, 이판근이 작곡한 밀양아리랑, 곡들은 한국 재즈 역사를 조금씩 밟아나간다. 원로들이 펼쳐놓은 공연을 후배들이 이어받는다. 웅산이 노래를 부르고 원로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솔로를 뽑아낸다. 두 세대가 만나는 지점이다. 20여 곡이 펼쳐진 공연은 한국 재즈를 정리하는 역사적 의미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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