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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우 Jun 17. 2017

스마트폰 데이터를 500메가로 낮췄다

사색할 시간이 더 많아졌다

처음 핸드폰을 살 때 약정으로 했던 비싼 요금제 기한이 끝났다. 매달 7만 원씩 내는 게 여간 부담이 아니었는데 잘 됐다. 데이터 10기가, 전화 문자 무제한. 스마트폰을 잘 들여다보지 않는 나에게는 너무 많은 기능이었다. 빨리 6개월이 지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높은 요금제를 쓰다 보니 그에 맞게 생활도 변해 갔다. 데이터를 10기가보다 더 많이 썼다. 10기가라는 양은 어디서나 영상을 볼 수 있고 카톡으로 많은 사진을 전송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10기가를 다 써보려도 오케이. 조금 더 느린 속도로 무제한으로 데이터가 제공된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시간이 급격히 늘어났다. 


6개월이 지나자마자 얼른 요금제를 변경하려고 했다. 3만 원짜리 데이터는 500메가만 제공되는 거였다. 순간 망설였다. 10기가를 쓰다가 500메가만 쓸 수 있을까. 부족해서 오히려 추가 데이터 요금이 더 나가는 거 아닐까. 이것 때문에 괜히 스트레스만 늘어나는 게 아닐까. 망설임 끝에 일단 변경해보기로 했다. 정 안되면 다음 달에 다시 변경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역시 습관은 무서웠다. 영상은 와이파이가 아니면 안 봤지만 커뮤니티나 사진들은 아무 생각 없이 봤다. 이미지와 텍스트에 데이터가 이렇게나 많이 나가는지 처음 알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키득 거리며 기사 몇 개, 커뮤니티 글 몇 개 보다 보면 데이터는 거의 반 이상 사라져 있다. 요금제가 겨우 500메가 밖에 안되니까. 


이대로는 카톡도 못하겠다 싶어 500메가를 더 충전했다. 그러곤 집이 아니면 핸드폰으로 뭘 보거나 찾는 일은 안 하려 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잠깐 들어갔던 커뮤니티, 심심할 때 보던 뉴스 기사, 걸어가며 보던 인기글들. 이런 것들은 절대 할 수 없다. 잠깐의 사이 시간 동안 핸드폰으로 손이 갔다. 핸드폰을 켜 무언가를 보려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이제 이러면 안 된다고. 그러다가 요금 폭탄 맞는다고. 


잠깐의 시간에도 핸드폰을 보며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 했던 것 같다. 그 시간이 무의미한 시간이니까 핸드폰을 해야겠다 이거다. 잠깐 쉴 수도 있는 시간인데. 버스 정류장에서는 지나가는 차나 사람을 구경하며 쉴 수도 있는 건데. 하루 종일 돌아가는 뇌의 기능을 잠시 쉬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스마트폰에 빼앗겼었다. 뇌가 쉬지를 못하니까 정작 필요할 때는 뇌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회의 시간에도 멍하니 있게 되고 사람을 만나고 쉬고 싶은 상태였다. 


스마트폰이 사라진 자리에 사색이 들어섰다. 버스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면 좋을까. 이런 근원적인 질문까지 막힘없이 들어갔다. 최근에 책을 못 읽으면서 생각할 시간이 줄어서 바보가 된 듯한 기분에 걱정했다. 책 읽고 생각하며 자아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책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할 시간이 없었던 거다. 생각할 시간에 스마트폰을 채워 넣었으니까.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과 괴리되는 것일 거다. 스스로의 생각이 머리를 채우지 않고 누군가 만든 콘텐츠로 생각이 가득 찬다면 자아상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 있는가'처럼 말이다. 


고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좋아한다. 20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며 오로지 자신의 생각으로만 그 혹독한 시절을 견뎌왔다. 선생 자신도 감옥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한 원동력이 '사색'이었음을 밝혔다. 사색을 통해서 자신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아무리 혹독한 환경일지라도. 혼자 생각할 수 없는 단계가 온다면 그 자체가 자신과의 단절이고 세상과의 단절이 아닐까. 세상을 살고 있지만 실은 감옥 속에 갇힌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론은 스마트폰 좀 치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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