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음식점 유행에 얽혀 있는 문화 정체성의 문제
외식을 하다 보면 일본식 음식점을 자주 가게 된다. 이름부터 메뉴까지 모두 일본어로 돼 있는 곳이다. 히라가나도 채 모르면서 일단 들어간다. 카레 냄새가 난다고레. 인테리어는 또 어떤가. 일본식 목조 양식으로 외관부터 내부까지 잘 꾸며져 있다. 여기가 흡사 일본이라 해도 믿을 정도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는가. 결국 한국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점에서 문제다.
첫째, 외부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이미지가 사라진다. 외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봐 보자. 한국을 여행하는 관광객은 한국의 문화를 알고 싶어 한다. 비빔밥 불고기 외에도 한국만의 음식을 맛보고 싶을 거다. 그런데 없다. 홍대 강남 명동을 가도 우리만의 음식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엔 대신 일본풍의 음식점이 자리하고 있다. 관광객은 뭐라 생각할까. "여기가 한국이야 일본이야?" 이런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할 거다.
둘째, 한식의 해외 진출 더 어렵다. 우리나라 음식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대표적인 게 비빔밥과 불고기. 그 외에 뭐가 있는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음식문화가 해외에서 안 먹힐 만큼 매력이 없는 건가. 그렇지도 않다. 한국을 좀 더 깊숙하게 살펴본 관광객들은 한국의 음식문화가 아주 매력적이라 말한다. 어느 나라 음식보다도 말이다. 알베르토 몬디는 "한국 음식문화는 여러 재료들이 섞이는 데서 아주 매력적이에요. 모든 외국인들이 좋아할 겁니다. 근데 한국인만 그걸 몰라요." 우리는 우리의 매력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낮은 민족적 자존감에서 비롯되는 자기 비하인 건가.
셋째, 내부적 결속에 문제가 생긴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일본 음식 사진이 참 많다. 일본에서 찍은 게 아니다. 저기 홍대나 연남동 골목을 가면 있는 음식적이다. 일본식 음식점은 그렇게 한국의 혈관 곳곳에 알알이 박혀있다. 돈부리 라멘은 물론이고 이젠 일본 가정식도 유행한다. 말이 가정식이지 백반이랑 다를 게 없는 음식이다. 그저 예쁜 그릇과 일본풍으로 치장된 일본식 감성이 가정식 마저 상품으로 만들고 있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상점도 늘어나는 거고. 그에 반해 한국식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랑은 어디 있는가. 물론 한국 맛집도 올리기는 하지만 그것이 문화적 정체성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는다. 그냥 맛집이라 올린다. 문화는 음식으로도 전파된다. 그래서 걱정이다. 끼니마다 일본식을 먹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로 1위가 오사카 뒤를 이어 도쿄, 후쿠오카가 따라온다. 10위 권 안에 일본 도시가 3개나 있다. 다른 나라는 하나의 도시만 있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다.
삿포로로 여행을 갔다. 매 끼니마다 덮밥을 먹고 초밥을 먹고 라멘을 먹었다. 일본 음식을 일본에서 먹었지만 씻을 수 없는 기시감이 따라다녔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한 호주 남성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호주에서 사회복지 공무원을 지내는 그는 휴가를 얻어 8주 동안 일본 전국을 여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8주 동안 휴가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그 소중한 기간을 하필 일본에서 보내는지 궁금했다. 그는 역사가 짧은 호주와 달리 전통과 자연이 조화된 일본이 좋다고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디지몬 드래곤볼 포켓몬스터를 보며 자라 문화적으로도 친근하다는 것도 빠지지 않았다. 오사카성을 보며 감탄하고 일본 음식을 먹으며 전통을 느낀다는 그에게 왜 한국은 선택하지 않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그는 강남스타일 이외에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두유 노 강남스타일? 한 게 아니라 그냥 한국에서 왔다니까 강남스타일했다. 정말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식사할 곳을 찾으며 롯데월드 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결국 먹을만한 곳은 일본식 음식점이었다. 일본식 카레를 먹었다. 맛있었다. 어느새 내 입맛도 일본식에 길들여져있구나 싶었다. 정말 맛있어서 이럴 거면 굳이 일본은 왜 가나 싶었다. 일본에서 먹고 싶은 음식 사실 서울에 다 있다. 이게 좋은 건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 음식도 그 나라에 뿌리 깊게 침투하지 못했다. 심지어 중국집 음식도 한국식 음식이다. 짜장면 탕수육 짬뽕 모두 중국에선 맛보기 어렵다. 그래서 음식으로 일본과 동질화되는 현상이 나는 우려스럽다.
90년대 초반 일본 문화가 개방될 때 많은 우려가 있었다. '일본 문화는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데 우리나라 문화를 잠식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화는 한국 문화를 완전히 잠식하지 못하고 적당히 한국 문화에 융화됐다.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 특히 예능은 일본 포맷과 자막 스타일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국적 정체성은 유지했으니 문화 융합이라 칭하는 게 적절할 거다. 일본 문화는 적당한 서브 컬처로 존재하며 한국 문화는 kpop, 드라마와 같은 메가 히트 상품을 나름 만들어냈다. 그런 점에서 90년대의 우려는 다행히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식 문화는 어떠한가. 문화 융합 수준을 넘어섰다. 거의 문화 잠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다. "일본 음식점은 세계 어디서나 인기 있지 않냐. 우리나라도 그런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냐." 하지만 지금 서울처럼 엄청난 점유를 보이고 있는 나라는 없다. 호주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어디서도 일본 음식점이 이렇게 많이 않았고 중국 베이징 왕푸징 거리에도 일본 음식이 과도하게 점유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점유 현상은 분명히 음식 문화 잠식을 넘어 문화 침략 수준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음식 문화의 파도가 몰려든다. 나 자신도 일본 음식을 맛있게 소비하면서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변화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일본 음식 인기 현상이 단지 음식 문화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거다. 원인으로는 한국 문화에 대한 자국민의 낮은 자존감과 연관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에 그치지 않고 역사와 민족적 정체성까지 연결될지도 모르겠다. 이 현상의 영향 또한 문화를 넘어 역사와 국가적 외교에도 확장될 수 있다. 일본 음식 문화를 즐기는 우리들은 일본에 더 자주 가게 되고 일본을 좋아하게 되고 일본을 옹호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일본을 좋아하는 마음이 자라나는 동시에 자국 문화에 대해서는 열등감을 가질 수도 있다. '일본은 이렇게 음식 문화를 잘 만들어놨는데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음식이 있나?' 이런 생각 일본 여행하는 누구든 어렴풋이 가질 수 있으리라. 이 생각이 여기서 머물러서는 문화적 계급주의에 그대로 갇혀 버리게 된다.
원인과 영향이 어찌 됐든 지금 현상의 불을 끄기 위해서는 자국 음식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게 필요하리라. 이는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확고한 정체성이다. 예를 들어 일본 음식 문화는 아기자기한 디테일이 살아 있는 음식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한 단어로는 정교함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면 우리의 음식 정체성은 뭘까. 멀리서 볼 때는 복잡하고 뒤섞여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또 다르게 보면 역동적이고 활기찬 음식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러 가지 재료가 섞이고 또 그게 나름의 맛을 내는 것. 조화에서 나오는 힘이 있다. 이런 걸 표현하려 한국 문화 광고에서는 꾕가리를 치며 상모를 돌리는 사물놀이패가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해외 상대로만 커뮤니케이션하지 말고 내부 커뮤니케이션도 지속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우리도 정체성을 계속 축적하고 강화시켜나갈 게 아닌가. (이런 점에서 다시 한번 헬조선이다. 공동체 의식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 좌파 탓만 하며 나라의 정체성을 팔아버렸다.)
내외부에 문화적 정체성을 제대로 커뮤니케이션하자.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