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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꿈꾸는회계사 Jan 14. 2023

양떼몰이에서 지난 인생을 발견하다.

어느 전문직의 때늦은 소회



 양떼몰이를 본 적이 있는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양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주인의 명령을 따라 뛰어다니는 그 양들의 모습에서 지난 인생이 살짝 오버랩 되는 순간, 더 이상 그 양들이 귀엽지만은 않았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진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지만, 확실히 예전에는 사회에서 정해 놓은 정답이 있었던 것 같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하고 집 사고 차 사고 평범하게 사는 이런 인생의 루트가 가장 무난하면서도 인정받는 루트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공부에 대해서는 일절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지만, 눈치가 빠른 탓인지 어린 나이부터 이 길이 가장 가성비가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사회에서 정답이라고 정해 놓은 이 길을, 주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양들처럼 고분고분 아무런 의심도 고민도 없이 따라왔다.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좀 어려웠던 것 같다. 의사, 변호사 등 부모님의 기대가 반영된 대답을 하곤 했지만 정말로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이야 거의 게임 폐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논외로 하고 고등학교 시절 장래 희망은 이랬다.

              





 물론 카지노딜러는 생각만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하진 못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부모님께 이야기했다가 온 집안 분위기가 싸늘해졌던 기억이 있다. 저 3가지 대안 중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교사였다. 수능 보기 직전까지만 해도 사범대 또는 교대에 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당시 정말 교사가 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딱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특별히 재밌어 보이는 것도 없었다. 교사는 안정적인 직업이고 방학과 연금도 있다고 하니까 그나마 좋아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 성향으로 위험선호자보다는 위험회피자 쪽에 훨씬 가깝다고 생각했고 편안히 스트레스 없이 살고 싶었다.




 그렇게 수능이 끝났고 일부 교대에 지원할 경우 4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주변 친구들이 한두 마디 거들기 시작했다. "인서울 경영학과 가서 취직하고 돈 많이 벌어야지, 이 친구 꿈이 작네 쯧쯧…” 물론 모두가 저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고 교사의 꿈을 응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데 유독 저 말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두어 번 저런 말들을 듣다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마치 교대에 가면 야망 없고 재미없는 소시민 같고, 인서울 경영학과에 가면 스마트하고 진취적인 대인배가 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주변에서 정답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길로 흘러갔다.




 그 뒤 대학에 입학하고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군을 제대하고 나서는 사회에서 정해 놓은 몇 가지 대안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이야 다른 대안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 좁은 시야로는 그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른 선배들처럼 취직을 준비할까, 자격증 시험을 준비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시험에 좀 강하고 실력에 비해 점수가 잘 나오는 편이니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때도 내가 회계가 좋고 회계를 사랑해서 회계사를 선택했을까? 이쯤 되면 예상할 것이다. 회계사가 되어 자본주의의 파수꾼 노릇을 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 시점에 그 대안이 가성비가 가장 좋아 보였고 먹고살 걱정은 없겠다는 생각에 가까웠다. 그렇게 시험에 합격하고 당연한 수순으로 회계법인에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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