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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꿈꾸는회계사 Jan 11. 2023

전문직 최후의 보루, 개업

전문직의 꽃


 전문직 종사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사무실 개업을 꿈꾼다. 아무리 힘들다 힘들다 해도 주변 전문직들 보면 어떻게든 먹고사는 거 같던데, 역시 전문직의 꽃은 개업이 아니겠는가? 결국 개업을 하지 않는다면 당장의 삶이 일반 직장인과 구조적으로 다를 게 없고, 정년 없는 평생직업은 결국 개업을 해야만 이룰 수 있는 특권이다. 하지만 전문직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것만 같은 그 개업을 당사자들이 망설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당장의 소득 감소는 피할 수 없다. 개업 전에 클라이언트를 충분히 확보했거나 인적 네트워크가 훌륭하다면 모를까, 개업 첫해는 기존 연봉의 반토막도 각오해야 한다. 법인에 근무할 때 그토록 원하던 워라밸을 지겹게 누리게 되지만, 밤에 잠이 오지 않는 부작용이 생긴다. 원래 풍족하고 부유한 전문직이라면 개업은 좋은 선택이 분명하다. 본인이 원하는 일만 하면서 준 백수 급의 생활을 하기 때문에 시간은 넘쳐나고, 전문직이라는 타이틀 하에 사회적 시선까지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대부분의 전문직들에게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얼른 꿈을 깨도록 하자. 경험적으로 현업에 있으면서 지켜본 바에 따르면 개업한 전문직들의 소득 편차는 상당히 컸다. 법인 급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소득을 올리는 사람도 봤고 정반대로 몇 년이 지나도 파트타이머 생활을 전전하며 유의미한 성장이 없는 경우도 봤다. 잘 되는 사람을 보면서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특별한 공통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술, 골프, 접대, 실력, 매력 등 영업 방법도 가지각색이었고 ‘저 사람은 개업하면 진짜 대박 날 것 같아’ 하던 사람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냥 막연히 개업하면 그래도 누군가 날 써주지 않을까 하겠지만, 그런 순진한 마음은 넣어두자. 경쟁자들이 넘쳐나는데 대체 당신의 뭘 믿고 사건을 맡기고, 기장을 맡기고, 감사를 맡기고, 감정평가를 맡기겠는가. 절대 쉽지 않다. 애초에 네트워크가 확보되어 있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전문직은 사실 성실하게 공부 열심히 한 모범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전문직 자격증을 취득하고 수습 기간을 거쳐 전문지식을 갈고닦으며 전문성을 쌓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 과정에서 괜찮은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기존의 전문직들이 자식들에게 같은 직업을 시키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형 회계법인에 근무하던 시절, 아버지가 회계사인 동료가 있었는데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그 동료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기승전 아버지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 동료가 일을 잘하면 아버지가 회계사이신데 생각보다 열심히 한다는 평을 받았고, 일을 못 할 땐 그러면 그렇지 열심히 할 이유가 없으니 간절함이 없다는 평을 받았다. 개업 시장에서 클라이언트 확보가 됐다면 사실상 절반은 이긴 게임이다. 클라이언트를 자식에게 넘기는 데에는 상증세도 0원이다.




  결국 개업은 앞선 장에서 말한 영업, 클라이언트, 덤핑 등의 복합적이고 현실적인 리스크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 게임처럼 공략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공한 사람들도 너무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보통은 법인 생활을 하다가 이제 어느 정도 시기적으로 적합하다 싶거나, 조직 생활에서 더 이상 답이 보이지 않을 때 개업을 생각하게 된다. 아니 대부분의 전문직은 궁극적으로는 개업이라는 대안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개업만이 유일한 대안인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회계사 시험 과목 중 재무관리라는 과목을 공부하다 보면, 해리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 이론을 배우게 된다. 어쩌면 인생을 관통하는 중요한 전략이 될 수도 있는, 이 포트폴리오 이론의 핵심은 수익은 극대화하면서 리스크는 최소화하는 포트폴리오를 선택하는 것이다. 어쩌면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도 일종의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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