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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꿈꾸는회계사 Jan 07. 2023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덤핑(dumping)

그 똑똑한 전문직들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덤핑(dumping)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덤핑:  채산을 무시한 싼 가격으로 상품을 파는 일>




 쉽게 말해 가격 후려치기이다. 일종의 미끼 차원에서 염가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정말 치열한 가격경쟁에 밀려 울며 겨자먹기로 염가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신규 클라이언트와 한번 연이 닿으면 파생되는 업무가 생각보다 많다. 따라서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해 일단 내 양식장 안으로 유인하는 전략은 상당히 유효하다. 이런 큰 그림 전략은 대형법인에서도 종종 사용하는 전략인데 예를 들면 염가로 세무조정을 제공하고 추후 세무 컨설팅을 노리는 것이다. 이러한 미끼상품이라면 그래도 일종의 마케팅 전략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인데,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가격경쟁에 떠밀린 생계형 덤핑은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예상하겠지만 이런 가격 후려치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끝없는 경쟁 시스템에 있다. 개업 전문직의 경우, 특별히 정년의 개념이 없고 의지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일할 수 있다.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들은 흔히 볼 수 있고,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 다른 전문직종에서도 70대 이상의 현업들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잠재적 경쟁자들이 끝없이 유입되는 것에 있다. 기존의 전문직들은 전혀 은퇴할 생각이 없는데, 신규 유입자들은 매년 쏟아진다. 변호사의 경우 사법고시 폐지로 인해 신규 진입자가 대폭 늘어났고, 회계사의 경우 매년 1천 명에 가까운 인원이 합격하는데 과거 200명씩 합격하던 시절에 비하면 엄청난 인원이다. 




 이렇게 시장에서는 전문직 공급이 점점 늘어나는 와중에,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고 관련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투명한 가격 비교가 가능해졌다. 예전이라면  법원 앞 변호사 사무실을 발품 팔아서 비교하고, 세무서 앞 세무사 사무실을 찾아다녔지만, 지금은 훨씬 접근성이 좋아졌다. 로톡, 강남언니, 세무통, 법무통과 같은 직관적인 플랫폼을 통해 손쉽게 가격을 비교하고 견적을 낼 수 있다. 이 플랫폼에서 살아남으려면 뭐니 뭐니 해도 우선은 가격적으로 매력이 있어야 한다. 네이버 최저가를 비교해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프리랜서 플랫폼 크몽에 가보면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들이 화려한 썸네일을 달고 가격을 앞세워 경쟁하고 있고, 세무사 기장 대리수수료는 개인사업자 기준 5만원도 등장했다. 




 업무의 퀄리티가 매우 중요하거나, 죽느냐 사느냐 문제이거나, 거액의 세금을 내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라면 모를까 매년 신고해야 하는 정기적인 업무이거나 구색만 갖추면 되는 일이라면 당연히 저렴할수록 좋다. 그러나 덤핑은 서비스 질의 하락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결국 덤핑의 끝은 공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점점 더 어려워지는 환경 속에서 서로 출혈 경쟁을 지속하다 보면 너 죽고 나 죽고 밖에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덤핑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한 그 전문직들의 심정이 이해되기 때문에, 그리고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기 때문에, 쉽게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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