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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꿈꾸는회계사 Jan 19. 2023

탄탄대로라는 꿈

합격만 하면 고민 끝!




 회계사 1차 시험 합격자 발표날, 머릿속에서는 앞으로 쭉 뻗은 탄탄대로의 삶이 그려졌다. 수험생 시절이라 사회생활 경험도 없을 때이니 이런 비현실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앞으로 회계사 시험만 합격하면 부자는 당연히 되는 거고, 가만있어 보자… 그러면 집은 뭘 사야 하나? 그래 일단 강남 3구부터 입성하자. 그러면 차도 급을 맞춰야 하니까… E클로 가야겠네 ㅎㅎ’ 그날 밤은 500ml 맥주 한 캔에 만취가 되어 이런 꿈을 꾸며 잠이 들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듯이, 현실을 아주 잘 알았다면 오히려 합격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과도한 기대, 허황된 꿈이 합격을 도왔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회계법인 입사 후 얼마 뒤 든 생각은 시험 합격이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향도 너무 많았고, 어떠한 방향에서도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었기에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일단 법인에 입사했으니, 법인에서 끝을 볼까 생각해봤다. 하지만 아쉽게도 파트너는 시켜달라고 떼쓴다고 아무나 시켜 주는 건 아니었다. 파트너 회계사라는 꿈을 가지고 야근하고 있는 선배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 저 방법뿐일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일단은 돈을 떠나 그 선배들의 삶이 전혀 윤택해 보이지 않았고, 파트너까지 단순히 버티면 되는 게 아니라 그 와중에 우수한 퍼포먼스를 꾸준히 내야 하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일에 인생을 걸기엔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다. 




 법인에서 점차 연차가 쌓여가면서 슬슬 방향을 정해야 했다. 다음 고민한 대안은 개업이었다. 주위 지인들이 하나둘 개업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 당시 개업에 도전한 지인 중 절반은 성공했고 절반은 실패했다. 그 당시 나도 개업을 시도했다면 지금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의 손실 회피 본능 때문인지 성공한 지인들보다 실패한 지인들에게 훨씬 더 눈이 갔다. 개업 시도 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지인들을 보면서 맨땅의 헤딩 개업은 할 게 못 된다고 생각했다. 개업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너무나 복합적이고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다 보니 실제로 개업을 해보기전까지는 예측이 쉽지 않다. 실패한 지인들은 왜 실패했을까? 업황을 잘못타서? 영업을 못 해서? 나이가 너무 어려 전문성이 부족해 보여서? 탈모가 심해서?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니면 일반 대기업으로 이직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해야 할까? 대기업 이직의 경우, 전문직 종사자에게 어려운 일은 몰리는 게 일반적이고 또 승진에서도 성골들에게 밀리는 경우가 많아 이것저것 고민할 게 많았다. 공무원급의 안정성을 바란 건 아니지만 어떤 선택을 해도 안정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었고 이거다 싶은 대안도 뚜렷하지 않았다. 이 다양한 선택권을 갖는다는 것이 전문직이 갖는 특권이겠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길은 없었다. 




 흔히 전문자격증은 하나의 무기, 또는 훨훨 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날개의 역할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수험생 시절엔 이해할 수 없었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시험에 합격하면 모든 고민이 사라지고 탄탄대로가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합격의 즐거움은 잠시였고, 상상했던 탄탄대로는 지금은 많이 희미해졌다. 전문직이라 해도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다 보면 탄탄대로는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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