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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꿈꾸는회계사 Jan 30. 2023

위험회피자라는 정체성

위험회피자에서 소심한 위험선호자까지


 법인에 근무하던 시절, 어느 점심시간이었다. 사회적으로 벼락거지라든가 하는 말이 유행하며 재테크가 한참 관심을 받던 시점이었다. 함께 일하던 선배 회계사가 말했다.

“아니 어떻게 주식 비중이 그렇게 높아? 걱정 안 돼? 난 1억 이상은 도저히 주식 못하겠더라”

내 생각은 다르지만, 그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은 나를 전형적인 위험선호자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과거의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엥, 니가?’ 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과거의 나는 스스로를 위험회피자로 규정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할 때도 스스로 위험회피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부모님의 성향을 따라갔을 수도 있고, 또 그 당시에는 대부분 그랬으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게 맞나보다 했을 수도 있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고3 때 나의 장래 희망은 교사였다. 그런데 ‘넌 스타일상 그냥 교사, 공무원 이런 게 딱이긴 하다’와 같은 말을 들었을때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안에 내포된 정적이고 따분하고 그런 이미지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회계사로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도 이런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출을 지나치게 두려워했고 주식은 패가망신, 부동산은 일단 먼일이었다. 그 당시 회계사 연봉이 높지 않아 쌓이는 금액도 많지 않았지만, 그냥 예금계좌에 방치하고 있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이자를 받아도 남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쉽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경험적으로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전문직들도 높은 비율로 위험회피 성향이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그런 위험회피자들이 많아 안심되는 측면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회계사라고 하면 금융전문가, 투자전문가와 같은 이미지를 생각하는데 사실 거의 무관하다. 회계사 중에도 재테크에 무지한 사람도 많고, 일을 하다 보면 상장사 중에도 생각보다 엉망인 회사들이 많아 오히려 쉽게 주식에 접근하지 못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렇게 법인에 입사하고 시키는 일 열심히 하면서 별생각 없이 지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고 그게 필요한지도 몰랐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기 시작하고 대략 이 업계에 대해 알게 되면서 슬슬 진로 고민을 하고 있던 시점이었는데, 어느 날 일하다가 파트너 회계사에게 좀 깨진 적이 있었다. 이제는 그 이유도 기억이 안 난다. 왜 혼났더라...?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잘못 생각한 게 맞고 정당한 지적이었을 것 같은데, 그때는 생각이 많을 때라 그런지 그 순간 향후 10년간의 미래가 파노라마처럼 그려졌다. 이렇게 법인 생활하면서 일하고 야근하고 반복하는 것이 내 인생이라면 행복과는 거리가 멀겠다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날 밤 새벽 택시를 타고 오피스텔로 돌아가는 길에   창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뇌 속의 어떤 프로세스로 인해 그런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새벽 "나는 위험회피자" 라는 그동안의 정체성이 파괴됐다고 생각한다. 그 뒤 창업박람회에 다니며 창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홧김'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돌이켜 보니 고등학교 시절 교사를 막연히 꿈꾸던 나와 지금의 나는 참 많이도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작은 계기로 인해 시작된 이런 변화는 가끔 스스로 놀라게 할 때도 있다. 지금의 인생이 대단히 성공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외부의 인정 보다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에 가까운데, 이 부분에 큰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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