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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꿈꾸는회계사 Feb 01. 2023

전문직에게는 개업만이 유일한 대안일까?

인생을 바꾼 포트폴리오 이론

 회계법인 생활 4,5년 차 무렵, 강남에 있는 한 조개구이집에 꽂혀 친한 동료들과 꽤 자주 갔었다. 거기만 가면 만취 및 인사불성 되었는데, 어느 날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열변을 토했다. "어쩔 땐 자격증이 발목 잡는다고 느낄 때가 있다. 우린 진짜 이직이랑 개업밖에 대안이 없는 거냐? 다른 거 재밌고 돈 되는 게 이렇게 많은데?" 하지만 솔직히 그들이 귀 기울여 듣는다는 느낌은 없었고, 눈빛에서 ‘얘 또 시작이네’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말았다. 




 늦여름쯤으로 성과급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는데, 보통은 그 시점에 퇴사를 많이 고민한다. 곧 찬 바람이 불고 겨울이 되면, 또다시 작년 비지 시즌의 그 고통을 느껴야만 한다. 슬슬 입사 동기들도 하나둘 제 살길을 찾아 퇴사하던 시점이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고민은 적지 않게 했고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머릿속에서 구상해보기도 하고 백지에 마인드맵을 그려보기도 했지만, 경우의 수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국 법인 생활이 아니면 개업이라는 대안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기승전개업이라는 머릿속의 그 프로세스 자체가 너무 답답했다. 시야가 너무 좁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정말 전문직 종사자에게는 개업만이 유일한 대안일까? 




 회계사 시험과목 중 재무관리를 공부하다 보면 해리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 이론을 배운다. 그 이론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에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것을 모두 잘 알 텐데,  유독 그 내용만큼은 인생의 철학이 될 만큼 크게 다가왔다. 보통은 자산군 또는 주식 종목의 포트폴리오를 떠올리지만, 인생에 적용해도 훌륭한 이론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회계사라는 이유로 개업 외 널려 있는 수많은 기회들을 애써 무시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개업 그 자체로 봤을 때 정말 수익성이 훌륭한 비즈니스라고 볼 수 있을까? 정말 리스크를 줄이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일까?




 의사의 경우 개원에 초기 투자금이 어느정도 필요하지만,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 그 외 대부분의 전문직은 개업에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 개업에 큰돈이 들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었지만, 한가지 가장 맘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자격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위임이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위임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기장 위주 세무사의 경우, 실무는 대부분 기장직원에게 위임하고 일종의 관리자로서의 역할만 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그 관리자의 역할마저 관리 세무사를 두어 위임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부럽고 훌륭한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전문직 본인이 바빠진다. 그렇게 돈은 많이 벌겠지만 꿈꾸던 여유로운 생활과는 거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시절 매일 밤 고민했다. 어떤 게 효율적인 방향일까? 시간과 자산을 동시에 증식하는데 올바른 방향은 무엇일까? 외부의 시선, 사회에서 정해놓은 정답을 모두 떠나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데 필요한 건 무엇일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시야가 조금은 넓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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