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가는 사랑을 찾아 가슴 뛰는 질문으로 시작하자

연구주제는 어떻게 정할까?

by 작가김덩이
나 아직 박사논문 주제를 못 정했어. 어떡하지?


심각한 표정으로 덩이씨를 찾는 1-2년 차 학생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다. (참고로 이글의 저자가 왜 덩이인지 모르신다면 01화를 보셔야 합니다)


그들의 굳은 얼굴에 긴장했던 덩이씨는 안심한다. 세상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고민쯤이야 아무런 문제 될 것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걱정 마 곧 찾게 될 거야. 어쩌면 이미 네 마음속에 있을지도 몰라. 조만간 선택하게 될 거야. 나도 3년 차 되어서야 주제를 찜했거든.


그 심각한 표정은 불안에 기인한다. Type A 성향의 인간들이 넘쳐나는 학계와 대학원에서 갓 들어온 많은 학생들이 어떤 주제로 어떻게 박사논문을 쓸지 명확한 목표와 방법론에 관한 플랜을 갖고 자신감 있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Type A 비율이 더욱더 높은 교수들 또한 다르지 않다. 덩이씨의 동료들 중에서도 박사과정생이라면 초창기부터 명확한 아이디어로 연구주제를 정하고 플랜에 맞게 수업을 들으며 계획한 대로 졸업해야 한다는 것을 정석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TYPE A란: 경쟁적이고, 성취지향적이며, 계획대로 실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의 유형을 뜻한다. [TYPE A 좀 더 알아보기 https://www.verywellmind.com/type-a-personality-traits-3145240 ]



하지만 그다지 매끄럽고 최단경로의 목표지향적 삶을 살지 않은 덩이씨의 생각은 좀 다르다.


누군가 대학원에서 가장 값진 경험을 꼽으라고 물었을 때, 덩이씨는 말한다.


그 이 전의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계획했던 것 이상의 것을 꿈꾸고, 배우고, 거기에 이르러,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의 "나"로 살 수 있다는 그 사실이 가장 가슴 뛰는 일이었다고.


그래서 근심 가득하게 찾아온 그 학생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가슴 뛰는 연구주제와 질문을 만나길 응원한다.


연구에도 길게 가는 사랑과 스쳐 지나는 사랑이 있다.


입학 때부터 SOP (statement of purpose)와 연구계획서를 꼼꼼히 준비하는 만큼,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은 본인의 "관심사"를 갖고 입학한다. 거기서 좁혀 나가면 (또는 넓혀야 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연구 주제가 되고, 좀 더 구체화되면 연구질문에 다다른다.

덩이씨처럼 과거에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관련된 어떤 강렬한 경험 (억울했다거나, 화가 났다거나,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거나 등)이 자신의 연구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대학원에서 이런 수업도 듣고 다른 수업도 듣다 보면 새로운 주제에 대한 호기심도 관심사도 생기기 마련이니 "금사빠"가 되어 관심 주제가 자주 바뀔 수도 있다. 흔히 있는 일이다.

다만 이때, 자신을 잘 관찰하며 이 사랑이 길게 가는 사랑인지 스쳐가는 사랑인지 유심히 보길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금사빠"로 만드는 연구가 나쁜 것도 아니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연구주제도 시간 쏟아서 찾아보고, 읽어보고, 글로 써 보면서 자신과의 합을 맞춰 보는 것도 좋다. 그래서 그 관계가 하나의 페이퍼 출판으로 끝나고 지나갈 관계인지 아니면 짧게는 박사 논문으로 2-3년, 길게는 그 후로 5-10년 가져갈 관계가 될지는 만나봐야 하는 것이다.


만나보지 않은 사람을 잘 알지 못하듯이, 연구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나에게 그 주제가, 그 방법이, 그러한 글 쓰기가 갖는 의미를 찾기가 여려울 수 있다. 덩이씨는 학생들에게 궁금하면 기말 페이퍼든, 컨퍼런스 발표든, 소논문이든, 아님 연구팀 프로젝트 협력이든 관심 있는 주제가 생겼을 때 그냥 해보라고 한다. 그런 자유도 학생일 때 가능하다. 그렇게 본인의 연구력은 확장될 수 있다.


가슴을 뛰게 할 수 있는 질문인가


덩이는 관심 주제가 몇몇 있었지만, 그래도 그중에 가장 오랫동안 덩이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리라 결심했다. 그 불편함을 해소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주제를 정했다. 관련 주제로 다른 소논문도 출판해 보았지만, 그럼에도 박사 논문의 연구질문을 정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 분량이 주는 무게처럼, 박사논문 주제라 함은 뭔가 있어 보이고 그럴듯해야 할 것은 압박감, 나아가 이 연구가 내 생의 마지막 사랑이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

그때 선배들과 멘토 교수님들이 해주신 이야기가 있다.

덩이… 너 박사논문만 쓰고 연구 그만할 거 아니잖아! 너는 계속 연구를 할 거고 박사 논문은 그 주제에 관해 네가 할 연구 중 그냥 하나일 뿐일 거야.


그렇게 범위를 좁히고 좁혀서 현실적인 기간과 방법 안에 수행 가능한 질문을 갖고 기쁜 마음으로 지도교수였던 꾸박님께 달려갔다.

나 드디어 찾은 것 같아요!

2페이지 메모를 열어 보기도 전에 안경을 벗으며 덩이씨의 지도교수님이 물었다.

아, 그래? 그럼 1-10점까지 구간에서 덩이가 이 주제를 좋아하는 정도는 몇 점?

나는 8이라고 대답했다.

Sounds great. Good to go.

그제야 지도교수님은 내 파일을 열어 보셨다.


그리고 그 점수는 학위논문연구를 수행하는 동안 점점 더 올라갔다.


데이터 수집을 계획한 1년 동안 눈비를 뚫고 가서 참여자들의 삶을 경험했다. 그들의 공간에 초대받은 자로 그저 "있을 수 있음"만으로도 나는 종종 웃었고, 때때로 울었고, 여전히 궁금해했다. 그렇게 가슴 뛰는 경험을 했다. 그다음 1년은 다시 그 시간을 돌아보고, 새롭게 질문하고, 여전히 답답해하면서, 다시 쓰고 또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불완전한 분석이었지만, 졸업 기한에 맞춰 그 시점 덩이의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논문의 마지막 장에서 나는 8점으로 만난 이 연구 주제와 질문을 이제는 10점 이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썼다.



연구 주제를 만나고 사랑하는 데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관계를 쌓고 인연을 맺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듯 연구 주제를 만나고 사랑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자신의 연구 분야에 따라, 연구실 분위기에 따라 졸업 논문 주제를 정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다.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 펀딩 기한, 또는 졸업 후 진로 같은 현실적인 여건도 고려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 와중에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주제를 찾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며 연구자가 된다.


"가벼움"이라는 단어가 문명과 결합하고 삶의 여러 장면에 등장하는 요즘, 박사과정이라는 선택지는 점점 더 기피대상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자신이 택한 길을 묵묵히 지나온 모든 분들과,

앞으로 그 길을 걸어갈 모든 분들의 그 사랑을 응원한다.

Image from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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