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방법론은 어떻게 접근하나
"넌 양적연구 아님 질적연구?"
덩이의 박사 시절 지겹도록 듣게 되는 질문이었다.
1년 차 대학원생은 고민한다. 도대체 각자의 정체성이 어디에 속하는지. 간혹 "아마.. 혼합연구?"라는 답변도 들린다. 그럴 때면 2-5년 차 자신의 노선을 공고히 한이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그러다 이도 저도 잘 못한다고 찍힐 수 있대" 라며 귀띔한다(혼합연구로 성공한 교수들이 들으면 노할 노자다).
석사 시절 교수가 되신 선배님께서 조언하시면서 연구자에게 중요한 세 가지를 강조하셨는데, 영어, 연구방법, 기억나지 않는 다른 한 가지(그다지 임팩트가 없었으니 생각하지 못한 것이라 여기자)를 들며, 그들은 "총알"과도 같은 것이라 하였다. 영어의 역할은 지난번 영어,영어,영어! 편에서 다루었기에 이번엔 연구방법론에 관하여 썰을 풀겠다. 특정 연구방법론 이수는 한국이나 미국 대학원의 졸업요건으로 작동하기에 연구방법을 대하는 덩이씨의 자세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도 기록해 보고자 한다.
선배들의 조언에 힘입어 석사시절 덩이는 방법론 수업을 나름 열심히 들었다.
그 당시 덩이의 전공 분야는 대규모 설문 데이터를 다루는 양적 연구가 한국 저널의 상당한 지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해외 교과서와 논문을 다루었던 첫 학기 첫 수업은 방법론수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급 통계 기술을 장착한, 화려하고도 다양한 인과분석 기법을 소개했다. 그렇게 보는 눈만 높아진 덩이는 기술분석 회귀분석 같은 방법은 안중에 두지도 않은 채 고급통계 방법을 써먹기 위한 데이터를 찾기 바빴다. 당시 별별 코드를 써가며 통계 패키지로 고~~급 모델을 돌리는 박사선배님들은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다.
실제로 방법론적 지식과 기술은 연구자의 "활용성" 측면에서 막강한 파워를 발휘한다.
선배나 교수들의 프로젝트에 불려 다니며 해당 데이터를 처리하고 돈을 받는 기회는 물론 다양한 출판물의 2 저자 또는 3 저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하므로.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멘토링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유학생은 지도학생으로 받지 않는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진 교수들도, 방법론에 특화된 유학생, 특히 대다수의 아시안 학생을 자신의 프로젝트 팀에 고용하여 코딩, 데이터 클리닝, 무~~~한 모델링에 써먹는 사례도 가끔 본다.
게다가 10년 전에도 지금도 종종 듣는 말 - 양적연구를 해야 구직 시장에 유리하다고. 기업이나 대학이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찾는 광고가 가득한 요즘 다시 돌아보면 그 말은 시대를 거슬러 옳은 말이었나 싶다.
그러나 덩이씨는 대학에서 질적 연구방법을 가르친다.
대학원 시절엔 아침부터 밤까지 연구실에 앉아 코딩도 해보고 양적 연구로 출판도 해 보았지만, 덩이에게 가장 깊은 울림을 주었던 연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으로부터 배우며 성장했던 과정이었다.
석사시절 필수과목으로 들었던 인류학 연구에 푹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구직 기회를 생각하고, 영어라는 장벽이 두려웠던 덩이는 박사과정 당시 질적연구 노선을 선택하기를 오랫동안 망설였다.
"덩이,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하는 질문들은 질적연구를 통해 가능할 것 같아"
덩이가 너무나도 존경하는 멘토 교수님께서 어느 날 명확히 말씀해 주셨다.
"그래? 그럼 한번 해 볼까?...!"
물음표에서 느낌표까지 가는 시간이 길었지만, 결국 덩이는 잘 모르니까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그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연구자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가 좀 더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잘 쓰인 질적연구를 읽을 때 가슴이 뛴다. 눈물이 나기도 한다.
나는 기술적 글쓰기보다 나름 문학적 글쓰기가 좋다.
불확실하고 복잡성 가득한 문제에 더 끌린다.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를 통해 나만의 이론을 만들고 싶다.
영어로 글쓰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참신한 생각은 할 수 있다.
데이터가 없더라도 개념적, 이론적 논의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연구가 될 수 있다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늙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코드가 가득한 화면으로 나의 하루를 채우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나의 길을 찾게 되었고, 구직에 성공했던 지금의 자리는 전공 강의는 물론 질적 연구방법 강의도 함께 맡아줄 사람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방법론을 가르치다 보니 질적연구 안에서도 다양하고 널찍한 스펙트럼이 있음을 배우고 깨닫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만의 방법론을 개발하게 되고 새로운 방식으로 연구를 시도해 보게 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연구방법론에 대한 현재 덩이씨의 생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 경험은 다양한 세계관을 접하고, 나의 취향을 알아감과 동시에, 나와 다른 인식론적 토대를 근거로 한 연구물을 읽고 이해하는데 유용했다. 이런 관점은 수업을 하고 학생을 지도할 때 큰 도움을 준다. 나의 강점 분야가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하는 질문에 어떤 방법이 적절한지 어떤 연구물을 읽으면 좋을지 생각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주변에 한 가지 방법, 그러니까 질적연구 또는 양적연구 내에서도 특정 세부 방법 한 가지만 써서 출판을 하고 그 외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날이 서 있는 교수들도 있다.
하지만 연구가 다양한 이유는 서로 다른 논리와 인식론적 접근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자기 것만이 맞다고 고집하는 이상 다양한 사고방식과 접근방법을 쓰는 이들 (특히나 학생들에게)에게 인식론적 폭력을 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목적을 잊고 도구와 방법 그 자체를 따지고 감상하느라 정작 가고자 하는 집에 다다르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나의 질문에 맞게 그 길을 가고 있는지, 그 길이 "나"라는 사람의 목소리와 삶의 양식에 맞는지 따져보며 결론에 다다르고 마침표까지 찍는 과정이 연구라 생각한다.
방법론을 갓 배운 대학원생들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한 다중회귀분석으로도 충분히 답할 수 있는 질문에 굳이 화려한 기법을 쓰려고 들이밀었던 기억은 아직도 부끄럽다.
한 번은 저널 리뷰를 받았는데, 그 리뷰어는 자기가 수업에서 배운 "있어야 할 것들" A부터 Z가 다 있어야 하는데 저자가 쓴 방법론에서는 이런 것들이 다 설명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경험이 있는 덩이씨는 직감했다. "아~~~! 지금 막 배워서 어깨가 이만큼 올라간 대학원생이군."
물론 출판에는 어느 정도의 기준과 규범이 있지만, 연구와 연구자의 상황에 따라 어떻게 기술하고 설명할지는 저자의 몫이라는 것을 간과하지 말자.
박사논문을 쓰면서 사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내가 하고 있는 이 방법이 "교과서"에 나오는 흔히 쓰는 몇 가지 유형 중 어디에 속하며,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는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철학을 전공하신 노교수님께서 덩이의 머리를 때리는 말씀 하셨다.
누구의 단어나 라벨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진짜로 무엇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지. 거기에 초점을 두렴.
얼마 전 세미나에서 들은 이야기다. 미국 외 다른 국가에서는 대학원에서 방법론 수업을 없애는 트렌트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연구방법은 연구자의 숫자만큼 다양한하고 연구자는 연구를 수행하면서 그 방법론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대학원의 방법론 수업은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연구에 다다를 수 있는 다양한 길 중 특정한 경로만을 선택하여 그 권력 체계를 강화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덩이씨는 어느 정도 그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들어야 하는 방법론 수업이 있다면,
누구의 가이드에 따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연구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을 충분히 탐색하고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잘 구축하는 기회로 잘 활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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