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국어가 지문처럼 남은 영어도 존중받을 수 있게
주의: 영어유치원과 같은 교육 비즈니스가 성공한 대한민국에서, 철수와 영희보다 데이빗과 제니가 더 익숙한 환경에서 자란 분들에게는 이 글에 나오는 고민과 걱정이 해당 사항이 없을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다른 업계도 비슷하겠지만 학문 생태계에서 영어가 갖는 파워는 막강하다.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글로벌리제이션인지 알게 모르게 하루하루를 살지만, 덩이씨는 학계라는 곳이 영어를 참 예뻐하고 빵빵하게 밀어준다는 것쯤은 경험으로 익히 잘 알고 있다. 세계화를 외치며 멀티링구얼리즘이 교양과 자산차럼 선전되지만, 영어가 디폴트 값으로 작동하는 곳에서 영어를 “외국어” 로 배우고 생존 도구로 써야 하는 덩이씨와 같은 사람에게는 영어의 제국적 파워가 더 와닿는다.
첫째, 우리는 미국 대학원에 입학원서를 준비하는 그 순간부터 토플과 GRE를 주관하는 ETS의 번영에 충분히 기여한다.
둘째, 넘쳐나는 논문의 세계에 들어서면 영어출판물이 지식의 최전선이라 믿게 된다. 어떤 주제에 관해 기원전부터 소개된 철학과 이론이 있더라도 영어가 아니거나, 영어로 소개되지 않았다면, 그 참고문헌은 “과학적이지” 못한 증거가 되거나, “지역적” 지식이 되거나, 그냥 “없는” 취급을 당하기가 부지기수이다.
셋째, 덩이를 비롯한 많은 교육학도들은 한국전쟁과 냉전 이후 미국의 영향권 아래 형성된 대한민국 교육과정의 수혜자이며, 미쿸 학위로 학계의 명맥을 이어가는 교수님들이 수입한 이론과 번역서가 교과서로 등장하는 한국 대학이 키워낸 “글로벌” “인재” (人災 이자 人材) 이기도 하다.
별로 친하지 않은 영어지만, 덩이씨가 가진 영어 관련 에피소드는 차고 넘친다. 그중에 난이도 별로 엄선하여 써보기로 했다.
박사 1년 차 덩이는 실무 중심의 수업에서 미국에서 일하는 교육청 관계자들과 함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참고로 이 교실상황에서는 덩이씨만 international student로 분류된다. 그날의 주요 읽을거리로 듀이, 피아제, 비고츠키 학습 이론을 소개했더랬다.
학자들의 흑백 사진을 보여주며 파란 눈의 교수님은 물었다. “이 사람들 이론 배운 적 있나요? 아는 사람?”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들었던 덩이는 깜짝 놀랐다.
“아니 왜 나만 아는 것인가. 학습과학도 교육심리 전공도 아닌, 저 멀리 한국서 온 나는, 어느 하나 닮은 것도 없어 보이는 이들의 이름과 이론이 왜 익숙한 것인가.
이 땅에서 나고 자라 교육경력도 많은 그대들은 왜 모르는가? 수업구성의 이론적 토대 아닌가? 교육과정에 나오지 않는가? 당신들은 교육학을 배우지 않았나요?
이 대학원에서나 소개되는 저 할배들은, 한국어로 읽고 쓰고 가르치는 대한민국 국가교육공무원의 뇌리 속에 왜 박혀 있어야 하는 것인가
학자적 정체성과 국가적 정체성의 혼란이 요동쳤다. 알고 있음을 자랑스러워해야 했어야 할 만한 그 자리에서 밀려오는 부끄러움은 덩이 혼자만의 몫이었다. 그날의 충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층위의 설명을 할 수 있기에 생략한다. 독자님들의 비판적 이해와 해석을 기대하면서…
이처럼 서구권/영어적 지식의 토대가 당연하게 형성된 한국의 교사교육과 대학원 교육과정 덕택에 영어로 이론을 이해하고 전공 관련 논문을 읽고 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물론 시간이 배로 들고 (지금처럼 실시간 번역이 가능한 챗봇이 없던 시절이다) 이해의 깊이를 더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던 것은 당연하다.
논문 읽기보다 더 난도가 높은 것은 수업마다 난무하는 온갖 정책들의 약자이다. 직장에서 매번 남의 이야기만 듣던 자들이 모여 수업시간 질문 하나에 구구 절절이 자기네 얘기를 쏟아낸다. 그러다 보면 말도 빠르고, 온갖 줄임말이 문장마다 들어간다.
뭐 한국실정에서 본다면, “학맞통” – 학생맞춤통합지원체제, “교복우”-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같이 학교 현장이나 정책에서 만들어내는 영어 줄임말이 그냥 쏟아져 나온다. 덩이는 정신이 혼미해진다. 최대한 알파벳으로 받아 적었다가 다시 물어보거나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전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핵심 내용에 다다르지 못하기도 한다. 물론, Inclusive Learning을 중요시 여기는 교수자나 학생이 있다면, 친절한 방식으로 어떤 내용인지 설명을 전하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덩이에게 그다음 난이도는 스몰토크의 세계다. 쉬는 시간이나, 행사에서 또는 학회에서 친구나 교수들을 만나면 주말에 뭐 했니 요즘 어땠니 하면서 일명 근황 토크를 쏟아낸다. 최근 한국에서는 “주말에 뭐 했니” 가 직장에서 경계할 1순위 질문 이라고도 하지만, 미국에선 “식사하셨어요?” 같은 인사처럼 듣는다. 가볍게 날씨이야기로 시작은 하지만, 뭐라도 재미난 이야기 하려면 주말에 뭔가 하나라도 하는 게 좋을 것만 같은 압박이 있다. 매번 방구석에서 가만히 쉬었어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여전히 덩이씨에겐 “듀이를 아세요?” 보다 더 어려운 것이 스몰토크다.
게다가 스몰토크에서 나오는 표현은 교과서로 배운 영어와 다르다. 지금이야 생활 영어를 접할 미디어가 차고 넘치지만, 그 시절엔 유튜브도 생소했다. 미드나 생활영어로 부지런히 영어를 단련한 누군가에게는 난이도 최하가 될 수 있는 스몰토크지만, 영어에 관한 열정이라곤 뜨뜨미적지근했던 덩이에게 스몰토크의 난이도는 중상이다. 그래서 그냥 맘 편한 사람들하고만 스몰토크를 열심히 한다.
하지만, 극강의 난도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입술도 눈빛도 보이지 않아 더 알기 어려운 코뮤니케이션.
콜센터 전화영어.
“하우 메이아이 헬프유” 로 시작하는 그 대화.
인터넷을 신청하거나 요금제 옵션을 바꾸거나 혹시라도 이사를 해서 주소를 바꾸거나,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하거나 행정업무의 문제를 지적해야 할 때 등, 요즘은 챗봇과 챗을 많이들 하지만, 콜센터의 에이전트랑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아, 덩이씨의 팁을 전하자면, 당일 또는 72시간 내의 비행기 연착 문제나 스케줄 변경이 필요할 땐 앱이나 공항 오피스보다는 전화 상담원과 이야기할 때 가장 빠르고 좋은 딜을 얻어낼 수 있다.
특히, 글로벌기업들은 아웃소싱으로 전화 상담원을 인도 같은 국가에서 고용하여 24시간 업무를 돌린다.
그 시절 전화영어를 준비하려면, 할 말을 우선 메모로 적어두고 가슴 떨리게 버튼을 누른다. 한참을 기다린 후 연결된 요원과 각자의 엑센트로 영어를 한다.
익숙지 않은 다양한 엑센트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다. %$%^&
그래 다시 이야기해 줄래? 좀 더 천천히? %-$-%-^-&
내가 이렇게 이해했는데 그거 맞니? !!
이해와 오해 사이 비스무리한 접점에 다다랐을 때 전화를 끊으면 20 분은 훌쩍 지난다.
좀 더 시간이 지나서는 전화 영어에 오기가 생겨서 그냥 했다. 챗봇으로 연결하고 수많은 단계를 거치는 것이 귀찮아서 또는 영어 연습 삼아 전화를 한다.
그들도 사람이니 기분 좋으면 가끔 좋은 딜을 전해 준다.
한 번은 상담원이 내 이름을 듣더니 "Oh, Girls Generation"이라 하면서 그 시절 소녀시대 멤버 XX와 이름이 같다며 좋아했다. “아 그래? 나는 XX 노래 부를 줄 알아... 너는 어쩌다 알게됐니?...”
한류가 오만한 미국땅 까진 닿지 않았을 그때, 지구상 그 어딘가에서 뜨겁게 부상하던 그 시점을 김덩이는 콜센터 전화영어로 체감했다.
한국에서 나름 꽤 오랜 시간 영어를 배웠지만, 돌이켜 보면 그 영어란 백인중심의 미국영어였던 것 같다.
물론 토익에서도 영국식, 호주식 영어가 추가되었다고는 하지만, 미국 일상생활과 대학원에서 접하는 영어의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넓다. 미국 내에서도 지역마다 다양한 엑센트가 있고, 이민의 역사와 맥락을 함께 사는 문화권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있다. 수업을 듣다 보면, 아시아, 남미, 유럽, 아랍, 아프리카 등 다양한 문화권의 억양이 함께하는 영어가 일상이 되기도 한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엑센트가 듣기 어렵지만,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고 애정을 쏟으면 그들의 설명이 미국서 나고 자란 교수들의 설명 보다 더 쉽게 이해되는 상황도 잦다.
교수자로서의 김덩이는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모국어가 지문처럼 남은 영어도 존중받을 수 있게, 타인의 영어도 재단하지 말고 귀 기울일 수 있는 자세를 살면서 배우게 된다. 다시 영어를 배운다면 다양한 영어를 접하고, 배웠다면 어땠을까 하고 덩이씨는 생각해 본다.
어느 날 출근하는 덩이씨는 배경음악으로 듣는 심층 인터뷰 라디오(On Point) 방송을 듣다 꽂혀서 킵한 방송 링크가 있다. 예일대 로스쿨 센터 Cheng 박사님의 발화를 들으며 그분의 전달력과 분석력에 놀랐다. 물론 내 분야는 아니지만, 다양한 관점을 구조화해서 논리적으로 잘 전달한다는 것은 명료했다. 연구자로서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능력이 아닐까. 궁금하신 분들은 오디오로 들어 보시길(참고로 덩이씨는 여기 진행자의 인터뷰 스킬도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https://www.wbur.org/onpoint/2025/03/31/china-xi-trump-administration-chaos
나아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영어표현도 중요하겠지만 생각의 문제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말한다고 해서 한글로 다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닌 것처럼.
쓰기에 관해서는 읽고 쓰기의 무한루프 편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그럼 다음 목요일에 만나요!
[이미지 출처: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World_Map_and_Multilingualism.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