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의 은밀한 수다

월급 받는 대학원생의 프로페셔널리즘

by 작가김덩이

대학원생들이 하는 대화 중 빠지지 않는 주제는 교수다. 지도교수는 물론 또는 본인에게 월급을 주는 고용자로 같이 일하는 교수 (주로 Supervisor 하기도)와의 관계는 본인의 졸업과 직결되며, 생존을 위한 월급을 좌지우지하고, 구직시장에서의 추천자로 영향력을 발휘한다.


좋은 학생 만나기도 하늘에 별따기

비슷하게 교수들의 수다에도 빠지지 않는 것이 학생이다. 교수들도 고통받는다.

수업 중 이어폰 끼고 있는 학생, 결석은 자주 하면서 성적을 트집 잡는 학생, “Hey”라고 시작하는 학생의 이멜, 등등 다양한 이슈로 인해 몸과 마음고생을 한다. 수업으로 인해 고통받을 때면, 그나마 "소비자 중심 교육"과 함께 월급 명세서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쉽게 해소되는 않는 극강의 고통은 내가 따온 연구비로, 또는 학과 펀딩으로 월급 주는 대학원생으로 인한 괴로움이다. 좋은 교수를 만나는 만큼이 나 중요한 것은 좋은 학생을 만나는 것이다.


덩이씨가 교수 1년 차에 받은 조교(이하 GA - Graduate Assistant라고 하겠다)는 학과에서 이미 정해준 학생이었다. 그다지 연구주제가 일치하지도 않았고, 연구를 하기 위한 훈련도, 연구 관련 경력을 쌓을 생각도 없는 학생이었다. 그래도 박사논문을 쓰고 졸업을 해야 하니 이에 도움이 될만한 일이라도 시켜보아야겠다 생각했다. 매주 시간을 정하고 연구물 찾기와 정리부터 시켜보았지만, 시간대비 일을 처리하는 양이 너무 적었다. 어차피 졸업을 1학기 앞둔 지라, 수업에 관한 비디오 만들기나 인터뷰 전사본을 클리닝 하는 작업 정도만 시켰다. 다른 시도도 해보았지만, 결국 덩이씨가 다시 일하게 되거나, 과제를 못 해오거나, 또는 내가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덩이는 다짐했다.

다음에 받을 학생은 정말 제대로 받아서 잘 트레이닝하리라.


“You make my life much easier!”

다음 해 GA를 선정하려 할 때 한 교수가 자기 지도학생을 추천했다. 내가 연구하는 분야가 본인의 관심사는 아니었고, 다른 곳에서 일한 경력도 꽤나 있었던 분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직업 변경으로 논문 스테이지에서는 풀타임으로 마치고 싶다며 GA에 지원한다고 하였다. 그의 지도교수는 그가 일하는 스타일, 연구방법론 수업에서 보여준 높은 수준의 과제, 자신의 연구프로젝트에 자원해서 도와준 경험 등을 들어서 정말 좋은 GA가 될 거라며 내게 어필했다.


그래? 한번 믿어볼까 하며 받았던, 지금은 페박이 된 GA는 내 입에서 “you made my life much easier”라고 저절로 나오게 했다.


월급 받는 학생의 프로페셔널리즘


페박이 보여주었던 프로페셔널리즘의 장점을 꼽아보자면

첫째, 자기 주도성, 둘째, 깔끔한 정리정돈 스킬, 셋째, 성과물을 대하는 진지함과 꼼꼼함이다.


페박과 나는 첫 만남 때 어떤 프로젝트에 임할 것인지 함께 논의하고, 내가 원하는 기대 수준과 학과에서 GA를 평가하는 기준을 함께 리뷰하였다. 매주 또는 2주에 한번 미팅을 하기로 하고, 결과물은 그 전날까지는 보내 주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페박의 남다름은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1. 깔쌈한 미팅노트


페박은 미팅을 하면서 일단 미팅 노트를 본인이 깔끔하게 정리하며 미팅 후에는 내게 보내주었다. 그러면서 "이번 주 본인은 월 수를 GA 과제에 임하는 날로 두고 이 과제에 집중할 것이다. 주어진 일을 마치는 대로 바로 연락하겠다"라는 깔끔한 미팅 노트를 이멜로 보냈다.


2. 중간 보고서


페박은 1주일 기간을 두는 과제에서도 progressive report를 보내왔다. 우리는 다음 주 월요일에 만날 예정이지만, 수요일 오후 연락이 왔다. 직역하자면,

안녕, 김박사, 일을 하다 보니 네가 시킨 과제를 7시간 안에 다 끝낼 수 있었고, 아직 3시간이 남았다. 필요한 일이 있거나 급하게 도울 일이 있다면 목요일 오후에도 일할 수 있다. 그러니 그 전에 언제든 연락을 달라...라는 내용이다.


보통 많은 학생들은 이런 중간 리포트는 보내지 않는다. 나도 딱히 기대하지 않았지만, Work Ethic(직업윤리로 번역되는데 생각보다 평가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이 아주 우수했던 페박은 이렇게 자신의 중간 결과물을 업뎃하고, 여기서 더 추가하거나 개선할 사항이 있는 물어본다. 얼마나 훌륭한가


3. 미리 도착한 결과물과 리마인더


페박은 우리가 만나기 전날, 리마인더와 함께 자신이 한 일을 다시 정리해서 최종 결과물을 공유해 주었다. 관련 결과물은 지정된 공유 폴더에 매우 구조화된 형태로 주제와 날짜별로 정리하고, 연구 미팅 노트에는 각각 링크를 걸어 내가 클릭만 하면 볼 수 있게, 그리고 몇 시간을 어떤 일에 썼는지 보고 한다. 마지막으로 또 중요한 것은 결과물의 수준이다. 페박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내가 원했던 결과물을 내가 원하거나 또는 그 이상의 수준의 형태로 가져왔다.

행복하다. 연구 진도가 쭉쭉 나간다…


물론 페박이 내 분야는 아니었지만, 다음 학기부터 덩이는 페박을 공동 저자로 출판하는 프로젝트에 투입시켰다. 페박이 직장을 잡을 당시 나에게도 레퍼런스 체크가 왔다. 설문으로 각종 자질과 그의 직업윤리 및 프로페셔널리즘을 매우 자세히도 물었다. 덩이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최고점을 주었다.


교수들은 다 말한다


페박과 같이 빛나는 학생은 교수들 사이에서도 금방 소문이 난다. 다음 해 GA를 선발할 때 교수들이 누군가와 서로 일하려고 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렇게 입 소문이 나면 여름이나 다른 추가 형태로 돈을 줄 수 있는 교수들이 학생을 찾을 때 유리하다. 만약 본인이 원치 않았어도 연락이 오거나 펀딩 있는 교수들이 당신을 찾는다면 훌륭하다. 이미 교수들의 수다를 통해 그대에 관한 긍정적 뉴스를 생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추가로 일할 프로젝트로 초대받는다면, 본인의 성장과 커리어에 꼭 필요한 일에 집중하길 바란다.


잡일 같이 보이는 자잘한 일이라 딱히 도움 될 것 같지 않지만(1-2년 차 때는 대체로 잡일을 시킨다. 그것도 연구의 과정이며 트레이닝임을 잊지 말자), 그런 일을 잘할 때 출판 기회를 갖기도 하고, 반대로 빅네임 교수의 프로젝트라 후광을 볼 것이라며 기대하며 들어가지만, 그 속에서 돌아가는 차별 또는 착취로 인해 본인의 재능과 시간은 고갈되고 내세울만한 결과물이 딱히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본인이 선택할 기회가 있을 때는 잘 판단할 필요가 있다.


교수들의 은밀한 수다는 학교 내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베이비 교수를 지나 저널 에디터로 일 하면서 덩이는 페이퍼 리뷰에 학생을 초대해 본 적이 있다. 학회를 통해 그 학생이 어떤 주제로 연구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한번 시험 삼아 초대해 보았다.

그런데 웬일인가. 엄청나게 훌륭한 리뷰 코멘트를 작성해 주었다. 나머지 2명의 교수가 보낸 리뷰보다 꼼꼼하고, 정확하며, 중요한 포인트를 잘 지적하고 있었다.


학회서 만난 다른 후배교수와 그 학교 교수랑 이야기하다 자연스레 그 학생 이야기를 했다.


동그라미씨 정말 꼼꼼하게 잘하는 것 같더라.... 그랬더니 동그라미와 같이 일하던 교수도 "내가 같이 일해본 학생 중에 최고 같아”라고 말해 주었다.


이처럼 학계는 아주 좁고도 촘촘한 관계망을 자랑한다. 학생이든 교수든 추천서를 읽다 보면 가끔 미국교수들은 자기가 일해본 또는 지도해 본 학생 중에 top 5% top 10% one of the best XX라고 쓰기도 한다.


그대를 모르는 사람들도 본인들이 경험했거나 누군가에게 들었던, 어떻게 보면 매우 사소해 보이는 그 하나 (리뷰, 콘퍼런스 발표, 또는 잡다하게 생각되는 부탁 - 행사 플라이어 만들기)를 통해 그대를 알고 있다.

당연히 좋은 저널에 훌륭한 아이디어로 출판을 한다면 그대들의 얼굴은 몰라도 이름을 기억한다.


교수들의 은밀한 수다는 뻔하다.

누가 이번에 어디 탑 저널에 뭘 출판했더라, 상 받았더라, 그랜트 땄더라… 나아가 학교 이야기 – 누가 나를 괴롭히는지, 누가 좋은 동료인지, 어떤 학생이 내 교수 라이프를 숨 쉴만하게 해 주는지 성토하고, 칭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서 다음 챕터에서는 대학원생의 학회와 네트워킹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이미지 출처: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5/53/%EC%86%8C%ED%95%99%EC%83%9D_74%ED%98%B8_%EC%86%8C%EB%AC%B8_%EB%86%80%EC%9D%B4.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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