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쓰기 위해 애쓰는 당신에게 "부지런한 사랑"을 권한다
"글쓰기? 그냥... 쓰고 싶을 때 쓰는데?
박사 4년 차쯤이었나. 덩이의 지도교수 꾸박이 나의 글쓰기 전략에 대해 묻는 대답이었다.
"와우. 하우 임프레씨브!" 감탄사와 함께 나의 호사스러운 대답을 음미하던 그녀의 경이로운 눈빛.
그때는 몰랐다. 각종 미팅과 이메일, 수업 준비, 과제 피드백 등등의 일과 앞다투며 "오직 글쓰기"를 위한 시간 확보에 허덕이는 삶이 교수들의 일상이라는 것을. 김박사가 된 덩이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꾸박님의 그 눈빛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날의 "호사스러운" 대답이 가능했던 호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어떻게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가'는 작가님들의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덩이씨가 애정하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드라마 작가님들은 매일같이 자리를 지켜가며 꾸준히 쓴다.
호탕하게 웃음을 뿜다가 밤잠을 건너뛰며 읽은 책,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작가님은 글쓰기에서 "부지런한 사랑"을 소환한다 (이슬아, 2020, 세바시강연).
논문 쓰는 자들의 글쓰기도 장르만 다를 뿐, 비슷한 고민과 나름의 전략이 존재한다.
대학원생활은 읽고 쓰기의 무한루프와도 같다. 자료 수집, 모델링, 수업, 실험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흔히 보는 풍경은 읽고 쓰는 것이다. 수업 과제로 제출하는 에세이/보고서, 실적을 위한 소논문 남기기, 거대한 성벽처럼 다가오는 박사논문 끝내기, 이 모두가 "부지런한 사랑"을 요구한다.
학점과 졸업이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학생 시절엔 그래도 누군가 정해주는 데드라인이 있다. 아, 물론 졸업 논문의 타임라인은 어느 정도는 스스로 밀당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특히 정년을 준비해야 하는 조교수들은 여러 개의 글쓰기 프로젝트에 압도당하기 쉽다. "학생"으로 관리받던 시스템에서 이제 "야생"으로 내던져진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강제성을 부여하며 쓰고자 애쓴다.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논문 쓰는 자들의 전략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꾸준히 매일 쓴다
샤박님은 매일 15분씩이라도 글을 쓴다고 했다. 그분 역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꽤나 어려운 이론적 개념을 쉽게 설명하며 다작을 하면서 본인의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다. 멘토링 세션에서 그는 박사 과정 시절 처음 투고해서 거절당한 논문에서 받은 첨삭과 리뷰어의 신랄한 지적을 공개하며, 학생들에게 용기를 북돋웠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다. 처음부터 "논문"을 잘 쓰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덩이씨는 생각했다. 그가 매일 같이 쌓아온 글쓰기가 단단한 근육이 되었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구나.
글쓰기 좋은 날이 오도록 나를 가꾼다
샤박님처럼 짧은 시간 내에 생각을 정리해서 쓰고 그것들을 엮어 논문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덩이씨는 논문을 쓸 때 어느 정도의 긴 호흡이 필요하다. 덩이에게 논문 쓰기는 레고로 집 짓는 일과도 비슷하다. 블록의 색깔과 무늬, 전체 모양을 고려하며 맞춰 나가듯, 문장 하나하나를 밀도 있게 생각하고 쌓아 올리다 보면 적어도 3시간은 집중할 수 있어야 만족스럽게 진도가 나간다.
꾸박님의 경이로운 시선을 느꼈던 "그냥 쓰고 싶을 때 쓴다"라는 대답의 의미는, 나의 컨디션과 기분을 봐 가며 3시간 즘은 집중이 잘 될 것 같은 때, 즉 덩이가 쓰고 싶은 욕구가 마구 올라올 때 쓴다는 것을 말한다. 잠을 설쳤다거나, 옆집이 소란스러운 날에는 읽고 쓰는 일보다는 수업 준비나 데이터 작업 같은 멘탈 에너지가 덜 들어가는 일을 했다. 다만 주어진 글쓰기 분량을 완성하려면, 일주일 중 3-4일은 글쓰기가 좋아지는 날이 되도록 기분 관리 (예: 차분한 음악 듣기, 불편한 자극 차단하기), 몸관리 (예: 요가나 스트레칭으로 허리 풀기), 주변정리 (예: 정신 사나워질 것 같은 미팅 잡지 않기) 등을 부지런히 했다. 그런 날은 5-6시간 거뜬히 생각하고 쓸 수 있다.
쓰고 싶은, 써야 하는 환경을 만든다
꼬박은 커피숍에서 적정 소음이 있을 때 잘 써진다고 한다. 노박은 도서관의 34인치 모니터에서 글이 잘 써진다 한다. 각자 선호하는 글쓰기 장소가 있다.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자신만의 글쓰기 루틴을 찾아 다양한 형태의 생활 계획표에 박아 넣는다. 생활계획표를 붙여두던 어린 시절엔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감시가 존재한다. 하지만 자신은 물론 자녀 또는 다른 가족의 생활 다방면을 책임져야 하는 어른은, 글쓰기 루틴으로 향하는 실천 의지가 희박해짐을 감지한다. 그래서 강제로 글쓰기 미팅을 만든다. 온라인이든 대면으로든 만나서 쓰는 대학원생/교수들의 모임도 흔하다. 이런 자리가 잘 운영되면, 같이 쓰는 사람들에게 질문도 할 수 있고 쓰고 있는 주제에 관해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어서 유용하다.
좋은 글을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해야 쓸거리가 생긴다
좋은 생각이 있어야 좋은 글로 발전할 수 있다. 학계에서 이 "생각"은 일기와 같은 사적인 기록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전통"이라 여겨지는 지식 더하기 매일같이 쏟아지는 최신 논문과 소통하고 있는 생각을 원한다. 덩이씨에게 좋은 논문은 내가 사랑하는 주제를 번뜩이는 눈으로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관점, 생각, 영감, 감동을 전하는 글이다. 좋은 논문을 찾기는 어렵다. 탑저널에 유명한 학자가 출판한 글이라 해도 "나"에게 좋은 논문은 아닐 수 있다. 그러니 부지런히 읽어야 좋은 글도 찾고, 나만의 생각도 새록새록 피어난다. 어떤 생각은 스스로를 놓아주지 않는다. 무의식 한편에 자리하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솟아오르고,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도 출몰한다. 데이터를 만지다가도 떠오른다. 그럴 땐 써야 한다. 투박하게 넘쳐오는 사랑을 키보드로 정제하고 다듬어서 쓴다. 그럼 오늘 하루도 뿌듯하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을 때,
나와는 다른 생각을 살피게 되었고, 어제의 나를 반성하기도 했고, 내일의 나를 꿈꾸기도 했다.
그 무한루프가 가져오는 꾸준함과 소소한 일상이 나를 좀 더 단단한 연구자로,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데 보탬이 되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글쓰기 #대학원 #연구
이미지 출처: 링크
© 2026. 작가김덩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