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의 선의를 위한 마음으로
이번 주는 Support Letter를 쓰느라 바빴다.
연말과 1월은 학회 차원에서 각종 상을 주기 위해 지원하는 기간인데, 덩이씨가 존경하는 훌륭한 멘토이자 학자이신 료박님을 우수 멘토링상 후보로 추천하느라 열심히 썼다.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추천 요건으로 2개의 서포트 레터가 필요한데 그중 하나를 내가 담당하겠다고 자원했다. 료박님께 영향을 받은 다른 교수님들과 포닥 연구자 8명에게도 연락해서 2-3 문단씩 코멘트도 받아 쓰다 보니 7장이 되었다. 료박에 관한 그들의 사연은 의심할 여지없이 감동적이었고, 우리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료박 선생님께 감화되어 시키지 않은 노동을 이 바쁜 학기 초에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참고로 김덩이의 2026년 새해 목표 중 하나가 료박님을 영예로운 멘토상에 추천하는 것이었다. 허나 그런 상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손사래 치는 료박을 설득하기 위해 끈질기게 이메일을 하고 문자를 했고, 두 통의 전화를 한 후에 확답을 받아냈다.
아니, 지금 내가 좋아서 하겠다는데 왜 료박 선생님이 나의 즐거움을 뺏으려 하죠? 덩이는 물러날 생각이 없으니 같이 사인해 줄 사람을 이름이랑 연락처 오늘 중으로 보내주세요. 끝!
여기서 다시 말한다. 덩이씨는 의사소통에 있어서 완벽한 영어 문장보다는 진심에 무게를 둔다.
료박님에 관해 쓰자면 책 한 권을 쓸 수도 있겠지만, 참는다.
료박님은 내가 본 학자 중에 덩이씨에게 가장 인간적인 감동과 진솔함, 함께 연대하는 세상을 위한 커뮤니티 모델을 보여주신 분이다. “내가 제일 잘 났어”를 내세워할 것 같은 학계에서 료박님은 어마무시한 업적과 논문으로 감동의 눈물을 선사하는 커다란 한방을 종종 날리면서도, 겸손함과 조용함으로 무장하고 계신다.
믿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 료박님의 글이라면, 소설이 아니라 논문을 읽고도 감동해서 울 수 있다. 덩이씨는 눈물이 마르지 않은 가슴 벅참으로 장문의 이메일을 썼다. 즉흥환상곡처럼 아름답지는 못했지만 솔직한 "즉흥(논문)감상문"과 함께 "료박님 이번 학회에서 우리 만날 수 있나요" 라고. 선생님과 나의 첫 1:1 대면이었다.
료박님은 본인을 내세우지 않고, 늘 주변 사람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자리를 마련해 주고, 좋은 사람들끼리 연결될 수 있도록 커넥션을 만들어 주신다. 컨퍼런스 세션 패널이나, 점심 자리에, 또는 멘토링 그룹에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주었고, 관심사나 필요가 매칭되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연결될 수 있는, 가르침이 있으되 편안한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료박님과 관련된 사람들로 채워진 나의 커뮤니티 한켠은 뭐랄까, 서로에 대한 걱정, 지지, 농담, 사랑이 넘쳐난다. 우리는 넓고 거친 미국 땅 여기저기 살고 있지만, 료박님이 있는 단체문자방은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기분이랄까.
그분이 가르쳐준 커뮤니티 빌딩은 자기 계발서나 대학원 오리엔테이션에서나 나올법한 사례는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료박님의 마법은 누구에게나 있는 개개인의 이기심은 잠시 미루고, 조금은 더 정의롭고 살만한 사회를 꿈꾸는, 공동의 선을 향한 그 마음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글의 저자 덩이씨는 료박님이 아니다. 그분의 일화로 시작했지만, 덩이씨는 오리엔테이션에서 들을 법한 내용과 사례로 “안녕한 일상을 위하여”를 마무리하겠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커뮤니티라는 말을 참 많이 접한다.
살아보니 커뮤니티에도 여러 층위가 있다. 가족과 친구 같은 상호호혜적 그룹, 지역사회 공동체, 학교, 직장, 또는 업계에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거나 나눔을 실천하는 단체 같은.
02편 안녕한 일상을 위하여 편에 등장하는 세모네모씨가 가장 쉽게 마주할 커뮤니티는 아마도 학교일 것 같다. 같은 전공 학생들 또는 단과대/학교 차원에서 만날 수 있는 한인 학생 커뮤니티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면 많이 도움이 될 것 같다.
김덩이의 전공은 전일제 박사가 소규모라, 동기들과의 교류보다는 선후배 간 교류가 많은 전공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연차별 경험을 접할 수 있었다. 지도교수는 달라도 같은 전공 2년 차, 3년 차, 4년 차 5년 차에 있던 그들이 언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진로를 잡고 졸업하는지를 과정 내내 지켜보고 전공모임을 통해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컨퍼런스 논문 발표, 논문 디펜스, 잡톡 연습 등을 미리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던 커뮤니티가 조성되어 있었던 것은 감사할 일이다. 그 시절 만났던 라박이, 데박이, 킬박이, 꼬박이 선배와 후배 친구들은 학회에서 챙겨 만난다. 또 같은 분야다 보니 일하다가 어딘가에서 마주친다.
그리고 석사박사 지도교수님을 공유한 옹박님은, 여전히 나의 글을 읽어주고 피드백을 주는 덩이씨가 아끼는 훌륭한 친구이자 연구자이다. 매번 올라오는 브런치글도 옹박님의 사전 검열 후에 등록된다. 글 쓰는 자에게 있어 솔직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덩이에게 옹박은 뭐랄까, 뜨거운 호떡에 절실히 요구되는 아이스크림 같은... 아. 덩이씨에게 호떡은 매우 귀한 존재다. 입천장을 데이지 않기 위한 아이스크림은 필수.
김덩이네 학교는 단과대 차원의 교류도 활발했기에, 수업이나 소셜 모임에서 만난 몇몇은 친구가 되고 공동 저자로 논문도 썼다. 여전히 교류하며 지내는 귀한 인연이다. 또 전공은 달랐지만, 같은 해 박사 입학한 피박과 용박님은 한국과 미국에서 각기 정착하여 잘 살고 있다. 험난하기도 즐겁기도 했던 그 시절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생각하면 힘이 나고, 지금도 안부를 묻는다.
지역사회 커뮤니티는 종교생활, 취미생활을 위한 클럽, 또는 봉사활동을 통해서도 만들어 갈 수 있다. 커뮤니티 연계 연구를 수행하는 전공이라면 본인의 삶과 연구가 밀착된 형태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역사회와의 연계도 학교에서 그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행사나 프로그램을 잘 찾아보면 좋겠다.
김덩이는 학교의 인터내셔널 오피스에서 연결해 주는 지역사회 버디프로그램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는 코비드 이전이라 많은 혜택을 누렸다. 같은 동네 사시던 어여쁘신 80대 레인 할머니와 함께 연결이 되어, 가끔 점심을 먹고, 쇼핑도 하고, 공연을 보러 갔었다. 홀로 사시는 분이라 매치 닷컴에서 가끔 소개팅도 하셨다.
“그 사람 다 좋았는데, 트럼프를 좋아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용납할 수 없어.”
얼굴은 몰랐지만 나는 그 남자의 치명적 약점에 동의했다. 지금 생각하니 이 대화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트씨 임기의 예고편이었을까…
한국에 계신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던 레인 할머니는 어떻게 어른이 되어 가야 할지 은퇴 후 뜻깊은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셨다. 안타깝게도 그분은 행복한 유럽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원하시던 모델로 신차를 구매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졸업식 대신 장례식에서 작별 인사를 했지만, 그분의 미소와 유쾌한 말씀을 가끔 떠올리곤 한다.
연차가 올라가면서는 자신의 전공분야 또는 비슷한 필드에서 커뮤니티도 쌓게 된다. 만약 세모네모씨의 지도교수님이 학회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사교적인 분이라면 같이 연구를 하면서 자연스레 수직적 또는 수평적 멘토링을 통해 관계를 맺고 다양한 학술커뮤니티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덩이씨의 박사지도교수님 꾸박님은 지도학생을 알뜰살뜰 챙겨주시고 좋은 연구를 하셨지만, 학회 활동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내향적이셨다. 그래도 괜찮다. 그대의 이메일에 48시간 이내에 빼먹지 않고 답장하고, 당장 필요한 급한 서류를 제때 처리해 주며, 나의 생각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는 지도교수는 흔치 않다. 교수가 되어보니 더 잘 알겠더라. 꾸박선생님, 감사해요. 그분 덕에 덩이는 용감해질 수 있었고, 그래서 료박님도 알게 되었다.
연차를 거쳐 세모네모씨도 좋아하는 학자가 생기고, 감동적인 논문이 눈에 들어온다면, 다가오는 학회나 워크숍에서 그분들을 알아볼 것이고, 그곳에 자주 오는 학생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언제 어느 자리에선가 그들과 교류하고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생겨날 것이다. 급하게 소속을 찾기보다는 시간을 들여 알아가고, 작지만 반복되는 교류가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학술적 커뮤니티로 발전할 기회가 온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회와 네트워크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어 보겠다.
하지만, 모든 관계와 커뮤니티가 나를 위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필요한 무언가가 있을 때만 연락을 한다.
어떤 불편함의 끝에는 누군가의 우월감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자리는 나의 감정을 쓸데없이 소진시키기도 한다.
덩이씨는 자문해 본다.
나는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편안하고 왜 그렇게 느끼는가, 그렇지 않을 때는 어떤 상황인가.
세모네모씨가 민감성을 잘 발동하여 새로운 환경 속에 놓인 스스로를 잘 탐색하길 바란다.
그리고 료박님의 마법처럼, 스스로도 누군가에게 다정함과 위로를 건네는 사람으로, 감동을 주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개인의 이기심 보다는 "함께"를 위해갈 수 있는 자신의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응원한다. 안녕한 일상을 꾸려가는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도록.
다음 편은 학교캠퍼스에서 활용할 만한 시설과 자원에 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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