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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옌T Aug 28. 2021

가스라이팅의 진실

당신의 불안감을 사고파는 사람들


 1  우리 반은  유혈이 낭자했다. 역대급 학교폭력 가해자들과  반이 되었다. 나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적은 없지만  놀던 친구가 갑자기 마음에  든다고 주먹을 날리는 것은 예사였고  친구들이  떠난  교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불을 내고 평소에 놀림감으로 삼던 친구 의자에 오줌을 싸는 행위들이 날이면 날마다 일어났다. 누군가의 지갑이 없어져 우리는 범인이 나올 때까지 책상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의자를 들고 단체기합을 받기도 했다. 하루 걸러 하루씩 새로운 일이 생겨나니 우리 반은 항상 수업을 들을  없었다.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들마다 인성교육과 잔소리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셨다. 특히나 학생부장인 국사 선생님은 수업에 들어오자마자 시계를 풀고 해당 학생들을 체벌했는데, 선생님의 몽둥이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우면 우리는 숨소리도 삼킨   모습을 지켜봤다. 쉬는 시간이면 문제학생들 때문에, 수업시간에는 분노한 선생님들 때문에 항상  죽이고 덜덜 떨리는 학교 생활을 했다. 그들과  반에 배정됐다는 이유로 수업시간을 통째로 날리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비상식적인 행위에 대해 함께 혼이 나는 것이 무척 억울했다. 우리 학교는 그래도 지역 내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 곳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학습 욕심이 있고 성실한 학생들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주 예외적인 한두  때문에 우리  전체가 문제 있는 반이 되어버렸고, 어느새 잘못 없는 나머지 학생들도 매일 저지르지 않은 일로 혼이 나고 반성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필자의 오빠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꽤 잘했는데 손위 형제가 손아래 형제에게 옷을 물려주듯 나는 그가 공부한 방식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았다. 하지만 오빠의 영어 등급을 올려준 강의가 내게는 효과가 없었다. 아마 받아먹는 나의 태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강사는 늘 ‘너희들이 열심히 안 해서 내가 이렇게 해준다’와 같은 뉘앙스로 자기 자신을 치켜세웠는데 그게 그렇게 꼴 보기가 싫었다. 화면밖에 있는 내가 열심히 안 하는지 자기가 어떻게 안다는 거야? 그렇다. 난 사춘기가 고3 때 왔다. 사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업을 듣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들은 이 강의를 보고 있지도 않을 텐데 왜 내가 늘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반항심이 생겼다. 마치 고1 국사 수업에 있는 것 같았다.


 강사가 직업이 되고 보니 강사들은 마치 연예인처럼 자기만의 특별한 캐릭터와 수업 전략이 필요했다. 난 당연히 카리스마와는 담을 쌓고 있는 사람인지라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하는 스타일은 진작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늘 그런 캐릭터를 동경했다. 수험생활이 중반 정도에 이르면 더워진 날씨와 익숙해진 생활에 슬럼프를 겪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때 강사들은 학생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일명 ‘썰’을 풀거나 조언을 자주 하게 된다. 이 경우 카리스마 콘셉트가 그렇게 잘 먹힌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같은 상황이라도 수험생들에게 위로와 공감보다는 불안감을 자극하는 방식을 이용하면 수업과 강사, 그리고 학원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는 것이었다. 수험생의 합격만큼 중요한 것이 학원 운영과 강사 개인 역량이기 때문에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그때 그 인강 강사가 ‘너희들이 열심히 안 해서 내가 이렇게 해준다’라고 말한 것이 고도의 전략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열심히 하지도 않는 너희가 이 수업마저 안 들으면 큰일 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해당 강의와 본인의 다른 강의까지 듣게 하려는 의도였다.

 마침 합격생에게서도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카리스마를 장착한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가 갑자기 화를 내고 다그치면 다들 자기가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거라며 반성을 한다고 했다. 안 그래도 느슨해진 시기에 선생님이 화를 내면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그 순간만큼은 정신을 차리게 된다고 했다. 실제로는 열심히 하지 않았냐고 반문했더니 열심히 했는데도 점수가 안 나오면 다그치는 선생님 말씀이 다 맞는 것 같았다고 했다. 심지어 안일해진 자신에게 그런 채찍질을 계속해주기를 바랐다고… 수험생이라면 이런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잠깐, 최근에 있었던 한 여배우의 가스라이팅 사건을 기억하는가. 가스라이팅은 어떤 사람의 심리상태에 조작을 가해 자신을 불신하고 상대방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보통 이 경우에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피해자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사람은 자신 뿐이라며 심리상태를 지배한 뒤 상대방을 통제 혹은 조종하는 것이 목적이다. 피해자는 반복되는 가스라이팅에 정말로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고 상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의존성이 높아진 피해자에게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얻어내기가 한결 수월해지는 것이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의 어원이 된 영화 <가스라이트>

  의도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위와 같은 강사의 조언은 가스라이팅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수험생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선생님은 그렇게 학생들을 자신의 수업에 의존하게 만들 수 있다. 가만히 있어도 자존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수험생들은 가스라이팅에 매우 취약하다. 심한 경우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단순한 일상마저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스스로 깨닫기는 매우 힘들다. 이 학생의 경우를 함께 보자.


 편입학원에서 1학년 반을 가르칠 때 일이다. 올해 시험이 아니라 내년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을 1학년이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1년 정도 시험을 준비하는 다른 수험생들보다 길게는 반년 정도 더 일찍 수업을 듣는 것이다. 대부분 기초가 부족하거나, 아니면 상위권 대학 합격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긴 시간을 투자한다.

 이때 1학년 반의 한 학생이 다음 달에 (올해 시험을 대비하는) 파이널반을 등록할지, 1학년 반을 계속 등록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때가 11월이었기 때문에 파이널반에 등록하면 시험 응시까지 두 달도 채 안 남은 기간이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어차피 1년 더 공부한다고 해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없을 것이니 지방캠퍼스라도 4년제이기만 하면 지원해서 다니겠다는 거였다. 편입이 만만한 시험은 아니지만 시간을 투자해서 내공을 오래 쌓은 사람에게 유리하고 경쟁자들 실력도 비슷하기 때문에 꽤 승산이 있는 시험인지라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물어보니 그건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부모님의 의견이라고 한다. 어차피 1년 더 공부해봤자 나이만 더 먹을 테니 아무 데나 가라고 했다고… 집안 형편이나 그녀의 나이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독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성실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눌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그런 말을 들어와서인지 미래가 창창한 이 어린 학생은 스스로도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도 부모님은 자녀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이었을까. 어찌 됐든 그녀는 파이널반도 1학년 반도 등록하지 않고 편입을 포기했다.

 

 이렇듯 때로는 부모가, 선생님이, 친한 친구가 나의 가능성과 노력을 폄하한다. 사실 내가 모든 사람의 인생을 아는 것은 아니기에 어쩌면 가스라이팅이라고 보이는 것이 ‘팩트’ 일 수도 있다. 실제로 너무나 가능성이 없고, 의지가 없고, 쓴소리가 필요한 시점일 수도 있다. 무조건적인 희망도 때로는 가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가스라이팅과 조언을 구분할 수 있을까.



1. 통계나 사례를 통해 문제에 대한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2. 문제를 지적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3. 조언을 듣고 나서 안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보다는 하려는 의지가 생긴다.



 위와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면 긍정적인 조언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렇지 않다면 단체행동에서 규칙을 어긴 단 한 사람 때문에 연대책임으로 듣는 잔소리 정도로 생각하고 넘기기를 바란다.


 선생님과 부모님이 당신을 위하는 마음이 진심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처음 가보는 길에 경험자가 알려주는 조언은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게 되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 수험생활, 더 나아가 내 인생은 나만이 통제할 수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합격해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합격생 T.O.는 정해져 있고 합격하는 사람이 있으면 불합격하는 사람도 반드시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을 돌아봤을 때 내 의지대로 하지 못한 것에 후회를 남기지는 말아야 한다. 당신이 중심이 잡혀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길이든 올바른 길로 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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