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인 수험생 에너지 활용
프리랜서로 수업 시수에 따라 수입이 불안정한 나는 고3 여학생 두 명의 과외도 병행하고 있는데, 최근 아이러니한 일을 겪었다. 이 두 학생은 굉장히 비슷한 듯 다른 학생들인데, 일단 집안의 외동딸로 가정에서 아낌없는 서포트를 해주며 학부모들도 아이의 교육에 많은 관심을 쏟는다는 점이 공통점이긴 하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봤을 때 두 학생은 매우 다른 성향이라는 것이 극명하게 느껴진다.
A라는 학생은 화장기 없는 수수한 외모에 어른들 말씀을 거역하지 않는 예의 바른 학생으로 학교생활, 학원생활, 과외 숙제 등 자기 할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는 착실함이 특징이다. B라는 학생은 연애와 뷰티에 관심이 많고, 잠이 많아 학교를 자퇴한 학생이다. 과외 시간은 정오인데, 거의 대부분 내가 누른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깨고 밤새 남친과 싸워서 울다가 잠들어 퉁퉁 부은 눈으로 수업을 듣는다. 숙제는… 그냥 딱 내 기대만큼 해온다. 선생님 말에 토를 달거나 버릇없이 굴지는 않기에 내 심기를 건드린 적은 없지만 고3의 생활습관이라기엔 걱정되는 부분이 많은 학생이다.
놀랍게도 두 학생의 모의고사 점수는 꽤 비슷하다(적어도 내 과목에서 만큼은 말이다). 가끔 1등급도 한두 번씩 찍는 2등급 학생들이다. 고로 내 역할은 이 학생들이 안정적인 1등급에 안착하게 하는 일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수능을 100일 정도 남긴 8월 중순인데, 최근에 나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 두 학생의 엄청난 변화를 보게 되었다.
A는 학교생활에 여러 개의 과외와 학원을 병행하고 있고, 방학을 맞아 절대 학습시간을 채워야 하는 관리형 독서실에 다니고 있다. 학생의 바쁜 스케줄에 맞추어 나의 수업 시간도 자연스럽게 주말 저녁시간으로 옮겨졌다. 이 시간이 아니면 도저히 시간이 안 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나의 주말을 뺏긴 기분도 슬펐지만, 대체 A는 언제 쉬는 걸까? 하는 의문도 가시지 않았다. 어쩌면 나만큼 휴식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학생 본인도 중간중간 쉬고 있다며 괜찮다고 말한다.
B는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수업에 제시간에 문을 열어주는 적이 없을 정도로 잠이 많다. 숙제도 반 이상 완료해온 적이 없다. 대체 언제 공부를 하는 걸까? 부모님도 다 큰 딸에게 잔소리하기가 쉽지 않단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내가 아무리 고군분투해봤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미리 언질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B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동안 잠에서 급하게 깨서 나를 맞아주긴 했지만 바람 맞힌 적은 없었는데 결국 나는 문 앞에서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녀가 잠에서 깨기를 기다리다 돌아오고 말았다. 수십 통의 전화와 초인종 폭탄도 그녀를 깨우기엔 역부족이었다. 학생과의 신뢰 문제도 있기에 학부모에게 연락해서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일은 최대한 참았는데 그날은 나도 폭발해버렸다. 어쨌든 그 사건은 학부모와 학생에게 사과를 받고 잘 넘어갔기 때문에 나에게는 작은 해프닝이었다.
변화는 그 이후로 급격하게 일어났다. 다음 수업에서 학생은 나에게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했고, 사실 예측 못했던 일도 아니기에 나는 쿨하게 넘어갔다. 다른 잔소리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행동에 꽤나 충격을 받은 B가 그날부터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자기만의 학습계획을 짜고, 한 번도 다 해온 적이 없던 숙제, 테스트 등을 준비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일시적인 변화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변화는 행동보다는 그 결과에서 놀라움을 안겨줬다. 그녀가 연속 1등급 (그것도 매우 안정적인!) 모의고사 점수를 연속해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맞다. 이 친구는 원래 센스가 있고 하면 잘하는 학생이긴 하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그동안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던 A가 숙제를 점점 안 해오기(사실은 못한 것) 시작하며 점수가 3등급으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최악의 점수를 연속해서 가져오는데 무슨 문제인지 아무리 분석해봐도 ‘집중력 부족’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았다. 과부하가 걸릴 만도 하지, 힘들겠지, 휴식이 필요하겠지.. 이런 결과가 나온 원인은 뻔했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건 학생과 학부모의 반응이었다. 학생은 자신이 부족한 것 같다며 숙제를 더 내달라고 했다. “지금 준 거나 다 해와..”라는 말이 필터링 없이 새어 나왔다. 학부모는 요즘 보는 테스트 점수가 왜 이리 떨어지고 있냐며 더 채찍질해달라고 문자가 왔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점수 하락의 원인을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아니, 휴식을 취하라고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결국 수험생활은 장기전이고, 휴대폰이 꺼지기 전에 적절한 타이밍에 충전기를 꽂아 수능 날 누가 에너지를 효율 있게 쓰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수험생과 고시생들에게는 공식과도 같다. 하지만 수능은 인생의 첫 수험생활이기 때문에 스스로 이 간단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나는 유튜브에서 ‘스터디위드미’ 콘텐츠를 자주 보는데, 한 고3 학생이 20시간 공부하기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장담하건대, 20시간 공부하고 72시간 회복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안타까운 것은 부모가 그 지점을 미리 예측하고 안내해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채찍질을 해주라고 내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방전된 휴대폰으로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보라는 요구 아닌가.
두 학생이 비슷한 시기에 매우 상반된 결과를 보여준 것이 나에게는 꽤나 큰 파동을 일으켰다. 아직 결승 지점에 도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충전기 꽂는 법을 모르는 A와 만땅으로 충전이 완료되어 이제 달리기를 시작한 B는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나도 이만 오늘의 셔터를 내려야겠다. 어휴, 일을 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