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 인지하기
컴플레인을 받았다.
“저 선생님 시험대비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
첫 학원에서 일할 때였다. 우리 학원 대표 똑순이 학생이 원장님께 나의 밑바닥을 까발린 것이다.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학원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학생으로서 학원을 다녀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남매에게 수십만 원씩 하는 학원 수강료를 매달 지원하는 것은 부담이었기 때문에 학원에 발을 디뎌보진 못했지만,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는 사교육은 받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필요한 참고서는 아낌없이 사주셨고 원하는 인터넷 강의도 모두 수강하게 해 주었다. 다만 딱 한 가지, 나는 진짜 ‘학원’에 다녀보지 못한 채로 ‘학원강사’가 된 것이다.
나름 학교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던 학생으로서 나만의 학습전략이 있었다. 내가 효과를 봤던 전략들을 학생들에게 알려주면 되겠다, 이건 100% 먹힐 거라고 생각했던 방법이 ‘시험대비할 줄 모르는 선생님’이라는 비수로 날아와 꽂혔다. 돌이켜보면 나의 전략은 자기 주도 학습에 철저하게 들어맞는 전략이었다. 요즘 고시생들 사이에서 정석처럼 사용되는 다회독 전략이나 오답 원인 정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학원은 혼자 공부하기 힘든 학생들에게 와서 앉아있기만 하면 손안에 모든 게 쥐어지는 곳, 즉, 떠먹여 주는 곳이다. 그 대가로 수십만 원 혹은 수백만 원에 달하는 수강료를 내는 것인데 그 당연한 이치를 몰랐다.
이런 이치들을 알아갈수록 나는 나의 학창 시절이 안쓰러워졌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맨땅에 헤딩하면서 손에 쥐게 된 모든 것들이 사실은 돈을 내고 학원에 오면 그냥 알려주는 방법이었다니. 아마 학원에 다녔으면 그 기간이 열 배는 단축됐을 텐데.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혀 마냥 해맑은 학생들에게 질투심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그 반대의 감정을 느낀다.
학생들과 가장 많이 하는 상담은 아무래도 학습 상담인데, 학습 방법이나 자신의 점수에 대해서 한탄하거나 시험 결과에 대해 회의적인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답도 알려주고 해결책도 알려주고 학습계획부터 시험전략까지 모든 걸 다 꺼내 주는데도 못할 것 같다고 한다. 아니, 내가 이렇게 모든 방법을 손에 쥐어주고 입에 떠먹여 주는데도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메타인지’가 문제였다. 최근 메타인지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동안 큰 그림을 봐라,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라 등 내가 구구절절 늘어놓던 잔소리 콘텐츠들을 한 마디로 정리해주는 개념이었다.
메타인지란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다(노 왓-Know What).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면 모르는 부분에 대해 필요한 학습법이나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되고 해당 영역을 집중적으로 훈련할 수 있게 된다(노하우-Know How). 인지에 대한 인지라고 볼 수 있다. 메타인지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혹자는 훈련으로 키울 수 없는 타고난 재능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훈련을 통해 가능한 영역이라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수험생활에서 약간의 의식적인 사고 전환을 통해 메타인지를 키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메타인지 요소들을 수험생활에 적용해보았다.
<문제 해결 전에 핵심 질문부터 시작한다>
본질을 파악하라는 내 잔소리와 일맥상통한다. 이 시험을 왜 준비하게 되었는지 본질부터 파악한다. 또는 개인적인 목표 점수나 합격을 위한 커트라인 점수를 정한다. 특정 과목에서 점수가 유독 안 나오는 것이 핵심문제일 수도 있다.
<핵심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하라>
위에서 정의한 문제점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것이다. 선택지가 여러 개여도 좋다. 대개는 수험생활을 위해 학원, 인강, 독학 등 학습방법을 정하는 단계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해당 목표 점수에 도달하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영역이나 점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부족한 역량을 확인하는 것 또한 이에 속한다.
<인지 위의 인지를 이해하라>
이렇게 문제점과 답을 정리했다면 그 간극을 채워나가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세부적인 학습계획을 세워나가면 된다. 하지만 문제와 답을 알고도 어떤 전략과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전문가들이 훈련으로 메타인지를 키울 수 없다는 이유가 아마도 이 단계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남에게 조언을 구하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면 남의 인지라도 빌리면 된다. 단, 이전 단계(문제와 답)는 본인이 직접 찾아야 한다.
<상대방의 메타인지 체계를 파악하라>
내가 참고한 서적이 기업 경영과 의사소통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메타인지 체계를 파악하라는 단계가 등장한다. 상대방은 클라이언트를 의미하고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방의 메타인지를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독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수험생들에게 상대방은 누구일까. 그대들이 봐야 하는 수많은 책과 시험지가 아닐까. 즉, 수험생에게 이 단계는 계속해서 읽고 풀어야 하는 실천단계라고 정의한다. ‘문제점 파악-답 정리-전략 및 계획 수립’의 다음 단계는 바로 실천이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결과가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모르는 것을 묻고 틀린 답을 말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너무 많은 학생들이 틀린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좌절한다. 게다가 그 모습을 남에게 들키는 것은 더더욱 두려워한다. 하지만 나는 이를 긍정적인 신호로 본다. 틀린 것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는 지표이자 고쳐나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틀리고 지적당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두려움을 마주하고 부족함을 채워갈 수 있는 용기가 당신을 더 성장시킬 것이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지적당할 수 있는 용기, 이 또한 메타인지이다.
얼마 전 문제풀이 수업 중 매번 반복해서 훈련했던 문제 패턴이 또 등장했다. 우리 반은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수없이 연습했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지만 금방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함께 훈련한 내용을 통해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니 신이 나서 이렇게 말했다.
“출제자의 의도가 뻔히 보이죠? 우리가 출제자 머리 위에 있는 거예요!”
그러자 쉬는 시간에 한 학생이 이렇게 질문했다.
“그런데 우리가 출제자 위에 있을 수가 있나요?”
이 경우는… 용기가 부족한 걸까, 인지가 부족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