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옌T Sep 18. 2021

미어캣 모드 금지

앨리스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선생님, 단어를 하루에 100개씩 외우는 게 필수인가요?”



 나는 이런 종류의 질문을 하루에 수십 개는 받는다. 그러나 여러분도 다 알 것이다. 대개 이런 극단적인 선지는 답이 아닐 확률이 높다. 아마도 이 질문 의도는 “제발 필수가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이거나 “이것보다 편하고 쉬운 방법을 내놓아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학생은 이미 이 방법으로 공부를 하고 있고 너무 막막하고 힘이 든 나머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알려줄 수도 있지만 더 ‘쉬운 방법’은 없는데 어떡하지…


우리의 비대면 상담


 나는 직장에 가기 위해 버스를 한 번 타고 지하철에서도 한 번 환승을 해야 하는데 이 루트가 너무 고돼서 여러 가지 다른 루트로 출퇴근을 시도해보았다. 결국 새롭게 선택한 루트에서 한 번은 환승을 잘못했고, 반대방향 지하철을 타기도 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많은 환승을 해버리기도 하고, 더 긴 환승구역을 통과하느라 진이 빠져버리기도 했다. 배차간격이 너무 긴 역을 선택해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데 30분이나 허비한 적도 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직장이 멀기 때문에 쉽게 가는 길은 없다는 것을. 결과적으로 가장 빠르고 편한 길을 피해 더 고된 시행착오를 겪은 셈이었다. 나는 겸손하게 원래 루트로 돌아와 얌전히 통근 중이다.


30분째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쓸쓸한 나


 어느 길로 가도 나는 직장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 때문에 자칫하면 지각을 할 수도 있었다. 대형강의를 하는 직업 특성상 지각은 매우 치명적이다. 또는 길에서 시간을 버리지 않았다면 더 효율적인 일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업무 탓인지 내가 버린 시간에 몇 문제를 풀 수 있었을까 계산해보게 된다. (늘 열심히 안 하면서 이런 계산만 잘한다.)


 만약 휴일에 여가를 즐기기 위한 산책길이라면 어느 길을 선택하든 즐겁고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계가 달린 출근 중이었고, 여러분은 인생을 걸고 시험을 준비 중이다. 따라서 목적지를 정했다면 그곳으로 가는 어떤 낭비나 시행착오도 없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다시 위에 언급한 학생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단어를 하루에 100개 외우는 것이 필수일까? ‘필수’라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목적지로 가는 방법이라면? 그렇다면 그 수단을 이용해 목적지를 향해 가면 된다. 다른 방법도 결코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번화가라면 다양하고 편안한 교통편이 많겠지만 그만큼 나 말고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쉽게 진입할 수 있다. 반면에 나의 목적지가 산 정상이라면 가는 길은 몹시 고되겠지만 정상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제한적일 것이다. 여러분은 아마 다들 산을 오르고 있는 중이라고 추측해본다. 정상에 이르는 여러 갈래 길 중에서 가장 수월한 길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그 길은 여전히 흙길이며 비탈길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길이 가장 빠르고 편한 길이다. 괜히 다른 길을 기웃거려봤자 정상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먼 길을 돌아갈 뿐이다.


 쉬운 방법만 찾는다고 질책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이치를 알면 더 이상 미어캣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느라 시간과 노력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쉬운 방법, 더 좋은 교재, 더 나은 선생님을 찾아서 두리번거리는 것은 더 먼 길을 돌아가는 짓이라는 거다. 길을 잃지 않고 가려면 출발지에서부터 계획을 잘 세우고 묵묵히 한 길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꿈을 이루는 플랜 세우기>

1 목적지: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정한다.

2 루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나열한다.

3 루트 선택: 본인의 상황과 성향에 맞지 않는 선택지를 하나씩 소거하며 가장 적절한 선지를 고른다.



 이제 계획을 잘 세웠다면 가는 길에 목적지를 잊지 않기를 당부드린다. 여정이 꽤 길어서 가다가 많은 유혹을 마주치고 (나처럼) 샛길로 빠지고 싶을 것이다. 어쩌면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만나 토끼 굴로 들어가게 될 수도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정말 온갖 유혹에 다 손을 대고 온갖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다 호기심을 가진다. 다들 이 영화의 결말이 어떤지 알고 있지 않은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꿈속에서 길을 잃었고 수험생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런 현실을 살고 있으니… 행여나 이상한 나라를 만나더라도 결국에는 목적지에 꼭 도달하기를. 그리하여 비포장 도로 끝에 꽃길을 걷게 되기를!


수험생활은 절대 안했으면 하는 호기심 대마왕 앨리스
이전 05화 알고 모름을 아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