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을 통한 균형 잡기
이십 대 초반에 나는 열렬한 축덕이었다. 해외축구 블로그를 운영하며 아이러브싸커 정회원 신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시절이다. 낮과 밤을 일부러 바꾸어 가며 덕질 콘텐츠를 생산하던 나의 원동력은 우리 모두의 캡틴인 박지성 선수였다. 그에 대한 사랑은 초딩 시절부터 시작되었으나 상대적으로 시간 운용이 자유로웠던 나의 대학시절과 그의 프리미어리그 전성기 시절이 만나 비로소 꽃을 활짝 피웠다.
얼마 전 유퀴즈에 출연한 박지성 선수를 보고 마치 아련한 첫사랑을 만난 듯 감상에 젖었더랬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영웅담은 원래 계속해서 후세에 전해져야 하므로 듣고 또 들어줘야 한다. 백만 스물두 번째 그의 일대기를 듣다 보니 그의 실력, 인맥, 고난과 역경, 성공담 이면에 있던 그의 ‘선택’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박지성은 화려한 플레이와 엄청난 피지컬을 가진 선수들이 가득한 유럽리그에서 엄청난 활동량과 팀을 위한 희생정신이 돋보이는 선수였다. 기술이 현란하거나 타고난 골잡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나는 그가 다른 재능이 부족하니 활동량과 조력자의 역할을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국가대표팀에서 그의 존재감은 확실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팀을 이끄는 리더였고, 굵직한 경기에서 인상 깊은 골을 꽤 많이 남긴 확실한 스타플레이어였다. 단지 소속된 팀마다 팀의 승리를 위해 그가 해야 하는 역할이 달랐다. 클럽 팀에서는 그가 상대팀 공격수를 밀착 마크하길 원했고, 대표팀에서는 그에게 결정적인 골과 팀의 지휘를 기대했다.
‘축구는 잘하고 싶은데 유명해지기는 싫다’ 던 그의 과거 한 인터뷰가 떠오른다. 그는 축구를 통해 유명해지거나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부차적인 목표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경기에서 승리하겠다는 목표를 이룰 방법만을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마다 팀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르게 선택했다.
선택과 집중. 여러 분야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이다. 핵심적인 내용에만 몰두하라는 뜻이지만 수험생활에서는 다소 실현하기 어렵기도 하다. 수험생들이 보는 과목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닌 데다가 때에 따라 논술, 면접, 어학, 자격증, 실기 등 준비할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되면 나락으로 떨어지기 딱 좋다. 우리는 모든 영역의 균형을 맞추면서 결과까지 좋아야 한다.
“선생님, 지금 이거랑 저거랑 요거를 하고 있는데요. 혹시 더 추가해야 할 것 있을까요? 그거를 해도 괜찮을까요? 그러면 이 부분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질문한 학생이 언급한 이거, 저거, 요거, 그거 모두가 다 수험생활에 필요한 것들이다. 결과적으로는 그 모든 걸 다 해내야 한다. 문제는 한꺼번에 이 모두의 균형을 잡으려는 것이다. 한 경기에서 골을 넣고 수비도 하고 더 좋은 팀에 스카우트도 되면서 연봉도 올리고 팀도 승리하겠다는 격이다. 욕심쟁이... 우리가 지금 무엇 때문에 이 많은 것들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상기하자. 축구경기의 목표는 팀의 승리, 우리의 목표는 합격.
그러므로 우리는 시소를 타야 한다. 시소는 양쪽 무게를 똑같이 맞추어 한 번에 수평을 유지하는 기구가 아니다. 한쪽 끝에 무게를 옮겨서 양쪽을 번갈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한쪽 끝에 무게를 실었다가 다른 한쪽 끝에 무게를 싣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 일시적으로는 불균형해 보이지만 시간이 쌓이면서 균형이 맞추어지는 원리인 것이다.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의 누나이자 저커버그 미디어 CEO인 랜디 저커버그는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균형 같은 건 절대 못 잡아요. 성공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하루에 잘 해낼 수 있는 일은 세 가지뿐입니다. 매일 다른 걸 골고루 고르면 장기적으로 균형이 맞춰집니다.” (픽쓰리, p.25~26)
그녀의 논리는 이렇다. 자신이 해내야 하는 모든 일 중에 하루에 딱 세 가지만 해내는 것이다. 한 가지라도 더 욕심내는 순간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이런 방법으로 자신이 한심하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자책 없이 꽤 많은 일을 균형감 있게 해낼 수 있다고 한다. 정녕 우리에게 필요한 원칙이지 않은가. 의욕적으로 스터디플래너를 빽빽하게 채우고 다 지키지 못한 나를 자책하고 오늘 해내지 못한 일을 내일 플래너에 다시 옮겨 적는 이런 일을 더 이상 반복하지 말자. 일의 중요도와 시기를 고려해 무게중심을 다르게 두어라.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편식하지 마라, 편견을 같지 말라는 잔소리를 지독하게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이런 “의식적인 편향”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한 번에 모두 잘할 수 있다는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얻으려면 포기가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