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에게 불행은 디폴트 값인가?
삼수를 해서 고려대에 간 가수 성시경은 40대가 된 지금도 삼수 시절 꿈을 꾼다고 한다. 명문대를 나온 내 친구도 고3 시절 부모님의 압박과 채찍질을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기억하고 원망 섞인 말을 한다. 다들 수험생활 기억이 오래가는 군. 나의 수험시절은 어땠나 떠올려봤다.
나의 고3 시절, 그러니까 그게 벌써 꽤 오래전 2008년이다. 그 해에는 베이징 올림픽이 열렸고, 샤이니가 데뷔한 해이기도 하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고? 이 두 가지 사건이 내 고3 생활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수험생활을 떠올렸을 때 치열하게 허벅지를 찌르며 공부하고 불안감에 눈물 흘린 기억은 1도 없다. 엄마한테 거짓말하고 한 여름에 음악방송 방청 가서 7시간 대기 끝에 ‘누난 너무 예뻐’를 열창하고 목소리 쉬어서 온 일, 수학 문제는 약간의 소음이 있어야 잘 풀린다며 올림픽 보면서 풀다가 결국 이용대 선수 윙크 움짤 저장해서 싸이월드에 공유하던 일 따위로 가득 찬 시절이다. 치열하게 살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먹구름 낀 기억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19살은 삽자루 선생님이 육두문자 날리는 인강을 열 번씩 돌려보던 10대 소녀의 풋풋하고 순수한 감성이 햇살처럼 비추는 그런 밝은 이미지로 기억된다. 그래서 그것밖에 안된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반박불가다. 맞아요, 그래서 이것밖에 안됐지만 그 순간의 행복이 너무 중요했다고요.
아무튼 나는 일타강사들의 뼈 때리는 현실조언, 공부자극 명언, 본인의 치열한 수험생활 경험 이런 얘기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그냥 재미있는 수업이 좋았다. 수업 내내 까르르 웃는 게 집중이 더 잘 됐다. 심지어 너무 웃겼던 강의는 몇 번이고 돌려 볼 정도였다. 아무튼 나는 그런 강사가 되었다. 나의 최애 강사 삽자루 성대모사를 하고 드라마 대사로 이론 설명하고, “얘들아, 이거 꼭 맞아야 돼”가 아니라 “얘들아, 모르는 거 집착하지 말고 버려”라고 말하는 어쩌면 비주류이면서 불량한 강사다. ‘지금 하는 공부에 목숨 바쳐!!! 이거 아니면 안 돼!!!’라는 말은 어른이 되어보니 거짓말이고, ‘너네 왜 열심히 안 해!!!’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가스라이팅인 것 같았다. 나의 진심이 아닌 말은 쇼맨십으로도 하기가 힘들다. ‘모두가 합격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해보겠다고 시작했다면 중간에 포기하거나 후회할 짓은 하지 말자.’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로 강한 자극 멘트다. 역시 일타가 되기는 글렀다. 그냥 행복을 주는 강사로 남기로 오늘도 합리화를 해본다.
생각보다 많은 수험생들이 목숨을 바쳐 공부한다는 사실이 아직도 나를 놀라게 한다. 물론 합격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막연함 속에 산다는 게 엄청난 불안과 압박으로 다가오지만, 그 불안이 누군가를 살해하기도 하고, 우울증과 PTSD 같은 증상으로 평생 동안 한 사람의 인생을 괴롭힌다는 것 말이다. 마치 수험생에게 불행은 디폴트 값으로 매겨진 것 같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조금도 행복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고,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무언가 잘못되는 걸까.
작년에 내 인생은 너무 무료했다. 집과 직장을 오가는 게 전부인 삶이었고, 수업 준비가 너무 버거워서 여행이나 다른 기분전환은 꿈도 못 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건 너무 답답하니까 혼자서 제대로 놀 궁리를 하면서 다이소 혼자 놀기 키트를 거의다 섭렵 해갈 때 즈음 우연히 화분 키트를 구매했다. 방울토마토 키우기 키트였는데 작은 화분에 흙과 토마토 씨앗이 들어있는 2천 원짜리 키트였다. 식물 키우기는 자신이 없었지만 저렴한 가격이니까 부담 없이 해보기로 했다. 2주가 지나도 토마토는 감감무소식이라 마음을 접어가던 어느 날 흙 속에서 초록 새싹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꺄!!! 아니, 이게 이렇게 기쁠 일이라고?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 이후 ‘마토’라는 이름을 붙이고 애지중지 키웠다. 애정을 주는 만큼 쑥쑥 자란 마토는 너무 잘 자라서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수업마다 학생들이 지쳐 보이면 농담 한 마디씩이라도 던져주는 나인데, 더 이상 소재가 없었다. 내 인생에는 더 이상 특별하고 재미난 에피소드가 없었고 인터넷에서 본 레퍼토리도 다 써버렸다. 그래서 그 당시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내 자식(a.k.a. 마토) 자랑을 했는데, 웬걸.. 생각보다 반응이 꽤 좋다? 그냥 내가 사소한 걸로 과할 정도로 크게 기뻐하고 주접떠는 게 웃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만도 한 게 새싹이 아기 손바닥 펼친 것처럼 생겼다느니, 줄기가 너무 귀여워서 가지를 쳐낼 수가 없다느니.. 과한 주접을 떨었다. 아, 그런데 이 에피소드를 어떻게 마무리 하지?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은 탓에 강의로 다시 돌아가기가 애매했다. 마치 이 이야기에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는 척 포장을 시도했다.
“수험생은 꼭 불행해야 돼? 너희들도 너무 힘들고 지칠 때 사소한 데서 행복을 찾아봐~꼭 클럽 가고 술 마셔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건 아니더라. 맛있는 거 먹고 좋아하는 가수 노래 듣고 강아지랑 산책하고 그런 거 해!”
자, 이렇게 포장 성공! 얼른 다시 수업하자.
그리고 몇 주 뒤, H양이 찾아왔다. 질문도 많고 자기 얘기도 많이 하러 오는 학생이었다. 타지에서 올라와 고시원 생활을 하며 편입에 올인하는 학생이었는데 공부도 힘들고 의지할 데도 없다 보니 늘 내게 찾아와 대화도 많이 나누고 내가 가끔 밥도 사주던 학생이었다. 나에게 의지를 많이 하다 보니 내 쓸데없는 이야기도 좋아해 주었는데 내 토마토 얘기를 듣고 느낀 게 많아서 일주일 생활 습관을 바꿨다고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평일에는 학원 문이 닫히는 10시까지 공부하고 1시까지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한다는 계획과 함께 그 외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기로 했다고 했다. 일단 오전 수업 전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빵집에서 빵 굽는 냄새를 맡으면서 커피를 마시고, 주말에는 따릉이를 타고 한강에 갔다 돌아오는데 자전거 위에서 느끼는 한강 바람이 엄청난 힐링이 된다고 말이다. 그러면 혼자 지내는 외로움이나 시험에 대한 불안감이 조금 해소되는 기분이라며 감사인사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까지 행복해졌다. 아니, 내 토마토의 파급력이 이 정도라고?
이전에는 마토 사진을 뿌리면서 자랑을 해댔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시험이 코앞인 수험생들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하는 것 같아 이제 토마토 얘기는 그만해야겠다 다짐했다. 내가 토마토 얘기를 안 하기 시작하자 학생들이 먼저 안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토마토 잘 크고 있어요?” 그러면 나는 팔불출 엄마처럼 또 마토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랑했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꽤 많은 학생들이 내 마토에 열매가 달릴지 아닐지에 대리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도 마토가 열매를 맺으면 우리 학생들이 합격의 열매를 맺을 거라고 엄청난 의미부여를 했다는 걸 아이들이 알까. 감사하게도 마토는 꽤 많은 열매를 맺고 작년 가을 임종했다.
수험생들에게 토마토 성장일기 쓰고 샤이니 덕질한 얘기를 자랑하는 강사라니, 역시 난 일타강사는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학생들이 수험생활 기억을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기지 않았으면 하는 게 더 큰 바람이다. 수험생활이 끝나고 특별하지 않은 어른이 되더라도 다들 행복한 쿼카로 살았으면… 그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