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옌T Aug 24. 2021

일희일비의 맛

회귀 오류라는 롤러코스터

 개복치라는 물고기를 아는가? 작은 자극에도 돌연사를 한다고 알려져 ‘유리멘탈’의 상징인 동물이며, 내 지인들 사이에서는 ‘나’를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평생을 개복치로 살아오면서 건강한 멘탈을 갖기 위해 수없이 많은 노력과 연구를 해왔다. 처음에는 멘탈이 잘 붙잡으면 붙잡히는 것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수험생들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긴 수험생활 동안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아마도 널을 뛰는 점수와 동시에 함께 요동치는 멘탈이 아닐까. 원래 한결같이 저점이거나 고점인 점수는 우리의 멘탈을 흔들지 않는다. 우리에게 헹가레를 쳐주다가도 어느 순간 바닥에 내동댕이를 쳐버리는 이는 바로 예측 불가한 기복이다. 성적의 기복, 감정의 기복, 그 모든 것이 우리의 멘탈을 박살내고 수험생활 전체를 파괴하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강사가 된 초기에 가르쳤던 중학생 C가 떠오른다. 그 학생은 나와 접점도 없고 특별히 튀는 학생도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에는 중2병에 걸린 학생들을 하루에도 백 명씩 만나서 일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 감정에 휘둘리며 늘 감정을 과하게 소모하곤 했다. 이때 만난 C라는 학생의 첫인상은 학습에 대한 욕심도 없고 친구관계에 연연하지도 않고 선생님의 관심을 보채지도 않는 낙천적인 중학생이었다. 그 친구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무신경함이었는데, 돌이켜보니 일반적인 중학생이라면 크게 동요하는 일에 그는 늘 무덤덤했다. 나머지 수업을 위해 학원에 남아야 하는 경우에도 별별 핑계를 다 대면서 이 순간을 모면하려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나머지 수업이 좋아서도 싫어서도 아니었다.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냥’ 하는 거다. 이렇다 보니 출석률도 매우 좋았다. ‘오늘은 학원 가기 싫다…’라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는가 보다. 이런 무신경함 덕분에 꾸준한 나머지 수업과 성실한 출석이 그를 쑥쑥 성장시켰다. 하지만 더 웃긴 건 정작 본인은 전보다 단어를 잘 외우고 독해력이 늘었는지 전혀 모르는 듯 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친구 실력 향상 원인의 8할은 이런 성격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그 어떤 내부의 동요도 외부의 자극도 그의 꾸준함에 파동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학생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내가 그의 이런 성격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늘 쓸데없는 걱정으로 밤잠 설치고 작은 일 하나하나 연연하는 나는 이런 성격의 사람들이 굉장히 부럽다. 그래서 나는 C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로 다짐했다. 편입준비생들이 불안감에 눈물을 뚝뚝 흘릴 때도 늘 이 학생 이야기를 꺼냈다. 무덤덤하게, 아무 생각 없이 해라.

 하지만 머지않아 깨닫게 되었다.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거라면 CL의 ‘멘붕’ 같은 노래가 히트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이런 성격은 타고나는 거였다.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가끔 티비에서 영화배우 차태현을 보면 C와 비슷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걱정 근심 없어 보이고 세상 모든 일에 쿨하게 대처하는 그런 이미지. 어느 날 그가 한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 직업은 일희일비하는 맛이라고! 갑자기 머리가 번뜩였다.


 일희일비, 기쁠 땐 기뻐하고 슬플 땐 슬퍼하는 것. 당연히 감정은 늘 평온할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회귀 오류에 빠져있었다. 대부분의 수치가 약간의 상승과 하락의 폭을 가지며 평균치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회귀이다. 이 수치들을 그래프 위에 그려내면 직선의 평균 그래프가 생기는데 해당 직선 위에서 약간의 오차를 두고 아래위로 그려진 수치를 회귀 오류라고 한다. 회귀 오류는 평균값을 중심으로 오르락내리락 물결 모양을 형성하며 이어진다. 이 물결 모양에 따라 우리의 심리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다. 주식이 오르면 ‘살 걸’, 떨어지면 ‘팔 걸’ 하는 식으로 말이다. 수험생에게는 시험 점수가 그 기준이 되겠지. 오르면 기뻐하고 떨어지면 침울해지는… 점수도, 감정도 이 곡선의 그래프를 타는 것이다. 이제까지 나는 직선의 평균값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껴왔다. 하지만 수많은 상승과 하강의 폭이 모여 직선의 평균값이 생겼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결국 상승과 하강 곡선이 바로 평균, 즉 안정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그저 회귀 오류라는 물결에 몸을 맡기고 롤러코스터를 타기만 하면 된다. (아니 탈 수밖에 없다.)

회귀 그래프. 파란 점의 수치들의 평균값을 이으면 빨간 직선이 된다.


 문제풀이 할 때 필요한 요령들은 그렇게 강조하면서 이 간단한 이치를 왜 몰랐을까.


<시험문제 잘 푸는 법>

1. 많이 풀고 많이 틀린다.

2. 틀린 답을 바탕으로 문제를 예측하며 푼다.

3. 결과: 출제 의도가 보이게 되고 비슷한 유형의 문제는 안 틀린다.


멘탈관리 요령도 똑같다.


<멘탈 관리하는 법>

1. 멘탈이 많이 무너진다.

2. 다음 멘탈 붕괴 지점을 예측한다.

3. 결과: 멘탈이 흔들리는 요소를 이해하고 비슷한 감정에 무뎌진다.



 개인적으로 이 간단한 이치로 요즘은 인간관계에서 상처 받는 일이 많이 줄었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결국 상처를 줄 것이고, 그때마다 느끼는 속상함도 결국 익숙해져서 이 감정도 곧 사라진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속상할 수는 있지만 그 감정에 빠져 내 할 일을 안 하게 되면 내일의 나만 괴로워진다는 것도.


 그리고 이제는 학생들에게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번 모의고사에서 웃어도 다음 모의고사에서 다시 울 수 있다. 합격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은 또 엄습한다. 감정은 요동치고 멘탈은 계속 무너진다. 하지만 곧 다시 평균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멘탈은 무너지게 놔두더라도 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 계획한 건 다 해야 된다고.^^


너무나 재밌게 읽은 “회귀오류”에 대한 지문 from 7월 모의고사
이전 10화 독립변수와 외생변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