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그만 보고 너를 봐
“그거 왜 해? 뭐하러 해?”
“이 배신자!”
학교를 다니면서 편입 준비를 병행하는 G는 학교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듣고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고 했다. 편입학원을 가야 해서 함께 어울리자는 약속을 거절하게 되자 친구들은 그녀에게 대놓고 비난을 하거나 편입의 불필요성을 강조하며 그녀를 끌어내렸다. 학교를 다녀야 편입 지원 시 필요한 학점을 딸 수 있기 때문에 휴학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거의 매일 붙어 다니던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 소외된 그녀는 몹시 불안해했다. 물론 편입에 성공한다면 전적대가 될 학교 친구들이었다.
준거집단. 다양한 사회집단 속에서 개인이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집단이다. 수험생활의 결과가 성공적이라면 떠나게 될 집단이며, 혹자는 그 집단을 떠나기 위해 또는 그 집단에 속하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기도 한다. 집단에 함께 속해있다는 이유로 우리의 유대는 끈끈했다. 당신이 시험 준비를 하겠다는 다짐만 하지 않았어도 평온할 수 있었던 관계인데, 당신이 다 망쳐버렸다.
준거집단은 때로는 유용할 때도 있었다. 같은 집단에 속해있다는 사실이 안정감과 소속감을 주기도 하고, 그들과의 비교가 나를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느끼게 해 주거나 혹은 더 잘해보자는 동기부여를 주기도 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내가 속한 그 우물을 빠져나올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그 준거집단을 깨고 나오면 우물 밖 크고 험난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하지만 우물 밖으로 나가면 광활한 벌판에 홀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곳도 그저 더 큰 우물일 뿐이다. 사실 당신의 세상은 마트료시카였다!!! 하지만 더 큰 우물이 있다는 건 그곳에도 또 다른 준거집단이 있다는 의미이다. 당신이 혼자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새로운 준거집단으로 우물의 평수를 넓혀가는 것뿐이다.
이런 경우 당신이 수험생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수험생이라는 신분은 기존의 우물을 떠날 수 있는 무적의 핑계이며, 새로운 준거집단을 만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이미 망가진 관계가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건 어차피 불가능하다. 당신은 집단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떠날 것인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상고 출신 여직원들이 소속회사의 비리를 밝혀내는 이야기인데, 고졸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의견은 종종 무시당하거나 능력을 펼쳐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중대한 사건의 비밀을 알아내고도 힘없는 상고 출신 여직원은 책상이 통째로 복도로 내몰리는 처지에 처한다. 이 대목에서 크게 분노가 일었는데 보는 내가 다 서러워 눈물이 찔끔 나버렸다. 내가 주인공 엄마라면 가슴이 아파서 그까짓 거 다 때려치우라고 했을텐데. 물론 영화에 개연성을 위해 주인공이 회사를 그만두면 안 되기도 하지만, 우리 불굴의 주인공은 고난과 정면으로 맞서는 더 험난한 길을 택한다. 결국 그들은 비리를 밝혀내고 토익 600점을 달성하여 대졸자만 진입 가능했던 대리 직급으로 승진하는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그들은 현재 속한 집단-상고 출신 여직원-을 벗어나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다. 나를 하대하고 서럽게 하는 집단에서 빠져나오는 것, 그리고 본인의 가치를 끌어올려 더 나은 준거집단에 속하는 것. 전자는 일반적으로 쉬운 선택이며 지금의 불편함을 빠르게 피할 수 있지만, 진정 나를 위한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대리가 된 유나는 자신을 깎아내리려는 동료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좀 그만 보고 너를 봐.”
나는 예전에 한 프로그램에서 이경규 아저씨가 한 이야기 중 이 말을 좋아한다.
“저는 예림이(딸)를 유학 보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유학을 갔습니다.”
지금 다시 봐도 속이 뻥 뚫리는 가치관이다. 하물며 가족보다도 소중한 나다. 결국 누구보다도 어떤 관계보다도 내가 잘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