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픈 건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수험생 유튜브를 보다가 이런 영상을 발견했다.
“전국 T.O. 0명, 임용고시 포기당했습니다.”
이 헤밍웨이 뺨치는 제목의 영상 주인공은 임용고시 준비생으로 응시 과목이 전국에서 단 한 명의 선생님도 뽑지 않는다는 공고가 올라온 상황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포기를 ‘당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제목만 보고도 이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있을까.
나는 수험생들에게 ‘합격하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다만,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종종 했는데, 이는 합격여부를 떠나 한 번 시작한 일의 결과를 확인해보지도 않은 자신의 결정이 앞으로 인생에서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경우 어느 누가 ‘포기’에 대해서 운운할 수 있을까? 또는 저마다 갖가지 사연들로 포기가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지난날 나의 ‘포기 말라’는 경솔한 조언에도 누군가는 상처를 입지 않았을까 곱씹어보고 씁쓸함을 느꼈다.
해당 영상이 며칠 내내 마음에 남아서 이런 상황에서 최대한 현실적으로 조언이 될 만한, 혹은 위로가 될 만한 무언가를 찾아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이나 상실감을 위로할 어떤 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검색창에 ‘포기’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다들 포기하지 말라고 아우성이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포기하지 마!”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외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왜 포기하면 안 되는 걸까. 포기하게 되면 패배자나 죄인이라도 되는 것일까.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앉은자리에서 일어날 작은 힘조차 낼 수가 없는데도 우리는 열매를 향해 손을 뻗어야 하는 걸까.
나는 일의 결과나 관계의 끝이 좋지 않은 경우 느껴지는 우울함이나 무력감에 대해 꽤 오랫동안 나를 탓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없고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이해하면서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건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런 감정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다들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고 그 자리를 긍정적인 생각으로 채우라고 했다. 말은 너무 쉽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달라고요…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지 않아도 된다는 게 나의 의견이다. 조금 다른 내 생각을 전하고자 영화 <인사이드 아웃>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주인공인 라일리 어린이의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는 기쁨, 버럭, 까칠, 소심, 슬픔이라는 5개의 감정이 살고 있다. 그들은 라일리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감정 제어판으로 라일리의 감정을 통제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은 핵심 기억으로 저장되거나 장기기억으로 분류 혹은 폐기되어 성격의 섬을 형성하게 된다. 이때 라일리의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좁고 허름한 집으로 이사를 가고 친구관계도 좀처럼 잘 풀리지 않는다. 이때부터 슬픔이가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자꾸만 기쁨으로 가득한 핵심 기억이나 감정 제어판에 손을 대서 슬픔의 상징인 파란색으로 모든 걸 물들이는 것이었다. 다른 감정들은 슬픔이의 이상행동을 저지하고 나무란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감정들은 슬픔을 온전히 느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슬픔이에게 감정 제어판을 내어준다. 슬픈 감정을 한바탕 쏟아낸 라일리의 기억은 그 이후에 느끼게 된 기쁨과 섞여 핵심 기억으로 저장되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성격의 섬이 형성되면서 감정 제어판의 제어 기능도 더 다양해진다. 영화는 슬픈 감정도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결국 우리는 슬픔을 느껴야 하는 상황에서는 슬픔을 느껴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질 때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고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곧 다른 쪽 문이 열릴 것이다. 슬픔을 받아들이니 결국 더 많은 성격의 섬과 감정 제어판을 가질 수 있게 된 라일리처럼.
하지만 이 감정이 너무 깊고 끝이 없어 빠져나오고 싶다면, 내가 좋아하는 이 말을 여러분도 떠올려주기를 바란다.
“부정적인 생각은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나는 형편없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잘 나가는 것 같다. 나의 상황은 최악이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은 잘 풀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것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 즉, 이런 생각은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고 긍정적인 생각을 채워 넣는 방법은 모른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의 끝을 이 말로 맺으면 끝도 없는 수렁에 끌려가는 것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이 끝난 것이 아니고 삶의 한 챕터가 끝난 것이다. 이제는 장을 넘겨 다른 색으로 삶을 칠해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