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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옌T Aug 22. 2021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수험생 필수요건: 방황


 나는 개그맨 박명수를 좋아한다. 가끔씩 내뱉는 솔직한 멘트들이 현실적이고, 삶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려고 하지 않아서 좋다. 그가 남긴 유명한 어록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 하지만 이것과 관련해서 나와 내 친구들의 ‘늦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편입학원으로 이직한 서른 살 당시, 강남 캠퍼스에 내가 주로 강의를 하던 건물 엘리베이터에서 군입대 이후 연락이 끊긴 고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났다. 우리는 경기도 의정부 출신으로 강남에서 마주칠 일이 없었기에 적잖이 놀랐다. 알고 보니 우리는 한 건물에서 수업을 하고,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 건물뿐만 아니라 해당 골목 전체는 다양한 학원이 몰려있는 나름 고시 골목이었는데, 내 친구는 약대 입시를 준비하는 PEET학원에 다니는 고시생이었다. 친구 공부에 방해가 안 되는 시간에 맞추어 우리는 점심을 함께 먹었다. 꽤 오랜 시간 소식을 모르고 지냈기에 어쩌다 친구가 약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건지 근황을 캐묻느라 짧은 점심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이 친구로 말하자면 고딩 때부터 애늙은이 같은 감성을 장착해서 오래된 영화나 책 이야기를 하면 통하는 점이 참 많았고 결국 철학과에 진학한 이후 반수 끝에 다시 국문과에 진학한 문과생 중에서도 찐 문과생이었다. 우리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이 친구의 누나가 Y대에 재학 중이던 것이 꽤 화두였는데, 이후 누나는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의사가 되었고, 의사와 결혼해 의사 집안이 되었다고 했다. 군 제대 후 취업이 안되어 방황하던 친구는 의사가 된 누나와 자형의 영향을 받아 뒤늦게 약대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의외의 진로이긴 했지만 충분히 납득이 가는 사연이었다. 아무튼 그 해 우리는 서른이었고, 바로 시험에 합격해도 5년 후인 서른다섯에나 졸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당시 내가 느끼기에도 30대에 대학을 다시 간다는 것이 굉장히 막연하게 느껴졌고 조금만 더 일찍 준비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지만 찐 문과생인 20대 시절의 그가 의료업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감히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서른한 살에는 나와 동갑인 한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명문대를 졸업하고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였다. 대학 재학 시절 이미 한 차례 시험에 응시했지만 불합격 고배를 마신 뒤 대기업에 입사해서 일을 하다가 회계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고 고시생 신분으로 돌아간 친구였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업무차 우체국 심부름을 다녀올 일이 있으면 볼 일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혼자 거리에 앉아있었다고 한다. 거리에 덩그러니 앉아 무슨 생각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고시공부를 하던 친구의 당시 모습이 그에 대한 답이 아니었을까. 회사 업무를 경험하고 오히려 보내준 꿈에 대한 간절함이 더 커진 경우였다. 재직 당시 수없이 피웠던 담배를 오히려 고시생이 되어서 끊게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취업 준비를 같이 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때 우리 나이가 24살. 매일 같이 도서관에서 만나 각자 취업 준비에 필요한 책을 읽고 이력서를 쓰고 자격증 준비를 했는데, 나는 사실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친구는 원하는 게 확실했다. 광고홍보를 전공한 친구는 온라인 마케팅을 하고 싶다고 했고, 당시에 떠오르는 분야였던 페이스북 마케팅을 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아주 구체적이었다. 나는 일찍 본인의 적성을 알고 준비하는 친구가 부러웠다. 머지않아 그 친구는 꽤 유명한 중견기업에 입사해 정식으로 일을 시작했고 원하는 직무에서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28살이 된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었다면서 다시는 마케팅 업무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른 직무로 일을 해야겠다며 회계공부를 시작해 회계사무실에서 인턴업무를 시작했다. 일찍 적성을 찾은 것이 부러웠던 친구였는데 결국 회계 직무에 정착한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기간은 방황의 시기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취업 준비를 3년이나 했다. 그리고 시작한 일은 동네 작은 학원에서 영어강사가 된 것이다. 동네 학원에서 강사를 하는데 3년이나 걸렸다고?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름 공기업, 대기업, 소기업, 스타트업 인턴과 아르바이트 경력이 빵빵한 취준생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경력들은 결국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일단 돈이 필요하니까 학원 일을 하자,라고 시작한 일이 바로 내 직업이 되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모르고 방황하던 3년이란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차라리 3년을 허비하지 않고 강사 일을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곧 다시 정신을 차리고 깨닫는다. 그랬다면 금방 싫증내고 마음이 변했을 것을 말이다. 난 불공정한 모든 것에 일일이 분노하던 치기 어린 20대였다. 대기업에서는 프리 인턴-인턴-계약직-정직원의 루트를 거쳐 취업이 가능했고, 소기업에서는 공휴일에 개인 연차를 소진해서 쉬라고 하던 사소한 일들이 내겐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학원강사야말로 불공정함으로 가득한 직업이다. 시험기간에는 추가 수당 없이 주 7일 일하는 것이 당연하고 성과에 따른 성과급은커녕 매일 고정된 시간에 고정된 직장에 나가 일을 해도 프리랜서로 분류되어 노동부의 보호를 받지도 못하는 직업이다. 그런데도 내가 그런 ‘불공정함’을 감수하고 일을 하고 있더란 말이다. 쓸모없이 시간만 낭비했다고 느꼈던 과거 3년은 일의 즐거움이 ‘불공정함’을 견디는 힘을 줄 수도 있음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이제 이 글에서 전하려는 메시지가 느껴지시는가?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너무 늦었다’이다. 물론 늦었다. 당신이 편입생이라면 신입학 학생들보다 늦게 졸업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재수생이라면 현역 입학생보다 늦었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었다면 대학 졸업 후 공시 준비에 올인한 학생들보다 늦었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편입을 준비하던 학생들 중에 대학을 다니지 않고 학점은행제로 편입을 준비하던 21살 여학생 J와 군 제대 후 편입을 준비하던 20대 중반 남학생 두 명이 있었다. 이 셋은 매우 친밀하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J는 공부하는 내용이 너무 어렵고 실력은 제자리인데 타이트하게 압박 관리하는 학원에서 견디기가 힘들어 매일 편입 포기를 생각하던 학생이었다. 그녀는 두 오빠에게 심리적으로 의지를 많이 했기에 공부가 너무 힘들고 원장님의 관리가 숨 막혀서 그만두고 싶다고 투덜거렸다. 아마도 공감과 위로를 바란 것일 테다. 하지만 오빠들은 공감과 위로 대신 너는 아직 간절함이 없다며 나이를 더 먹고 오라고 채찍을 주었다. 오빠들은 시험 난이도보다 원장님의 타이트한 관리보다 더 괴로운 것이 전적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본인의 적성과 맞지 않는, 혹은 기대 이하의 대학생활에 대한 실망감이 더 끔찍했을지도 모르겠다. J는 잘못이 없다. 그저 느끼지 못할 뿐이다. 만족스럽지 않은 대학생활과 그로 인한 자괴감, 혹은 학벌사회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 등을 말이다. 그녀는 결국 시험을 중도 포기했다. 아직 방황의 시간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방황한 시간은 물론 아깝다. 이 공백기를 인생에서 지우고 싶다. 하지만 그 기간이 없었다면 합격과 성공은 조금 더 앞당겨졌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늘 시간이 지나고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들이 있으니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 던 박명수 아저씨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다.



(방황을 마치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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