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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와이룰즈 May 02. 2018

서울 한복판에서의 느린 공간 경험

[공간 즐겨찾기] 앤트러사이트 서교점

왠지 마음놓고 떠들기가 부담스러운 카페가 있습니다. 사실 처음 들렀을 때는 너무 조용하고 1층에는 아무도 없고 위에서 식기 부딪히는 소리만 들리기에 아직 오픈 준비 중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2층으로 올라가다 말고 그냥 그대로 나왔던 적이 있었죠. 원래 조용함이 컨셉이라는 걸 어디서 주워 듣고는 다시 방문을 했습니다.


다시 방문해도 너무 조용합니다. 조심스레 음료를 주문을 합니다. 커피는 7,000원부터 시작합니다. 꽤 비싼 편이죠. ‘분명히 뭔가 있을 거야’ 라는 생각에 일단 핸드드립으로 시켰습니다. 보통 핸드드립이라고 하면 드리퍼(dripper)에 필터지를 깔고 그 위에 갈은 커피 원두를 부은 뒤 정성껏 내리면 끝입니다.



앤트러사이트 서교점 정원



그러나 여기는 조금 다릅니다


일단 물부터 준비해야겠죠. 물도 가스레인지에 모카포트로 직접 끓여서 준비합니다. 원두는 서랍속에 이미 갈린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이 지점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갈지 않은 원두에 속에 갇혀있던 향들은 원두가 깨지면서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갑니다. 그래서 보통 카페에서는 주문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가는 편인데 말이죠. 물어볼걸 그랬네요. 추측건대 원두를 로스팅한지 얼마 되지 않아 향의 용해를 방해하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커피를 가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카페의 정적을 깨버릴 수도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후자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이네요. 이제 커피를 드리퍼에 붓고 핸드드립으로 정성껏 내립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내린 커피는 다시 가스레인지 위에서 데우는 것 같았습니다.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기 위한 방식이겠지만, 어쩌면 약간의 퍼포먼스도 가미되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공간 디자인에

느린 커피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커피 한 잔 나오는데 15분 가량 됩니다. 꽤나 오래 걸립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무대 위의 즐길거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퍼포먼스의 의도는 커피 바의 디자인에서도 드러납니다. 보통 ‘바(bar)’라고 하면 높고 좁은 폭의 기다란 테이블(?)을 연상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의자도 높아지고 오래 앉아 무얼 하기에는 불편합니다. 더군다나 바로 앞에서는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고 있으니 약간의 심리적 불편함도 추가됩니다. 단골 카페가 아닌 이상 바에 앉는다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죠.


1층 커피 바 모습


앤트러사이트는 이런 문제를 바의 디자인에 더욱 힘을 줌으로써 해결합니다. 카페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커다란 커피 바입니다. 옆의 다른 공간으로 혼자 혹은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기도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주인공은 바라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바에서 바리스타의 커피 내리는 행위를 부담없이 관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가 아닌가 합니다. 높이도 보통의 테이블처럼 적당하고 의자도 등받이 의자입니다. 특히 테이블의 넓이가 상당히 넓은데 책을 읽거나 랩탑을 두고 작업하기에도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테이블이 넓은 이유를 생각해보니 고객들이 심리적 불펴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어느 정도의 물리적 거리를 확보한 듯했습니다.



모든 환경이

그렇게 디자인 되었습니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는 건 카페의 공기가 그렇게 디자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느 카페에서 쉼 없이 흘러 나오는 음악 소리는 가만히 있던 공기에 산만한 움직임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이곳은 응당 들려야 하는 소리 외에는 모두 제거했기에 주변의 사소하다고 느꼈던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바리스타가 정성껏 커피를 내리고 있습니다


음악 대신 도시의 백색소음과 새소리, 그리고 커피 내리는 소리, 모카포트에서 물이 끓는 소리,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그 공백을 메웁니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이 아니라 정적을 깨지 않는 선에서 간간이 툭 툭 내던져지는 듯한 생활 소음과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를 배경삼아 듬성 듬성 심어져 있는 나무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내부 공간의 조명도 최소한으로 사용합니다. 햇빛을 메인 조명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느림과 조용함을 즐길 수 있는 경험은 그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서울 망원동 오래된 저택이었던 이곳은 결을 만드는 소리로만 채워집니다. 바람과 바람 사이에 어떤 시간이 지나가는지 긴 창을 통해 볼 수 있고, 커피를 만들어내는 몇몇 소리들만 존재합니다. 기계적 소음을 덜어내고 적당한 빛만 담아놓습니다. 우리는 10년이 지나도 이 공간이 시대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이곳의 색을 유지하길 바랍니다. 시간이 축적된 결과의 산물을 위해 정원을 가꾸고, 한 잔의 커피에 움직임을 더하는 적요한 공간입니다.

- Anthricite Coffee


3층의 풍경



앤트러사이트 서교점에서

발견한 디테일한 다름


앤트러사이트답게 건물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인테리어가 돋보입니다. 앤트러사이트의 인테리어는 브랜드 시그니쳐로써 작용합니다. 오래된 저택이었던만큼 집에서 느낄 수 있는 고요함을 살린 듯합니다. 바닥과 테이블 뿐만 아니라 천장까지도 나무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그 위에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화학적 후가공이 처리되어 있어 보이진 않았습니다. 벽은 시멘트 벽돌의 흔적 그대로 인테리어 요소로 끌어들였습니다.



화장실 문고리



화장실의 손잡이도 나무입니다. 고정되어 있어 돌릴 수 없습니다. 대신에 닫으면 저 하얀색 플라스틱이 쏙 들어갔다 나오면서 무리없이 닫힙니다. 처음보는 문고리 디자인이네요. 생각을 해보면 앤트러사이트 본점인 합정점도 문을 여는 방식이 독특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닫이 문으로, 문이 움직이면 연결되어 있던 물이 담긴 페트병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거든요. 진은 못찍었지만 의자의 골격은 나무지만 앉는 곳은 짚을 엮은 줄로 되어 있습니다.



가치를 온전히 느끼기 위한 팁

친구들끼리 오기 보다는 혼자 혹은 둘이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고요함을 즐기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평일 2시 즈음 방문했기에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 카페의 의도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시간대가 아닌가 합니다. 아니면 오전 시간대도 괜찮겠네요. 시간이 지나면서 비어있는 자리거 채워지면서 웅성웅성대기 시작하더니 결국 여기 저기 대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은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이곳의 가치를 온전히 느끼고 싶으시다면 방문하실 때 꼭 참고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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