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저널리즘 서평 #5 | <블루보틀에 다녀왔습니다>, 양도영 저
제품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은 이제 하나의 정석처럼 여기는 것 같습니다. 무인양품부터 시작해 29cm, 이케아, 에어비앤비, 마켓컬리와 같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뿐만 아니라 위워크, 넷플릭스 등과 같이 소위 잘나간다는 혁신 기업들도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똑부러지게 잘하는 곳들입니다. 물론 커피 업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바로 그 중심에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이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부분이지만, 스타벅스의 혁신은 에스프레소 베이스 커피 시장을 키워내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만든 점, 그리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이끌어 낸 데에 있습니다. 스타벅스 로고의 변화에서 ‘COFFEE’가 사라진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업의 확장을 위해 커피를 파는 장소의 의미를 넘어서려는 의도죠.
블루보틀의 혁신은 커피 농장과의 상생, 그리고 최고의 커피를 제공하겠다는 철학과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템포로 전세계에 스페셜티 커피를 알린 데에 있습니다. 이런 블루보틀의 커피 잔을 받아든 고객들은 '수준 높은 고객'이 되었다는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뉴욕에서 스타벅스 잔을 들고 출근하는 커리어 우먼의 모습을 자신에게 투영하며 설레는 기분을 느끼듯, 그 감성은 다르지만 느림의 미학을 느끼며 최상급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설렘이 블루보틀의 감성이 아닌가 합니다. 블루보틀은 그 감성을 전달하기 위해 로고 디자인, 매장 공간 디자인, 매장의 수, 메뉴 구성, 제품의 품질, 제공 방식 등과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블루보틀의 뉘앙스를 풍기며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커피 마니아는 아니지만 커피를 좋아하고 또 알고 싶어 하는 고객들이 블루보틀을 찾는 것만으로 '수준 높은 고객'이 되었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6쪽)
양도영 저자의 <블루보틀에 다녀왔습니다>는 블루보틀의 창업 배경부터 철학, 그리고 경영의 측면에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블루보틀이 생소한 독자들이 접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성 면에서 빠짐이 없어 보였습니다. 쓸데없이 철학에 대한 이야기만 쭈욱 나열하며 과장된 구성이 아닙니다. 그 균형감이 좋았던 책이었습니다. 블루보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통해 확인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브랜딩은 '고객을 대하는 태도 혹은 뉘앙스'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고객과 브랜드가 서로 만나는 모든 지점에서 일관된 태도 혹은 뉘앙스를 풍겨야 하며, 더 나아가 기업 문화에서도 그 태도가 묻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블루보틀은 이를 가장 잘 구현한 기업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모두 블루보틀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사업에는 분명 운의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시장 니즈 및 사회적 트렌드, 성장할 수 있도록 자본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뒷받침 해주는 VC, 창업자의 역량 및 끈기 등등 복합적인 요소가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맞아 떨어져야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냅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기에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이 산업을 뒤엎은 혁신이 대단한 이유입니다.
특히 눈에 띄었던 부분은 제임스 프리먼의 의사결정입니다. 블루보틀의 철학을 위해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지 않고 디자인을 최고의 디자이너들에게 맡긴다던지 혹은 최고 품질을 제공하고자 하는 철학을 유지하기 위해 수익성을 보장해 주는 판매 루트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등의 의사 결정에서 그의 진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믿음이 강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내용 중에 구글벤처스와 함께 진행한 *스프린트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에 읽었던 구글벤처스의 <스프린트>라는 책에서 블루보틀 이야기가 나와 의외라는 생각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책에는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블루보틀 경험을 온라인에서 구현하는 과정이 스프린트 사례 중 하나로 담겨져 있습니다. 스타트업과 카페라는 키워드가 서로 이렇게 어울릴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죠. 그렇게 보면 띠지에 적힌 '실리콘밸리가 사랑하는 커피'라는 문구만큼 블루보틀을 설명해 주는 것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스프린트: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더 많은 일을 더 빨리 끝낼 방법을 제시하는 기획실행 프로세스.
보이는 것이 전부일 때가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보이는 것이 전부일 때가 있다'고 언급합니다. 언뜻 보면 겉으로 어떻게 보일지만 중요하다고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저자는 책 전반을 통해 그 주장의 전제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했기에 과감하게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결코 시각적 요소만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라기보다 디자인은 가치 혹은 철학을 느끼는 매개체일 뿐이라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말그대로 때로는 보이는 게 다일 때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명쾌한 메시지를 디자인에 녹여낸다는 것은 수많은 고민을 수반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브랜드와 사업 방식에 대한 철학이 확고해야겠죠.
현 카카오 공동대표이자 매거진 <B>를 만드는 JOH&Company의 조수용 대표가 팟캐스트에서 디자인도 기획력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의미의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스칩니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저자의 주장과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P.S
최근에 느림의 미학을 제품과 공간 디자인의 측면에서 제대로 구현했다고 느낀 곳이 있습니다. 바로 앤트러사이트 서교점입니다. 가보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혹시 그때 사람들이 많았다면 덜 분비는 시간대에 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가서 제가 느꼈던 생각과 느낌을 담은 글을 통해 그 이유를 담았습니다. >> 서울 한복판에서의 느린 공간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