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Things

약정 연애 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계약 연장 하시겠습니까?

by 진인사

현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신처럼 여기는 대상이 하나쯤 있다.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불안해할 정도로 집착을 하기도 한다. 나도 그에게 그런 대상이었다.


2020년 8월 우리는 약정 연애를 시작했다. 나를 선택할 때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우리는 2년간의 연애를 하기로 했고 그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롭다면서 나를 무척 좋아해 줬다. 우리는 단 하루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을 정도로 언제 어디서나 함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 날 아껴주던 그의 마음은 점차 변해갔다. 잦은 실수로 크고 작은 상처를 받은 이후로 보물처럼 나를 다루던 부드러웠던 손길은 점차 거칠어졌다. 그러다가 한 번은 심각한 사고로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다행히 완전히 회복하고 그에게 돌아갔을 때 그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잠시 나를 아껴주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났고 계약기간은 끝이 났지만 우리는 조금 더 같이 있었다. 사소한 불평불만이 있었지만 그 후로도 계약 연장 없이 1년을 더 함께 지냈다. 몇 달 전 그의 실수로 나는 바닥을 나뒹굴었고 여기저기 깨지고 상처가 생겼다. 그는 예전처럼 나를 치료해 주지 않았다. 그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새로운 상대를 찾았고 결국 우리는 3년 간의 연애를 끝으로 이별을 했다. 그가 다른 상대를 만나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물건에 감정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을지 상상하며 스마트폰을 화자로 스토리를 만들어 보았다.


2020년 8월부터 2023년 8월까지 갤럭시 노트 20 울트라를 시용했다. 3년간 별 탈 없이 언제나 내 곁을 지켜줬다.

경쾌한 음악으로 아침을 깨우고 운동도 함께 했다. 재밌는 영상과 신나는 음악으로 즐거움을 주었고, 어딜 가는지 무얼 먹는지 많은 추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녀석이 내게 해준 모든 것에 감사하고, 더 소중히 아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갤럭시 Z플립 5로 환승 연애를 시작했다.





나를 거쳐간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느껴진다. 작고 사소한 물건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서 가치의 크기가 달라진다.


동안 수많은 휴대폰이 내 손을 거쳐갔지만 이 아이는 가장 긴 시간 동안 함께했기에 더 애착이 가는 것 같다.


내가 가진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풀어가 보려고 한다. 어떤 이야기들이 그려질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기대를 살짝 가져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쉴 새 없이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