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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Things

쓸모의 부재

의미의 존재

by 진인사

- 이거 가져갈 거야? 말 거야?

- 뭐?

- 카메라 말이야. 가져갈 거냐고?

- 글세? 혹시 모르니까 가져가 보자.

- 찍지도 않으면서... 그냥 두고 가지...


여행 준비를 할 때면 정신없고 바쁜 와중에도 언제나 이런 대화가 오고 간다.

나는 여행을 다닐 때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 찰나의 시간 때문에 좋은 사진을 놓치는 경우가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내 사진의 90%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이다.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많이 좋아졌고 휴대성 측면에서도 스마트폰이 월등히 뛰어나다. 내 스마트폰은 전원버튼 두 번 누르기로 카메라 앱을 바로 실행시킬 수 있어서 찰나의 시간을 담기에 오히려 스마트폰이 더 적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여행을 갈 때 카메라를 가져가려고 하는지 문득 궁금증이 생겨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에게 여행의 시작과 끝은 사진이었다. 오래전 아버지의 필름카메라를 쓰던 시절부터 그랬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카메라와 필름을 챙기는 설렘이 좋았다. 수학여행이라도 가는 날이면 나는 아버지의 하프 필름 자동카메라를 가져다 신나게 찍어댔다. 35장 필름이면 70장을 찍을 수 있었으니 마음까지 넉넉했다. 필름을 현상하고 사진으로 인화한 뒤 친구들과 돌려보며 추억을 곱씹는 재미를 거쳐야 여행이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언제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십수 년이 지난 뒤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그런 기억의 파편들의 응집시키는 힘이 있다. 사진 한 장은 잠시나마 그때 시절로 되돌아가는 타임머신이 된다. 인화된 사진들을 앨범에 한 장씩 고이 넣어두었다가 잊힐만하면 한 번씩 꺼내서 추억을 들춰보는 재미가 있었다.


지금은 구글 포토의 클라우드 사진 저장 서비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사진 앨범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쩍~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페이지 속에 빛바랜 사진들을 꺼내보는 재미는 사라졌다.







오늘의 주인공은 SONY 알파 ZV-E10라는 미러리스 카메라다. 2021년에 구매한 제품으로 사용한 지는 거의 2년이 다되어간다. 이 카메라 이전에 사용하던 필름 카메라와 DSLR 카메라들도 잘 보관되어 있는데 언젠가 소개를 할 날이 있을 거라 믿는다.


이 친구는 발매 당시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에게 많은 관심과 인기를 얻은 것으로 기억한다. 마이크 수음부에 털북숭이처럼 생긴 윈드스크린이 있어 야외에서도 깨끗한 음성을 담을 수 있고, 틸트 액정을 통해서 셀카 촬영도 가능해서 브이로그나 1인 크리에이터들에게 활용도가 높다고 소개되었었다.



솔직히 사용을 많이 하지 못해서 제 기능을 다 발휘하지 못한 신세가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애착이 많이 가는 물건 중에 하나이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바로 올리지 못하고 PC나 스마트폰으로 사진 파일을 전송하여 사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서 잘 사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스마트폰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하지만 실제 PC에 파일을 옮겨 놓고 비교하면 여전히 D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의 사진 퀄리티와 차이가 있다. 전문 사진작가들이 여전히 DSLR을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 친구를 구매할 때는 DSLR 카메라의 무거운 무게를 벗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사진을 찍겠다는 각오로 번들인 16-50mm / 3.5-5.6F 줌렌즈 외에도 35mm / 1.8F 단렌즈도 같이 구매했었다. 렌즈를 교환하는 것이 귀찮고 줌이 안된다는 이유로 외면받아 한 번도 제 역할을 해보지 못한 채 보관함 구석에 나뒹굴고 있는 렌즈를 꺼냈봤다.


처음엔 잘 사용하려고 구매했지만 막상 활용되지 못하는 물건들이 많이 있다. 그 물건들의 장점과 특징을 잘 찾아서 각각의 쓸모를 찾아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조만간 여행을 계획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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