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01
2023년 2월,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났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었다.
그렇게 바랐던 여행이었는데 끝나고 돌아보니 허무하기도 하다.
인생이 크게 변화하길 기대했지만 달라진 것이라곤 더 고집스러운 사람이 됐다는 것?
그래도 최근 나에게 가장 큰 사건이었기에 가까운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고자 한다.
나는 프랑스 파리로 입국을 하여 TGV를 타고 '생장 피에드 포트(이하 생장)'까지 이동했다.
4시간을 이동해 중간 '바욘'이라는 마을에서 기차를 갈아탔다.
바욘에서 시간을 보낼 계획은 없었기 때문에 딱히 기억나는 것은 없다.
다만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마을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생장에 도착한 첫인상은 매우 한적한 느낌이었다.
아참, 나는 비수기에 순례길을 걷는 몇 안 되는 순례자였다.
기차에서도 나와 같은 모습의 사람이 없어서 끝까지 혼자일까 봐 걱정했다.
생장에 도착하면 가장 처음으로 순례자 사무실에 가서 여권을 만들어야 한다.
순례자 신분으로 알베르게 등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여권을 '크레덴시알'이라고 부른다.
유럽은 낮잠 시간(시에스타) 문화가 있다.
오후 2시~5시 정도는 햇빛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밖에서 일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예전부터 전해온 관습이 자리잡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순례자 사무실도 오후 2시에 칼같이 열었는데 나를 맞이해 준 분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어떻게든 이해시키려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위에 담긴 안내자분의 눈빛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기부로 판매하는 조개를 가방에 달고 나의 첫 방명록을 기록했다.
'걱정이 기대로 바뀌는 순간'
역시 영상으로 기록해두길 잘했다.
아침부터 긴긴 이동으로 굶주렸던 나는 음식을 찾아다녔다.
식당이 열긴 했지만 역시 시에스타라며 조리를 해주진 않았다.
햄, 치즈, 파테 등 차가운 접시만 있다기에 가방에 있던 바게트로 배를 달랬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당장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은 다음 더 큰 기회를 잡기 위한 시간을 번 것이라고
생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는 '55번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그런데 16인실의 도미토리에 아무도 없었다. 비수기가 정말 이 정도라고?
주인아주머니는 다음 기차시간에 사람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나 혼자 자게 되었다.
그렇게 기대와 걱정을 안고 첫째 날을 보냈다.
당시에는 그저 내일은 사람들을 만나기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