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간 퇴준생 May 06. 2023

7개월 기른 머리로 스페인 바버샵을 들어갔다

머리는 다시 자라니까..

눈 덮힌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의 중간지점 '부르고스'에 가는 날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눈이 오네요.

드디어 겨울 산티아고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납니다.

비니, 바람막이, 경량패딩 등 가지고 온 온갖 옷들을 껴입고 우비까지 뒤집어썼습니다.

스패츠까지 챙겨 온 친구들도 있네요.


흑백 세상이 됨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욕이 난무했습니다.

"너 미친 거 같아"

"너도"

"맞아 우리 모두 미쳤지~"


생각보다 많은 적설량에 논과 숲이 흑백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겨울에 까미노를 걷는 소수의 미친 사람들만 볼 수 있는 특권이겠죠.


부르고스 도착

작은 언덕을 지나자 도로가 나왔습니다.

드디어 카페를 갈 수 있군요.

모두 같은 마음이었는지 한 곳에서 만났습니다.

고단함을 잊기 위해 스페인 전통주 '리꼬르'를 마시는 사람도 보입니다.


오! 저기 썸을 타는 청춘들도 보이네요.

그 좁은 알베르게 2층 침대에 같이 누워있던데

너네 썸 맞지?


오후 1시, 부르고스에 도착했습니다.

부르고스는 프랑스길의 대도시중 하나입니다.

많은 순례자들이 쉬어가거나 재정비를 하는 곳이죠.

저는 2주 정도 순례자로 지냈는데 머리가 길어서 안 마르는 것이 불편했어요.

안 그래도 정리하고 싶었는데 스페인에 온 김에 바버샵을 경험하기로 했습니다.


The pitu Barbershop

구글 지도를 보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했습니다.

긴장한 티가 역력했지만 아닌 척 소파에서 기다렸어요.


꽁지머리가 힙한 흑형이 제 몸에 미용 가운을 덮었습니다.

7개월 동안 길렀던 머리를 이분께 맡겨도 되나 싶긴 했습니다.

첫 터치부터 바리깡을 들이밀었거든요.

다급하게 한국 스타일 사진들을 보여줬지만

참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쥐-드래곤

중간에 쥐-드래곤도 되어보고 메이플스토리 호섭이 머리도 됐습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20분을 더 자르더군요.

처음 다루는 동양인 모질에 당황해 보였지만

이분께 다양한 경험을 선사해 주고자 기꺼이 모발을 희생했습니다.


젤 한통 다 쓰고!

면도와 눈썹정리까지 드디어 마무리되었습니다.

거울 속에는 내일 당장 복귀를 앞둔 말년병장이 있었어요.

상상했던 '스페인 강한 남자'와는 많이 달랐지만 시원했습니다.

아니 사실 추웠어요.

괜찮아요. 손톱처럼, 머리카락도 언젠가 다시 자라니까요.


핑크솔트 스테이크

저의 짧은 머리는 한국인 친구들에게 가장 먼저 공개되었습니다.

제가 괜찮다는데 위로가 필요하다며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습니다.


여러 가지로 시원한 하루였네요.

- 머리는 한국에서 자르자.


https://youtu.be/94GjRLxQ3HQ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 아저씨가 기억하는 1970년대 한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