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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기른 머리로 스페인 바버샵을 들어갔다

머리는 다시 자라니까..

by 주간 퇴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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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힌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의 중간지점 '부르고스'에 가는 날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눈이 오네요.

드디어 겨울 산티아고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납니다.

비니, 바람막이, 경량패딩 등 가지고 온 온갖 옷들을 껴입고 우비까지 뒤집어썼습니다.

스패츠까지 챙겨 온 친구들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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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세상이 됨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욕이 난무했습니다.

"너 미친 거 같아"

"너도"

"맞아 우리 모두 미쳤지~"


생각보다 많은 적설량에 논과 숲이 흑백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겨울에 까미노를 걷는 소수의 미친 사람들만 볼 수 있는 특권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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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스 도착

작은 언덕을 지나자 도로가 나왔습니다.

드디어 카페를 갈 수 있군요.

모두 같은 마음이었는지 한 곳에서 만났습니다.

고단함을 잊기 위해 스페인 전통주 '리꼬르'를 마시는 사람도 보입니다.


오! 저기 썸을 타는 청춘들도 보이네요.

그 좁은 알베르게 2층 침대에 같이 누워있던데

너네 썸 맞지?


오후 1시, 부르고스에 도착했습니다.

부르고스는 프랑스길의 대도시중 하나입니다.

많은 순례자들이 쉬어가거나 재정비를 하는 곳이죠.

저는 2주 정도 순례자로 지냈는데 머리가 길어서 안 마르는 것이 불편했어요.

안 그래도 정리하고 싶었는데 스페인에 온 김에 바버샵을 경험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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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itu Barbershop

구글 지도를 보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했습니다.

긴장한 티가 역력했지만 아닌 척 소파에서 기다렸어요.


꽁지머리가 힙한 흑형이 제 몸에 미용 가운을 덮었습니다.

7개월 동안 길렀던 머리를 이분께 맡겨도 되나 싶긴 했습니다.

첫 터치부터 바리깡을 들이밀었거든요.

다급하게 한국 스타일 사진들을 보여줬지만

참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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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드래곤

중간에 쥐-드래곤도 되어보고 메이플스토리 호섭이 머리도 됐습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20분을 더 자르더군요.

처음 다루는 동양인 모질에 당황해 보였지만

이분께 다양한 경험을 선사해 주고자 기꺼이 모발을 희생했습니다.


9-14.jpg 젤 한통 다 쓰고!

면도와 눈썹정리까지 드디어 마무리되었습니다.

거울 속에는 내일 당장 복귀를 앞둔 말년병장이 있었어요.

상상했던 '스페인 강한 남자'와는 많이 달랐지만 시원했습니다.

아니 사실 추웠어요.

괜찮아요. 손톱처럼, 머리카락도 언젠가 다시 자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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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솔트 스테이크

저의 짧은 머리는 한국인 친구들에게 가장 먼저 공개되었습니다.

제가 괜찮다는데 위로가 필요하다며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습니다.


여러 가지로 시원한 하루였네요.

- 머리는 한국에서 자르자.


https://youtu.be/94GjRLxQ3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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