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연인끼리 쓰는 말인데ㅎㅎ
전날에 같은 알베르게에서 지낸 10명의 순레자들과 함께 시작하는 날입니다.
아침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한 명을 떠나보내면서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합류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미 앞서 일주일을 함께 걸었다는 이 사람들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나도 이 무리의 일원이 되고 싶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2주, 이들과 끝까지 함께 할 것 같은 예상이 느껴졌습니다.
레온은 앞으로 남은 순례길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술을 시키면 기본안주를 주는 것도 좋고 도시면서도 친절한 사람들이 좋았습니다.
일정이 맞으신다면 2박을 해도 괜찮겠네요.
오늘 걷는 길 위에서 상점을 만날 확률이 낮기 때문에 큰 마트가 나오면 일단 들어갑니다.
마침 LiDL이라는 마트가 보이네요.
'리들'은 독일 브랜드인데 유럽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합니다.
몇 년만 지나면 한국도 점령당할 거라는 농담과 함께 길에서 눈을 만났습니다.
유럽 아저씨도, 아시아 청년도 눈을 만나자 싸우기 시작했습니다.(눈싸움)
다들 얼마나 순수해지는지 이 표정 좀 보세요.
다행히 눈 속에 돌을 넣은 사람은 없네요.
이들과 처음으로 카페에 왔습니다.
사람이 많다 보니 한 명이 조사해서 한 번에 주문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주문받은 사람이 계산하는 이 그룹의 룰아닌 룰이 암묵적으로 보였습니다.
몇 번 얻어먹으니 당연히 나도 사야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로 사겠다며 주문을 중복으로 넣는 일도 있었답니다.
카페에서 만난 '닐'은 벨기에 사람입니다.
한국인을 만나자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대기 시작합니다.
진지한 와중에도 항상 유머가 담겨 있고, 표정으로 연기하는 모습이 좋다고 하더군요.
특히 기생충을 좋아한다고 해서 제가 만든 양 신났습니다.
우리 무리는 '닐'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선두에 있던 닐은 어느 순간 사라졌고 뒤에 남은 우리는 길을 잃었습니다.
20km면 도착하는 짧은 일정이라 아침에 좋아했는데
30km 넘게 걷고 있는 우리는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아무도 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증발한 걸까요?
힘든 와중에 말을 거는 에리카, 한국어를 안다며 귀를 달랍니다.
그녀 입에서 나온 말은 "죽을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중학생 시절 펜팔로 배웠다는데 오로지 기억나는 말이랍니다.
우리는 걸으며 언어를 교환했습니다.
"일 미오 노메 에 한" <-> "내 이름은 에리카"
이 정도면 이탈리아에서 취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음, 무슨 일을 하는 곳에 가는 걸까요?
오늘 걸으면서 최종 목적지까지 300km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왜 이렇게 조금 남았지?' 생각했지만 저는 버스를 탔거든요^^
부르고스부터 레온 구간도 모두 걸은 친구들이 말했습니다.
"버스 굿 초이스!"
카페에 들르면 꼭 담배를 펴야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우리는 항상 야외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가방에서 하나둘 먹거리가 나오네요.
바게트, 하몽, 치즈, 오렌지, 요거트, 참치??
다양하게도 메고 걷고 있었네요.
음식을 나눠먹으면 정말 전우라도 된 느낌입니다.
꽤 괜찮은 뷔페를 즐기고 다시 가방끈을 조입니다.
증발해 버린 닐을 더 이상 탓할 수 없는 우리는 구글맵을 보며 직진만을 합니다.
구글맵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순례길 선배)은 아직도 화살표를 찾아 두리번거리십니다.
그리고 노여움에 외칩니다.
"길을 잃으면 직진만이 답이야!"
그렇다고 물 찬 밭을 건널 순 없잖아요...
우여곡절을 지나 '산마르틴 델 까미노' 알베르게에 도착했습니다.
하루종일 힘든 길로 돌아왔다며 투덜거리다가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앞선 날에서 헤맨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리고 앞으로 헤매지 않기 위해서 두 번 세 번 확인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를 보냈고 남은 저녁을 즐겁게 지내는 게 오늘의 숙제입니다.
피자 시켜놨대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그라시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