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의 힘
오늘 집으로 돌아가는 '유진'이 조식을 쐈습니다.
유진은 '이샤'의 아버지인데 부자끼리 순례길을 걷는다니
다른 세대가 긴 여정을 함께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오히려 돈독해진 둘을 보며 버킷리스트에 한 줄을 추가해 봅니다.
저는 이샤와 가장 많이 걸었는데 나누었던 대화는
"네덜란드에서 마리화나가 합법인 이유"
"돈이 많은 할머니랑 데이트할 것인가?"
"선사시대의 두려움 유전자가 현대에 통하지 않는 이유" 등입니다.
영어로 이렇게 깊은 대화를 나눠본 것이 처음이네요.
제가 영어를 잘하냐고요? 아니요.
이샤가 영어를 잘 들어줍니다.
제가 완벽하지 않은 문장을 구사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바로 고쳐줍니다.
대화를 하는 데는 언어 실력보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필요했고
무엇보다 듣는 것이 중요한 요소임을 몸소 느낍니다.
프랑스 커플 '벤&베니'가 합류했습니다.
남자친구 벤의 버킷리스트를 함께 이루기 위해 이 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근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벤의 배낭은 60리터인 반면 베니는 간이 배낭 10리터 정도만 메고 다녔습니다.
여자친구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함께하고 있다고 하는데
남자친구의 사랑이 대단하네요.
이것도 계약 커플인가요?
우리 그룹에는 또 다른 부자가 있습니다.
덴마크 아버지 '얀'과 '아스카'입니다.
풀네임은 Jørn Wiesøe, Asgar Wiesøe인데 아무리 발음해도
틀렸다고 하네요ㅋㅋㅋ
아무리 언어를 배워도 억양의 한계는 있어 보입니다.
덴마크어는 특히 쓸 일이 없겠죠.
길에서 휴식하고 있는데 에리카와 이샤가 요가 동작을 하고 있습니다.
다리 사이에 두 손을 끼고 엉덩이를 짚는 모양새였는데 그대로 씨름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전자로 참가한 한국인(나)은 이탈리아(에리카)와 네덜란드(이샤)를 차례로 무너뜨렸습니다.
마 이게 씨름의 민족이다.
폰세바돈 '까사 첼로' 알베르게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맥주 파티를 벌이고 있네요.
웰컴 드링크를 마시며 눌러앉았는데 다들 씻지도 않고 12시까지 달렸어요.
맥주 개수가 많을수록 오늘의 걸음이 힘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