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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퇴준생 May 20. 2023

"걸으면서 뭘 하고 있나요?", "Fart"

공감의 미소

철의 십자가에 놓고 온 소망

폰세바돈에서 폰페라다로 가는 길에 '철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크리스천이 많은 유럽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돌에 자신의 소망이나 건강 등

원하는 것을 적고 철의 십자가에 놓으며 기억하고 믿음을 가지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당시 빌었던 소망이 기억나네요.

가족의 안녕과 개인적인 소망을 남기고 왔습니다.

아직 거기 있겠지?


어우 숨차

오늘의 코스는 거리가 길지는 않지만 고도가 높은 산을 만났습니다.

아직 산등성이에는 눈이 쌓여 있네요. (당시 2월 말)

차도로 돌아가자는 친구들의 말에 고집을 부리며 홀로 산 길로 들어섰습니다.

신발은 젖어 얼고, 물은 떨어져 가는데 구멍가게 하나 없었어요.

Whatsapp을 보니 누군가 1km 거리의 카페가 열었다는 정보를 남겨놨네요.

주린 배를 붙잡고 곧장 달렸습니다.


스테이크만 있는 스테이크 샌드위치

이미 도착해 앉아 있는 덴마크 부자.

다들 배고프다면서 먹을 것이 있는지 카운터로 따라옵니다.

이들을 만나고 함께 걸은 지 5일 차, 그동안 수많은 커피와 빵 등을 얻어먹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순례자 패밀리'에게 돈 쓰는 것이 너무 싸다고 합니다.

가격이 싸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도움에 비해서 돈을 쓰는 것이

가치가 크지 않다는 말이었어요.

더치쪽 사람들이 더치페이를 안 하네요.


저도 기분 좋게 얻어먹고 이번엔 기분 좋게 사기로 해서 다들 스테이크 샌드위치로 통일했습니다.

70,000원을 썼지만 정말 싸게 느껴지네요.

저는 이들 덕분에 유튜브로 수익을 만들고 있거든요.

하루에 1달러 정도..?


이탈리아 셰프의 까르보나라

오늘의 숙소는 기부로 운영되는 성당 알베르게입니다.

이곳에서 진짜 까르보나라를 맛보았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셰프로 일하고 있는 마우리시오가 만들었거든요.

요리사의 지시에 따라 각각 토마토를 자르고, 치즈를 갈고, 빵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인 설거지를 했어요.


모두 13명의 순례자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에리카의 생일을 맞이해 나라별 노래를 부르는데만 10분이 걸리네요.

순례자 패밀리가 되어 집 밥을 먹는 순간입니다.


넓은 화장실

밥을 먹고 심심해진 어린 친구들은 제 노트북을 꺼내달라고 합니다.

넓은 화장실에 하나, 둘 의자를 가지고 가더니 불을 꺼버리네요.

모두가 좋아하는 넷플릭스의 자막은 영어로 바꾸고 재생한 순간!

관리인이 들어오셔서 이 어린양들을 해체시킵니다.

그렇게 화장실 영화관은 5분만에 폐관했습니다.


라면 국물 리액션

출출한 배를 달래줄 '라면 스틱'을 꺼냈습니다.

한국인들이 마시는 tea가 궁금한 북유럽인들이 방문했습니다.

"두 유 라잌 스파이시?"에서 은근 외국인들의 리액션을 기대하는 한국인의 눈빛이 느껴집니다.

첫 번째 도전자 이샤는 "이건 뜨거운 거지 매운 게 아니다"며 빠져나갔고

두 번째 도전자 아스카는 "이거 안 맵네~"라며 한국인의 맵부심을 살짝 눌러줍니다.

너 한 번 한국 와라, 불닭 먹자.


No drug

이샤는 네덜란드인입니다.

대마초가 합법인 나라에서 살고 있죠.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분을 높여주는 약, 낮춰주는 약이 있고 대부분 육체적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성분이 고통을 줄여주고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네요.

그러면서도 합법적인 테두리를 넘어선 생산, 유통 그리고 오남용은 문제라고 하더군요.

올바른 정보와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넷플릭스에 '마음을 바꾸는 방법'을 추천해 줬습니다.


꼈어?

하루에 8시간 정도를 걷다 보면 지루한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함께 걸으며 친해지기 쉽죠.

에리카에게 물었습니다. "걸으면서 뭘 하고 있나요?"

"I fart a lot!"

fart라는 단어를 몰라서 찾아보고 공감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영어로 '방귀를 끼다'라는 뜻입니다.


가식 없는 그녀의 말에 잠시 거리 두기를 시전 합니다.

뒤에서 듣고 있던 이샤와 아스카가 곧장 흩어지네요.


200km 깨졌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194km만 남았습니다.

200km가 깨지니 정말 끝이 다가오는구나 생각이 듭니다.

즉 옆사람들과 각자의 길로 들어설 날이 온다는 뜻이죠.

이때부터 시간을 후회 없이 쓰기로 했습니다.

개인시간보다는 조금 더 이들과 함께하고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자고 말이죠.

가지고 온 노트북은 영상 저장 공간으로 쓰일 뿐입니다.

겨울 까미노는 짐이 많지만 사람이 적습니다.

매일 같이 길을 걷고 먹고 자고 뀌며 사람들과 가까워지며 매력을 느낄 겁니다.


2층 침대 당첨

오늘도 2층 침대행이네요.

내일은 혼자 빨리 걸어볼게요..


https://youtu.be/p0Wjlzht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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