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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퇴준생 Jun 21. 2023

단순해지는 만큼 단단해지는 걸음

산티아고 순례길 (갈라시아 지방)

갈라시아 지방의 첫 번째 마을 O Cebreiro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서부터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그 이유는 100km만 걸어도 인증서를 주기 때문에 속성 순례자들이 모이는 지방입니다. 


조식은 역시 질리도록 먹은 바게트에 버터, 딸기잼 그리고 오렌지까지 업드레이드 됐네요. 아직은 아침 온도가 낮아서 버터가 얼어있는데 어떻게 빵에 슥슥 바르는지 유럽인 짬차이 무시할 수 없네요.


'에리카'와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그녀는 저와 동갑입니다. 역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기 전 생각을 정리하러 순례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겨울 까미노기 때문에 홀로 외로이 걷는 시간이 많을 것을 예상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소수의 사람들을 만나 그룹을 이루고 가족같이 다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하네요. 그중 제가 제일 좋대요. 제가 고프로를 녹화하고 있었거든요.


겨울 까미노를 걸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여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자게 되는데 그 향기를 감당하기 힘들 거거든요.


항상 숙소에 가장 먼저 도착해 있는 사람은 덴마크 부자 에스카&얀입니다. 알베르게 침대에 가방을 던져놓고 덴마크인은 "건배", 한국인은 "을 스콜"을 외칩니다.


오늘의 저녁 담당은 프랑스 커플입니다. 음식과 와인에 진심인 프랑스인들의 요리에 다들 기대하고 있는데요, 호주에서 주방보조를 했던 경험을 살려 양파 썰기를 도왔습니다. 좁은 도마, 무딘 칼이지만 꽤나 그럴듯한 팀워크를 보여주었습니다. 

프랑스식 리조또를 만드는 방법은 쌀에 올리브 오일과 닭고기 국물을 자작하게 넣으며 끓여줍니다. 찐덕한 물성이 되면 촙촙한 양파와 그린빈을 넣고 약불에서 30분간 저어줍니다. 


벤이 와인을 음미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마시기 30분 전 와인의 뚜껑을 열어 놓는다. 큰 와인잔의 1/3만 채우고 식탁에 돌려가며 공기를 넣어준다. 입술을 내밀고 소량을 공기와 함께 빨아들인 후 이렇게 말한다. "음~~~ 쓰군!"


우리가 이곳에서 하는 걱정은 무얼 먹지? 얼마나 걷지? 어디서 잘까? 정도입니다. 단순해지는 만큼 단단해지는 하루가 또 지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v1Ivkuzmv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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