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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퇴준생 Jun 24. 2023

순례길 OO에서 베드버그를 물렸다.

새로운 리더의 시대

갈라시아 지방부터 출발하는 순례자들이 많이 보인다. 유럽의 학생들은 이곳으로 체험학습을 오는 듯했다. 주말을 활용해 2~3개의 마을 정도만 찍고 단체버스에 올라타더라. 제대로 된 등산 가방도 커다란 침낭이 튀어나와 보였지만 그 청춘이 부러웠다.


오늘은 한국에서 온 진구님과 함께 걸었다. 한국에서 지게차 운전을 하며 물류 업무를 했었는데,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순례길을 올랐다고 한다. 영어권 친구들이 물어보면 I don't know만 대답하시던데 지금쯤 찾았으려나. 순례길에서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과정'속에 있다. 모든 결과도 시간 뒤에 흘러간다. 그러니 일희일비하지 말자.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1층 침대에 위생커버부터 씌운다. 빠르게 샤워를 하고 빨래거리와 함께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면 그만한 행복이 없다. 꼭 이 순서를 따를 필요는 없다. 나도 어느새 까미노 꼰대가 되었다. 오늘은 메기남이 순례길에 합류했다. 나의 동네친구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5일을 남긴 나는 끝을 향하고 있고 이 친구는 이제 시작이다. 나는 아쉬움을 느끼는 반면 이 친구는 설렘을 보이고 있었다. 어떤 것이든 관점에 따라 느끼는 것이 다른 것이다. 


얼굴이 동그랗게 모기 물린 것 같이 부었다. 목, 다리, 팔에도 같은 증상이 있다. 가렵다. 알베르게에 있는 담요를 썼는데 맨 살이 노출된 부위를 베드버그가 물고 간 것으로 보인다. 여러 사람이 썼을 것이고 위생 관리가 철저하지 않았음을 간과했다. 다행히 일행이 연고가 있어서 버텨보기로 했다. 개인 침구를 꼭 챙겨가시길.


친구는 처음으로 순례길을 걷는다는 사실에 상기되었나 보다. 그래서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콧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즐길 준비가 되어 보였다.


오늘은, 아니 오늘도 점심은 바게트에 햄, 치즈다. 올리브가 박힌 햄으로 변화를 주고자 했지만 역시나 똑같다. 그래도 지금은 그립다.


드디어 최종 목적지까지 100km도 남지 않았다. 3주 동안 어떻게 걸어왔는지 시간이 참 쏜 살 같다. 오로지 나의 작은 걸음들이 모여서 큰 목표에 다다름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스스로 대견하다.


사실상 마지막 대도시(?)라고 할 수 있는 포르토마린에 도착했다. 이곳 스페인에서 맥주를 시킨다면 꼭 '그란데'로 시키자. 사이즈 차이도 있지만 역전할맥처럼 얼음잔에 나와 내 발바닥에게 그나마 안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조금 더 움직여 곤자르에 도착했다. 하지만 주변에 상권이 없어서 콜택시를 이용해 다시 포르토마린을 다녀왔다. 캔맥주를 사 온 나는 그날 새로운 리더가 되었다. 이곳에서 리더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iyQ9cS5c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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