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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설마 T야?!

참 청춘이었다.

by 주간 퇴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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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분명히 최종 목적지까지 100km가 남지 않았는데 숫자가 적히지 않은 표지석을 만났습니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최근에 생긴 지름길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마지막까지 정통 순례자가 된다는 마음으로, 지름길을 택했습니다. 인생에도 short-cut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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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영어 선생님 '이샤'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마약 이야기, 선사시대로부터 조상들이 남겨준 유전자, 게임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했습니다. 물론 저는 영어실력이 좋지 않지만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이샤 덕분에 많은 표현을 배웠습니다. 이샤가 물었습니다. "친구가 합류하니 뭐가 좋아?" 저는 "마지막 호텔비를 나눠낼 수 있어서 좋아."라고 답했네요. 나 설마 T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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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류한 친구도 하루 만에 적응했나 봅니다. 걷다 보니 먼저 첫 번째로 나온 카페에 자리 잡고 있네요. 우리는 또 또 바게트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점심에 길에서 먹을 바게트를 포장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지 4개월이 지났는데 한 번도 안 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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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km 넘게 두 발로 걸으니 신발에 펑크가 났습니다.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하는 발에게 미안해서 완주하면 새신을 사도록 하겠습니다. 순례길을 걸으면 여러 명이 함께 자는 알베르게에서 묵게 되는데 하루에 1~2만 원 정도여서 숙박비를 많이 아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은 보상심리가 발생하죠. 이미 3일 뒤의 산티아고데 콤포스텔라 호텔을 전화로 예약했습니다. 도착만 하면 맛있는 음식도 수영장도 마사지도 받을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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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의 운 수치는 정말 높았네요. 길에서 만난 자판기에서 음료수 하나를 뽑았는데 두 개가 나왔습니다. 유럽 자판기 안에는 코일(?)이 돌아가는 형식으로 물건이 나오는데 자주 두 개씩 나오곤 합니다. 이곳의 위치는 'cafe campanill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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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헤매고 있으면 어김없이 노란 화살표를 만나게 됩니다. 반갑게도 한글로 '힘내세요:)'가 쓰여있네요. 익명의 응원자에게 감사를 생각하며 또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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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도착지 '멜리데'에 입성했습니다. 이제 도착하면 무조건 맥주부터 주문합니다. 우리는 어느새 11명의 그룹이 되어서 긴 12인용 테이블 하나를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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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주문한 대구 튀김이 나왔습니다. 옆에 않아있던 에리카가 동영상 하나만 찍어달라고 하더군요. 그녀의 요청사항은 '아파추로까쏘'를 외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거리낌 없이 소리치자 모두가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대충 이탈리아의 익살스러운 욕설이었는데 저도 짐작은 하고 있었어요. 모두가 즐거워 보여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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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온 지 4개월이 지난 현재, 에리카가 당시 찍었던 필름을 현상했다면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노이즈가 가득 낀 사진에 감성이 잔뜩 묻어있더라고요. '참 청춘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이 사진을 훗날에 함께 보며 추억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5RW9FViev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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