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법을
우리는 여기 이곳 지구에서
시간 여행을 하면서 배워가지 않는가 한다.
눈물이 있는가 하면, 기쁨이 있고
이별이 있는가 하면, 기쁨의 재회가 있고
배고픈 날들이 있는가 하면, 부유한 날들이 있고
아픔이 있는가 하면, 상처를 회복하는 시간이 있고
불행이 있는가 하면, 행복한 시간이 있는 그런 곳.
이곳 지구에서
우리는 희로애락의 춤을 춘다.
질서에서 혼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시간이 되면 혼돈에서 질서의 세계로 돌아온다.
삶은 그렇게 선순환을 이루면서 돌고 돈다.
우리가 만약 미래를 알 수 있다면
모든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중계방송이다.
거기에는 모험도 없고,
스릴도 없으며,
즐거움 또한 상실한다.
이미 결과를 다 아는데 무슨 의미를 발견하고
무슨 도전을 할 것이며, 어떤 노력을 기울이겠는가?
그 삶 자체에는 재미를 상실한 시간 낭비만 존재한다.
로봇처럼 프로그램된 인형의 삶만 존재한다.
자유 의지는 존재하지 않고
마치 인형처럼 조종된 역할만 충실히 수행하는
마마보이의 삶으로 전락한다.
중계방송은 재미도 스릴도 없다.
이미 다 결정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방송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경우를 보라.
한 골, 한 점수 차이로 희비가 엇갈리며
박수를 치고, 모르는 옆 사람하고도 친구가 된다.
온 국민이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축제를 한다.
인생은 생방송이다.
우리는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축복이다.
그러하기에 도전을 하고
노력을 기울이며
미래에 꿈과 희망을 품는다.
내 의지를 발휘하여
혼돈의 미래를 향해 항해할 수 있다.
이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법이다.
자신을 사랑하기에
아낌없이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사하고 싶기에
알 수 없는 어둠의 터널을 뚫고
아픔에서 회복으로
낮음에서 더 높음으로
가난에서 부유함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불행에서 행복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그의 도전과 노력은
자신에게 아낌없는 선물을 선사한다.
그것이 크든 작든
그는 없음에서 있음을 발견하고
하지 않음에서 함을 배우며
불행은 행복을 쟁취함으로 넘어설 수 있다는
삶이 주는 증명 속에서 그는 희열을 맛본다.
가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자유 의지의 선택들이
하나 둘 그의 의식적 시선으로 들어온다.
불행이 없었다면 그는 행복이 주는 희열을 모른다.
가난과 배고픔이 없었다면 그는 배부름이 주는 고마움을 모른다.
아픔이 없었다면 그는 건강이 주는 축복에 감사하지 않는다.
낮음의 생활이 없었다면 그는 높음이 주는 권력만 행사했을 것이다.
낮음은 그에게 겸손의 향기를 배우는 혼돈의 시간이었다.
아팠기에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알고,
나의 아픔처럼 승화시킬 줄 알며, 공감할 줄 안다.
우리는 지구로의 시간 여행을 통해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발견하고,
또 그로 인하여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는
기회를 선물 받는다.
타인은 나의 거울이다.
내가 울면 거울에 비쳐진 존재도 울고,
거울에 비쳐진 존재가 울면 나도 운다.
곧 타인의 아픔을 치유하는 기회란
나의 아픔을 치유받을 수 있는 선물이며
타인의 슬픔을 공감하는 것은
나의 슬픔에 공감받을 수 있는 기회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깨달으면서 진정한 행복을 배운다.
삶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이 철학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 혼돈의 세상에 흩뿌려진 씨앗들이다.
매일의 생방송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