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라는 소리에 대한 반응에 대하여

쎄한 느낌이 들 때는

by 행복스쿨 윤정현

가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건 아닌데...”라는.


쉬운 선택에는 그렇지 않다. 갈등과 고민, 이익과 불이익, 불편과 부당, 옳고 그름과 같은 일에 그런 일이 많이 작용한다. 이는 보통 양심이 작용하는 센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해서는 안 돼!’, ‘그러지 마!’, ‘그건 아냐!’ 하는 내면의 소리는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영혼의 지도다. 쎄할 때 멈추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기지만, 멈추면 괜찮았던 경험들이 있다.


예전 군대 가지 전에 종로에서 안경을 맞춘 일이 있었다. 그런데 돈이 부족해서 5천 원 정도를 외상으로 하고 나서 갚지 않고 그냥 입대했었다. 분명 갚아야 한다는 찝찝한 느낌이 있었는데, 바쁘다 보니 그냥 지나쳐버렸다. 그런데 그것이 군대 가서도 가끔씩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건 갚아야 돼!’ 하는 마음의 소리였을까? 기억에서 계속 떠오르던 그 사건은 군대 제대하고 결국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갚았던 기억이 있었다.


크던 작던 우리에게는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 마음에서 부채의식으로 부담을 안겨준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잘못이나 실수를 하고 기억에서 잊으려 할 때 무의식까지는 삭제되지 않는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그것은 가끔 소환되면서 회복할 것을 독촉한다.


잘못했으면 사과를, 갚지 않거나 피해를 입혔으면 보상을, 실수를 했으면 용서를 받아야 함을 우리 내면은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다. 양심은 삶을 살아가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도덕의 저울이다. 그걸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언론 기사에서 11년 동안 도망 다니던 살인자 우모 씨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며 우울증까지 겪었던 사람이 '죗값을 치르면 두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수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심은 그 어느 것보다 강력해서 죽을 때까지 우리를 노크한다.


하지만 가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변명을 하고, 양심을 억누르는 사람이 있다. 또 잘못을 상대방 탓으로 돌리면서 고집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 이 기간이 오래 지나면 인지부조화의 상태에 이른다. 이 상태가 되면 무조건 상대방 잘못으로 각인되면서 자신의 잘못은 없는 상태로 고착화된다. 이들을 가리켜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더 이상 설득이나 조언을 통하여 변화되기는 어렵다. 죽을병에 걸리거나 죽음과 같은 고통을 맞이하기 전에는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도 변화되지 않는 사악한 자들도 있다. 잘못된 사람이 신념을 가지는 경우가 이렇게 된다. 이들은 자신과 주변을 파괴하는 파괴왕이 된다.


직감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SNS 글에 어떤 분이 댓글을 달았는데, 자신만의 직감이 있다고 하였다. 무언가를 할 때 그것이 사소한 것이든 큰 것이든 마음속에서 “하지 마!”라고 느껴지면 안 한다고 하였다. 그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고 하면 90%가 잘못되거나 뒤틀리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직감을 따라간다고 한다.

쎄한 느낌.png 쎄하거나 오싹한 또는 불안한 느낌이 들 때

이렇게 경험을 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감각적 느낌이 있다. 마음에서 꺼려하는 신호, 곧 양심에서 이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려올 때, 그것을 멈출 수 있는 가치관의 설정이 중요하다. 그 소리를 따라갈 때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공자님은 이 상태를 불혹이라 하였다.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 30세에 확고해졌으며, 40세에 불혹(不惑)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곧 가치관이 확고해지니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는 지혜와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는 의미다. 이렇게 자신을 지켜나가는 상태는 배움이 내재화되어 언행일치에 이를 수 있도록 거리낌이 없을 때 품격 있는 삶으로 나아간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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