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만 할 것 같은 것에 대하여

마음의 끌림이 너를 인도하면

by 행복스쿨 윤정현

글쓰기와 책쓰기에 대한 생각의 떠오름은 꽤 오래전부터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1990년 20대 중반에 시작된 메모는 수십 권이 되도록 이어졌다. 책을 보거나 영화, 드라마 또는 스치듯 마음을 울리는 글은 메모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이 너무 소중했기에 남겨놓고 오래오래 보고 싶었다. 그 이유는 무의식 중 그러한 삶을 닮고 싶다는 이끌림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끌림에 의해 컴퓨터에 글을 써서 보관하고, 블로그에는 2004년 1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곳은 내가 쓴 글과 함께 다시 보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글을 마치 도서관처럼 스크랩으로 저장하는 곳이었다. 모아 놓은 글과 함께 새롭게 떠오르는 글들이 지속적으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떠오르는 하나의 단어, 하나의 사건, 하나의 기사, 하나의 주제를 토대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계속 글이 떠오르면 멈추지 않는 경험을 하였다. 마치 저수지에 모아 놓은 물이 보를 열면 폭포수처럼 물이 쏟아져 내려오듯 그렇게 글이 흘러나왔다.


2004년 4월 소장용 도서 출판을 시작으로 한 권, 두 권 책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책을 출판해야겠다는 강렬함도 함께 밀려왔기 때문이다.


책이 주는 즐거움은 고2 때 처음 깨달았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는 광대한 우주에 대한 책은 수업 중에도 손에서 놓지 못할 정도로 매력적인 책이었다. 그동안 알지 못하던 경이로운 우주의 거대함에 압도되어 마치 블랙홀에 빨려들 듯 몰입하였다. 지구에만 머물러 있던 나의 사고를 빛으로도 갈 수 없는 거대 우주로 의식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확장성을 안겨 주었다. 이는 좁은 삶의 관점에서 넓은 삶의 가치관으로 의식을 넓혀준 계기였다. 그때부터 책에 빠져 살았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동대문에서 명동까지 1시간 정도를 걸어 다니면서 책을 읽으며 출퇴근할 정도였다.


많이 읽으면 모이고, 모이면 쌓이고, 쌓이면 섞이고, 섞이면 융복합을 거치면서 재해석된다. 쌓인 데이터는 처음엔 아리송하다. 계속 갈급하면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뒤따라온다. 이 책을 보면 이어서 저 책으로 옮겨간다. 이러한 과정이 1만 시간의 법칙이나 10년의 법칙과 매칭되면서 용광로에서 녹아내린 지식의 총합은 다른 관점으로 보는 안목을 제시한다. 하나의 단어에는 천 가지, 만 가지 지적 정보들이 녹아들어 있다. 그 시대와 역사를 거치면서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종교적, 철학적 관념들이 섞여 있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이렇게 보았던 관점이 저 시대에는 저렇게 표현할 수 있고, 이 민족에게 이렇게 이해되는 것이 저 민족에게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사용된다.


정(情)이라는 단어는 우리 대한민국의 민족 정서가 담겨 있다. 단어적 의미는 ‘뜻’, 곧 ‘마음이라는 정서적 다정함’이 내포되어 있다. 정(情)의 다른 한자적 의미에는 사랑, 인정, 정성, 이치, 정취, 진심, 성심이라는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여기에 한국의 정서, 곧 한(恨)의 민족 정서, 아리랑, 단군과 홍익인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추석, 설날, 독립운동, 민주주의 항쟁, 이산가족 찾기 운동, 금 모으기 운동, 100만 명이 넘는 태안 기름유출 사고 자원봉사, 88 올림픽, 2002년 월드컵과 응원 문화, 촛불혁명, 빛의 혁명 등 대한민국이 반 만 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녹아든 정서가 정(情)이라는 단어 하나에 들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눈치, 한(恨), 효(孝), 홍익인간, 아리랑, 감정, 이성, 철학, 종교, 사랑, 관념 등 이런 개념들은 시대와 국가, 지역, 민족, 종교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가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개념이 설정되는 순간 차별과 혐오 같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상과 이념의 갈등으로 분화된다. 전 세계에 일어나는 보수와 진보, 극우와 극좌의 분열과 갈등은 이러한 차이를 다름이 아닌 틀림의 개념으로, 진영을 나눔으로 만들어진 대결적 관점이자 분열이다.


우리가 이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오랜 역사적 관점과 개념 그리고 거기에 녹아내린 단어적 의미를 용광로에 넣어 융합된 재해석이 필요하다. 틀림이 아닌 하나됨으로 나아가는 관점들의 해석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한류는 모든 차이와 다름이 한국의 정서에 녹아들어 하나 되는 경험을 공유하는 장(場)을 열어주었다. 국가, 정치, 종교, 사회, 문화, 경제, 교육 등 다방면에서 분열된 세계인들이 한국 문화로 인하여 하나의 흥(興), 곧 신명나는 문화로 만들어내는 뜨거움과 즐거움이 한류의 용광로에는 공존한다. 이렇게 분열된 세계에서 어떤 흐름을 이끄는 힘은 한국만이 가진 정서가 그 매력이 아닌가 한다. 한글을 배우고 싶고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영어에서 느끼지 못하는 감정의 디테일까지 감각적인 느낌으로 자신들의 정서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한류가 이렇게 세계인을 하나로 모으는 힘은 대한민국이 가진 오랜 정신문명의 산물이다. 너와 나를, ‘우리’로 묶어내는 그 에너지를 더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일은 또 다른 몫이다. 그런 일들은 미래 지성인들이 인류 사회에 내놓아야 할 철학이요 고전(古典)이며, 명작이다. 정신문명이 고갈된 현시대에 지성인과 철학자들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것이 깨어 있는 선각자들의 사명이다.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요. 이는 내면에서 하여야 한다는 끌림에 의해 걸어가야 하는 모든 이의 부름이다. 마치 연금술사의 산티아고처럼, 벽오금학도의 도솔처럼 생계를 위한 삶 속에서도 구도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산티아고는 신학교를 다니다가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어 양치기 직업을 통하여 여행자의 삶을 선택했다. 도솔은 정육점에서 고기를 판매하면서 삶의 진리를 찾아 구도자로서의 여행을 다녔다. 그들이 삶을 살아가면서도 올바른 삶의 진리를 찾는 여행을 추구하였던 것은, 그것이 바로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의 부름을 따르는 삶’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각자 부름의 삶을 산다.


직업은 생계를 위한 외적 삶, 곧 육체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삶이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적 존재로서의 삶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삶, 그것은 우리가 가치를 추구하는 삶으로서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취미, 물질이나 시간을 통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생계적 삶은 육체의 생명을 연장시키지만, 마음의 배고픔은 해결하지 못한다. 삶이 공허하고, 허무하고, 우울하면서 무의미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마음이 배고픈 것이다. 이를 채우는 유일한 길이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진리의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는 성경의 말씀은 바로 그러한 인간 존재로서의 삶을 대변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고, 상담과 강의를 하면서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바뀌었다. 항상 자존감이 낮고,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여겼던 위축된 삶 속에서 벗어나 타인과 나누는 삶을 통하여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였다. 자신이 가진 것, 그것이 아무리 보잘것없을지라도 이웃과 나누려는 마음, 그 마음이 스스로를 풍족한 세계로 이끈다. 세상은 살만한 세상임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이런 나눔의 삶이다.

반려동물과 살아보면 이런 마음을 느낀다. 오랫동안 정들고 살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든지, 잃어버렸다든지 하면 너무너무 가슴이 아프고 슬프다. 하지만 평소 자신을 반겨주고, 위로해 주고, 함께 했던 순간들의 고마움은 외롭고, 공허할 때 삶의 기쁨을 선사한다. 이게 그런 진정성 있는 나눔을 통하여 받는 삶의 의미요 가치다. 반려동물과 그러한 교감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느끼듯 사람의 관계에서도 똑같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정성 있는 교감을 느낄 때 삶의 존재감은 살아난다. 내가 가진 것으로 대가 없는 나눔이 지속적 교류를 통해 서로 신뢰가 다져지면 반려동물에서와 같은 은은하게 이어지는 교감을 감각으로서 읽힌다.

몸이 반응하는 단계, 곧 감각으로 읽히는 언어는 촉이다. 육감이나 느낌으로 그 편안함과 안도감, 신뢰감과 행복감이 전이된다. 프로이트는 이 상태를 무의식이 언어를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무의식은 느낌으로서만 상대의 언어와 행동에 들어있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데, 그 느낌이 긍정의 ‘기분 좋음’과 부정의 ‘기분 나쁨’으로 전달된다고 하였다.

상대가 웃으면서 좋은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불편하고 기분이 나쁘다면 이는 그 마음이 비뚤어진 위선으로 대하고 있다는 증명이며, 상대가 평범한 말을 하는데도 기분이 좋고 편안하다면 이는 상대가 진정성으로 대한다는 의미라고 하였다. 평범한 사람은 이러한 상태를 긍정과 부정의 감각적 느낌으로만 읽어낸다고 하였다. 이러한 상태를 언어로 읽어내는 분야를 심리학 또는 철학이라 한다. 인생을 오래 살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서 분별과 노하우가 쌓여 알게 된 것을 경험칙이라 하고, 학문을 통하여 원리를 이론으로만 아는 것을 논리학이라 한다.


경험이든 이론이든 한쪽으로만 아는 것은 한계성이 있다. 그 지식이 융합되는 것이 지혜요, 삶으로 승화될 때 품격 있는 사람이 된다. 방탄소년단 ‘영혼의 지도(Map of the Soul)’에서 노래하였듯, 우리의 영혼은 삶의 가치로움을 위한 안내자로서 부른다. 공허하고 삶이 무료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며, 삶이 가치 있고 행복하다는 것은 그 부름에 응답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증명이다.

영혼의 지도

다만 이것도 감정적 느낌으로만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문적 원리까지 아는 사람이 있다. 둘은 메타 인지의 차이일 뿐 똑같은 길을 걷는 연금술사다. 메타 인지로서 아는 사람이 심리학자와 철학자다. 경험과 메타 인지가 삶으로 녹아질 때 상담과 코칭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멘토가 된다.


지식은 성장을 낳고, 성장은 삶의 성숙으로 이끈다. 나이가 들어서도 어른이 되지 못한 노인들을 꼰대 또는 어른아이라 부른다. 나이가 들어 삶의 진리를 터득한 진정한 어른을 우리 선조들은 군자라 하였다. 마음이 아픈 시대에는 어른다운 어른이 우리 주위에 더 많이 필요하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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