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이어줌과 헤어짐

마키아와 아리엘의 씨줄과 날줄의 히비오르

by 행복스쿨 윤정현

인연을 바람이라 하였다. 보이지 않게 스치듯 흘러가지만 알아차리면 이어지고, 인지하지 못하면 우연처럼 지나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혀 모르는 남남으로서 만나 인연을 만들어 간다. 부모와의 인연은 천륜이요 혈연이지만, 부부나 연인, 친구나 동료, 이웃이나 세계인들은 남남으로 만나 연줄을 잇거나 지나친다.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영원의 세월을 사는 마키아는 “누구도 사랑하지 말아라. 아픔을 느낄 거야. 그것이 우리 ‘이별의 혈족’에게 주어진 운명이란다.”라는 명령을 어기고, 숲 속에 버려진 인간의 갓난아이 아리엘을 거둔다.


누구도 사랑하지 말라며 지상 명령처럼 주어진 종족의 사명이지만 마키아는 어느 죽어가는 어린아이와의 인연을 저버리지 못하고, 가슴으로 붙든다. 엄마가 아니면서 엄마로 성장하며 아리엘을 키운다. 엄마가 되는 연습 속에서 엄마가 되기 위해 홀로 넘어지는 연습을 통해 아리엘과 함께 엄마로 성장한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도 없다. 나이를 먹지 않는 마키아로 인해 시간에 따라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며, 아이를 키워내야 하는 엄마 아닌 엄마의 숙명을 통해 경험하지 않았으면 배울 수 없는 경험을, 아픔을 통해 겪는다.


아이의 작은 표현에도 웃고, 행복해하며, 아이의 미소 한 번만을 위해서라도 얼마든 희생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슬퍼하는 모습에 같이 운다. 세상이 무섭고, 두려워 피한다면 잠시의 안정을 얻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쓴맛과 단맛, 아픔과 고통, 두려움을 견디고 나아갈 때 인생의 진정한 맛을 볼 수 있다.


아리엘의 성장과 더불어 나이를 먹지 않는 마키아로 인해 아이는 주변의 시선과 그들이 던지는 오해의 말들로 인해 방황의 시기로 접어들면서 엇나간다.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와 같지 않은가? 잘 나가던 생활에서 주변과 비교가 일어나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시선에 의해 삶이 틀어지고, 엇나가는 경우는 허다하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상태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철이 들어 이제 효도를 하려 하면 부모님은 떠나시고 안 계시는 것처럼, 우리네의 삶은 늘 이렇다. 떠나보낸 후에야 깨닫고 삶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이들을 지키려 한다. 그러한 아픔과 고생을 통하여 터득한 진리를 자녀와 후손에게 물려주려 하지만 그들 또한 철이 없는 영혼으로 이곳에 온다. 그들 또한 선배들의 전철을 밟아야 소중한 것을 지키는 법을 터득한다.


이러한 삶의 순환 속에서, 아니 삶의 윤회 속에서 사랑이 슬픔으로 더 이상 나아가지 않으려면 아이는 투정 부리는 자세에서 벗어나 삶을 직시하는 눈을 열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 눈을 뜨지 않으려 한다. 투정을 받아주는 그 손길이 마냥 좋은 것이 아닌데도 그 놀이터에서 더 즐기고 싶은 마음 때문에...


“제발 가지 마! 엄마!”


아리엘은 이별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성인이 된 후 부르지 않았던 엄마라는 호칭을 처음으로 부른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외침이었다. 사랑하기에 불러보고픈 이름이었다. 나는 엄마를 이렇게 불러보았을까? 살아계실 때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불러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있는 힘껏 살아왔구나, 아리엘! 안 울어. 약속했으니까.”


삶이란 참으로 장엄하고 위대하다!

마지막 장면에 다시 만나 임종 직전에 있는 아리엘에게 “다녀왔어!”라고 말하며 히비오르 천을 덮어주는 장면은 너무나 숭고했다. 그리고 나오면서 지난날의 아기였을 때부터 회상 씬이 흐른다. 아리엘과 마키아의 굽이굽이 흐르는 희로애락의 장면들이 가슴을 후벼파면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히비오르.jpg 네이버 영화 포스터

“왜 그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건지...”

“당신이 알려줬어. 친절함을, 강인함을, 필사적인 걸,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아리엘을 생각하는 건 나를 생각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어. 아리엘을 만났을 때 이 아이는 나랑 같이 울어준다고 내 히비오르라고 생각했어. 아리엘이랑 같이 있으면 이런저런 슬픔과 괴로움이 누그러들었어.”

“장로님도 웃으실 것이다. 네가 괴롭기만 하진 않은 이별을 가르쳐준 게 기뻐서...”

“저는 아리엘을 사랑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사랑하길 잘했다고...”


마키아의 독백은 한 존재로서 또 다른 인간 존재였던 아리엘과 만남을 통해 절절한 사랑을 깨달은 고마운 인연에 대한 헌시였다.


우리 또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희로애락을 배운 것은 그와의 삶과 인연에 대한 헌시다. 누군가는 아픔을 주었고, 누군가는 슬픔을 안겨주었지만, 그 가운데 기쁨과 따뜻함, 미소와 사랑을 배우게 해 준 행복도 너를 만난 인연 때문이었다고.


슬픔과 눈물 나는 세상에서 따뜻함과 친절을 배우고, 누군가를 필사적으로 사랑하는 인연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삶. 같이 울어주고, 웃어주면서 너와의 시간이 괴롭지만은 않았다고.


너로 인해 사랑을 배웠고,

너로 인해 행복했다고.


※ 히비오르 : 청소년의 모습으로 영원을 사는 ‘이별의 혈족’ 요르프족은 그들만이 읽을 수 있는 기록, 곧 히비오르라 불리는 베를 짜는 것이 삶의 목적이다. 인간사회에서는 비싸게 거래되는 천이다. 이러한 문자를 결승 문자라 하며, 잉카 제국의 키푸(Quipu)가 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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