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의 목소리만 들어도

가끔은 들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된다!

by 행복스쿨 윤정현


예전에 어떤 학생을 상담할 때였는데, 너무 우울해서 ‘우울 괴물’이 자신을 잡아먹은 것 같다는 말을 하던 아이가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우울할 수 있죠?’ 하던 아이다. 부모가 늘 싸우고, 그 스트레스와 짜증을 자신에게 쏟았던 가정이었다. 외동이기에 누구에게 하소연하거나 위로받을 사람도 없었고, 속마음을 터놓을 친구도 없었다.


‘우울하다’, ‘죽고 싶다’는 말을 거의 입에 달고 살았다. 항상 우울감과 자괴감, 위축된 세계에서 살았다. 그의 세상은 항상 칙칙하고 우울한 회색빛 도시였다.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인간이 외로운 것처럼 슬픈 것은 없다. 슬프고, 힘들고, 아프고, 외로운데 누구 하나 붙잡고 속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는 것처럼 힘든 것은 없다. 고독사하는 연령이 점점 젊은 층으로 내려오는 이유도 그런 연유 가운데 하나다.


이 아이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카톡이나 전화를 한다. 그런 소통으로 숨을 쉬면서 그 시간을 버티었다. 언젠가 지방으로 일주일 동안 여행 겸 아는 지인들도 만나고, 상담했던 사람들도 만나러 갔을 때다. 동해안 바닷가 휴게소에서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가끔은 그런 때가 있다.


자주 통화를 하면 할 말이 없을 때가 있다. 무슨 말을 해줘야 되는지 막막할 때도 있다. 한두 마디 하면 말이 꼬여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전혀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 그 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선생님, 너무 힘든데 샘의 목소리를 들으니 힘이 나요.”라고


힘든 사람에게는 많은 말이 필요 없다. 무슨 대단한 위로랍시고 떠드는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될 때가 있다. 가르치려 들고, 아는 척하고, 잘난 척하고...그것이 역효과가 나는 것이다. 그렇게 딱히 할 말이 없을 때는 들어주기만 하는 것도 힐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아이를 통해서 배웠다.


어느 날은 헤어진 연인 때문에 힘들어서 같이 밥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에게 하는 말이 “오늘은 답변해주시지 말고, 그냥 들어만 주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거의 말 한마디 없이 “응, 응” 호응만 해주다가 왔다. 그랬더니 카톡으로 문자가 왔다. “들어주기만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지만, 그래도 들어주셔서 너무 힐링이 되었어요. 감사해요.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갈게요.”


수년이 지난 후 카톡으로 그렇게 문자가 왔다.


“진짜 샘 만나고 변했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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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다니면서 스스로 성장한 모습을 보고, 대견하다고 하면서 그 힘든 시간을 잘 이겨냈다고 말했을 때의 감격은 특별했다. 자기 자신이 보기 싫어서 거울도 보기 싫어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존중하면서 칭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거울을 보면 자신이 예뻐보인다고 하였다. 이는 자존감이 올라갔을 때만 가능하다. 곧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안목이 열렸다는 의미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내면에는 서로를 도우려는 사랑이 있고, 누구도 내일을 모르기에 겸손하게 살아야 된다.’고. 또 ‘인간의 본질은 사랑과 연대이며, 신의 뜻은 인간을 통해 실현되고, 그 인간의 참된 삶은 이타적인 사랑과 겸손에 있다.’라고 하였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그 본질적 감정, 서로를 도우려는 연대와 이타적인 사랑의 감정이 그 아이의 한마디 말과 변화의 과정을 보면서 느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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